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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7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26. 16:37

방랑시인 김삿갓 2-57 회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내가 그래, 생사람을 도둑놈으로 몰아 버릴 사람이란 말인가!」

그리고 무봉이 한 사람씩 손 냄새를 맡아 보아 가면서,

「자녀는 범인이 아니야」

하고 선언할 때마다 계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에 무봉은 위대한 심판자가 된 것처럼 기세가 당당하였다.

그러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손 냄새를 맡아보아도 파 냄새가 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무봉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거 참 이상하다. 꼭 있어야 할 범인이 없으니 웬일일까. 혹시 우리가 떠들고 있는 동안에 밖에 나가 버린 사람은 없는가?」 

그제야 부랴부랴 인원수를 헤아려 보니, 아까는 분명히 31명이 출석했었는데 지금은 30명밖에 없지않은가. 계원 한 명이 아무도 모르게 없어진 것이었다.

사람 한 명이 없어졌다는 소리에 모두들 놀라 한 사람씩 호명을 해보니. 김부일(金富一)이라는 계원이 아무리 불려도 전혀 대답이 없었다.

「김부일은 조금 전까지도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디 갔을까.」
「도둑이 제발 저리다더니, 그 사람이야말로 범행이 탄로날까 두려워 도망을 가버린 게 아닌가.」

손 냄새를 맡느라고 떠들어대는 북새통에 쥐도 새도 모르게 종적을 감춰 버렸으므로, 범인의 혐의는 김부일에게 집중될 밖에 없었다.

무봉은 내심으로 김부일을 범인으로 확정해 버리며, 계원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김부일은 전에 무얼 해먹다가, 언제 우리 마을에 들어왔는가.」
「본인의 말에 의하면, 공사판으로 떠돌아다니며 엿장수 노릇을 해먹다가 일 년 전에 우리 마을에 들어왔읍니다.」

그 사람이 아직 우리 마을의 미풍 양속에 익숙하지 못해 일시적인 잘못으로 그린 과실을 범한 모양이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이상 누구도 추궁을 하지 말기로 해야 하네.」
무봉은 김부일을 은연중에 범인으로 단정히 버리면서, 계원들에게 그럴 듯한 훈시를 내렸다.

계원 하나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무봉에게 묻는다.

「차수 어른께서는 손 냄새를 받아 보면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범인의 손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 겁니까. 저희들은 그것을 좀 알고 싶사옵니다.」

여기서 무봉은 우쭐하는 기세를 보였다.

「이 사람아! 자네는 도둑놈의 손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를 아직도 모르는가. 파를 훔쳐간 도둑놈의 손에서는 파 냄새가 날 것 이 아닌가. 그런 간단한 이치를 그렇게도 몰라서 어떡하는가.」 

그 소리에 계원들은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렇게도 간단한 이치를 우리들은 왜 몰랐을까.」
「누가 아니래! 손 냄새를 맡아 보면 법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기에, 나는 도둑놈의 냄새는 따로 있는 줄 알았구먼그래」 
「역시 차수 어른은 머리를 쓰시는 품이 우리네 졸자들과는 월등하게 다르셔!」

파 냄새 문제로 인해 무봉의 권위가 크게 부각된 셈이었다. 그것은 무봉 자신이 무척 바라고 있던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무봉은 이날 밤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서당으로 돌아와 김삿갓에게 사실대로 고하니, 김삿갓은 크게 실망하며 무봉을 호되게 나무란다.

「뭐요? 범인을 알아내셨다구요? 무봉 선생은 나와의 약속을 배반하고 기어코 범인을 밝혀 냈다는 말씀입니까?」

김삿갓이 나무라거나 말거나 무봉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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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8 회

「삿갓 선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만은 미안하오. 그러나 그로 인해 내게 대한 계원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으니, 그런 다행한 일은 없어요.」

김삿갓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뭐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말씀이오?」
「손냄새를 맡아 보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더니, 모두들 나를 귀신으로 알고 있어요. 파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계원들에게 귀신 대접을 받는 것이 그렇게도 장한 일입니까?」 

그러자 무봉은 펄쩍 뛸 듯이 손을 내저어 보이며,

「삿갓 선생은 마을 사람들의 근성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조금만 녹록하게 보여 보세요. 그러면 그들은 나를 엉덩이에 깔아 뭉개려고 할 것이 틀림없어요.」
「아무리 그렇기로, 파를 좀 훔쳤다고 계원을 무자비하게 매장시켜 버리는 지도자가 어디 있읍니까?」

김삿갓은 김부일이라는 사람이 자기 때문에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죄책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무봉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태연 자약하였다.

「본인이 재빨리 피신해 버려서 범인이라는 확증을 잡은 것은 아니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괜찮을 게 아니겠소?」

김삿갓은 무봉의 장작 같은 무신경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괜찮을 거라구요? 무봉 선생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두고 보십시오. 오늘의 일로 백락촌에서 김부일의 얼굴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김부일의 얼굴을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오」

「김부일은 지금쯤 먼데로 도망을 가버렸을 것이고, 그의 가족들도 며칠 후에는 온다간다 소리없이 밤도망을 가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소?」
「두고보면 아시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김삿갓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무봉을 억지로 자기 집으로 쫓아 보내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알고 보니 과연 김삿갓의 예언대로 김부일은 그날 밤으로 영영 종적을 감춰 버렸고, 그의 가족들도 사흘 후에는 밤도망을 가고 말았던 것이다.

김삿갓은 생각할수록 죄책감이 느껴져서, 그때부터는 무봉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훈장 후임자를 물색해 놓고, 이 마음을 빨리 떠나야 하겠다.) 

김삿갓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봉의 생각은 김삿갓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새벽의 탈출

무봉은 어떤 일이 있어도 김삿갓을 자기 곁에 꼭 붙잡아 둘 결심이었다. 그와 같은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