방랑시인 김삿갓 2-64 회
봉녀는 그렇게 호소하며 김삿갓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제아무리 도덕 군자이기로, 여인의 유혹을 물리쳐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의식중에 여인의 몸을 힘차게 끌어당기니, 여인은 고대하고 있은 것처럼 전신을 송두리째 내맡기며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오랫동안 금욕 생활을 해오던 처지인지라, 굶주린 호랑이가 살찐 암캐에게 덤벼들듯 사정없이 덤벼들었다.
여인도 오랫동안 애욕에 굶주려 온 듯, 사나이의 포옹을 뜨겁게 뜨겁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몸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는 어느 순간, 문득 다음과 같은 의혹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나는 지금 무봉의 흉악한 음모에 걸려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의혹에 구애되어 여인을 멀리하기에는, 눈앞의 향락이 너무도 황홀하였다. 봉녀도 오빠를 닮았는지 정력이 왕성한 편이어서, 애욕의 향락은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이윽고 멀리서 새벽 닭소리가 들려오자, 봉녀는 그제야 자기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이불 속에서 일어나 앉으며, 무척 아쉬운 어조로 말한다.
「날이 밝아 와요, 누가 보기 전에 저는 돌아가야겠어요.」
알고도 남을 만한 소리다.
「남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돌아가시오.」
「제가 돌아가고 나거든 한잠 더 주무세요. 있다가 오라버니께서도 무슨 말씀이 계시겠지만, 오늘밤이나 내일 저녁이나 형편 보아서 또 들르겠어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쪽 끼쳤다. 왜냐하면, 자기는 지금 무봉의 음흉한 음모에 걸려들었음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일어서려는 봉녀의 치맛자락을 부랴부랴 움켜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가기 전에 말 좀 물어 봅시다.」
봉녀는 하룻밤 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김삿갓의 어깨를 이불로 감싸 주며 스스럼없이 말한다.
「고단하실 텐데 주무시지 않고 무슨 말씀을 물어 보시려고 그러세요.」
김삿갓은 봉녀가 과부가 되더라도,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누구의 사주(使嗾)를 받고 이불 속으로 침입해 왔는지, 배후의 인물만은 분명히 알아두고 싶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나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봉녀가 안심하고 입을 열도록 하려는 고등 술책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봉녀는 자못 행복스러운 듯 명랑하게 웃는다.
「아까는 맘대로 찾아왔다고 야단을 치시더니, 그동안에 마음이 변하셨어요?」
「우리는 이미 남남지간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그럴밖에 없지 않아?」
그리고 봉녀의 엉덩이를 정답게 어루만져 주다가 별안간 생각이 난 것처럼,
「참, 봉녀는 오라버니가 나를 모시라고 해서 마지못해 찾아온 것처럼 말했는데, 무봉이 봉녀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인가?」
하고 물어 보았다.
봉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잠시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말한다.
「오라버니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오라버니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저는 언젠가는 자진해서 삿갓 선생을 찾아왔을 거예요. 저는 그만큼 삿갓 선생을 남모르게 사모하고 있었던걸요.」
「나같이 못난 놈을 그처럼 사모해 준다니 고맙군그래............무봉이 뭐라고 말하면서 나를 모시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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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65 회
「향수 어른이 돌아가시거든 삿갓 선생과 결혼시켜 줄 테니, 지금부터 정을 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음! 무봉은 그런 생각으로 봉녀를 내게 보냈었구먼.」
김삿갓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고개를 예사롭게 끄덕여 보였지만, 실상인즉 무봉의 무시무시한 음모에 등골이 오싹해 올 지경이었다.
봉녀는 잠시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혹시 삿갓 선생은 어젯밤의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세요?」
김삿갓은 당황히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천만에! 내가 후회할 리가 있는가. 그러나 김 향수가 언제 죽을지 그것이 문제거든! 한두 달쯤 후에 죽는다면 기다릴 수 있지만 일 년 후에 죽을지, 이태 후에 죽을지 그것만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
그 말에 봉녀는 자신 있는 어조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결코 오래 가지는 못할 거예요.」
「오래 가지 못하다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자 봉녀는 김삿갓의 손을 꼭 움켜잡고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 얘기는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영감님은 2, 3일 안으로 꼭 돌아가시게 되어 있어요.」
하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봉녀의 말을 듣고 가슴이 섬뜩하였다. 김 향수가 2, 3일 안으로 꼭 죽게 된다고 확언하는 것을 보면, 무봉과 봉녀는 공동 모의를 하여 김향수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장담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봉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위인이어서 봉녀로 하여금 한밤중에 김삿갓의 이불 속으로 덤벼들어 가게 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음모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김삿갓은 음모의 진상을 좀더 상세하게 알아보고 싶어, 슬쩍 이렇게 물어 보았다.
「김향수는 지난 겨울부터 돌아가신다고 하면서 아직도 살아 있는 분이 아닌가. 그런 분이 2, 3일 안으로 죽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느냐 말야.」
봉녀는 또다시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 문제는 걱정하실 것 없어요. 오라버니가 그러시는데, 이번만은 틀림없이 돌아가신다는 거예요.」
「나는 무봉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러네. 지난 겨울에도 무봉은 김향수가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건만,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무봉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이번만은 사정이 좀 달라요.」
「다르기는 뭐가 달라. 우리 사이에 숨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주어요. 그래야만 나도 봉녀를 믿고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을 게 아닌가.」
그 말에 봉녀는 무척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기가 너무도 거북스러운지 한동안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오라버니가 이번만은 그 양반한테 특별한 약을 쓰고 계시는 것 같아요.」
하고 조그맣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자신의 추측이 적중된 데 대해 마음속으로 또 한번 놀라며,
「특별한 약이라니, 대체 무슨 약을 쓰고 있기에 특별한 약이라니?」
하고 예사롭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봉녀도 정확하게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어떤 약을 쓰고 계시는지 그것만은 저도 몰라요.」
「봉녀가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무슨 약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람이 어떻게 2, 3일 안으로 꼭 죽는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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