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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73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7. 6. 15:53

방랑시인 김삿갓 2-73 회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무심중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기는 그렇지. 아무리 색욕에 굶주렸기로 팔십 노파를 건드리기야 했을라구!」

하고 입속말로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 이번에는 노파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저놈은 노파를 건드린 일이 전연 없노라고 하는데, 노파는 강간을 당했노라고 고발을 해왔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노파는 혹시 저놈한데 무슨 사원(私怨)이라도 있어서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엉뚱한 무고를 한 것은 아닌가?」

사또로서는 당연히 물어 볼 만한 질문이었다.
그리자 노파는 얼굴에 노기를 띠며 대답한다.

「아니옵니다. 제가 저놈을 언제 보았다고 사원이 있겠사옵니까. 저는 어젯밤에 저놈한데 분명히 욕을 보았습니다. 사또에서는 제 말씀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저런 발작스러운 놈을 엄중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이에 사또는 총각놈을 다시 문초하는 수밖에 없었다.

「총각놈 듣거라. 장본인인 노파가 욕을 보았노라고 증언했는데, 네 죄를 너는 그래도 부인할 테냐?」

총각놈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노파 자신이 욕을 당했노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서 총각으로서는 죄를 면하기가 어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범죄 사실을 고지식하게 시인했다가는 목숨이 달아날 판이 아닌가.
총각놈은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다가, 문득 고개를 힘차게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저한데 욕을 보셨다고 말씀 하시지만 저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었사옵니다. 사또께서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팔십이 넘은 할머님에게 제가 어찌 그런 욕기가 솟아올랐을 것이옵니까. 할머니께서는 무엇인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오해라니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냐,」

총각놈이 다시 대답한다.

「소인은 본시 잠버릇이 몹시 고약한 놈이옵니다. 잠만 들었다 하면. 소인은 온방안을 엎치락뒤치락 휩쓸고 돌아가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어젯밤에도 잠결에 온방안을 휩쓸고 돌아가다가, 혹시 소인의 엄지발가락이 할머니의 요처를 쑤시고 들어갔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인이 어찌 감히 할머니를 겁탈했을 것이웁니까」

총각놈은 워낙 다급하여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대었다. 그러자 노파는 크게 노하여, 총각놈에게 손가락질을 해보이며 사또에게 이렇게 고해 바치는 것이었다.

「사또 어른! 쇤네가 아무리 늙었기로 어찌 발가락과 신물을 분간조차 못 하오리까. 어젯밤 일을 당할 때 감칠맛이 좋았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발가락이 아니고 분명히 신물이었읍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나자 즉석에서 노파에게 호통을 지른다. 

「뭐야 감칠맛이 좋았다고? 감칠맛을 느낄 정도였다면 그것은 강간이 아니고 화간(和姦)이 아니냐?」

그리고 옆에 있는 형리 (刑吏)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여봐라! 이 사건은 강간이 아니고 화간 사건이로다. 저 총각 놈은 아무 죄도 없으니 그냥 놓아 보내라. 그리고 저 노파는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쫓아 내어라!」

주모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자 김삿갓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 사또 양반은 천하의 명관이었구료!」

주모도 덜달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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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74 회

「누가 아니래! 팔십이 넘은 늙은이가 총각 맛을 보았으면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온 줄 알아야지, 고발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말야. 그 늙은이는 나이는 팔십이라도 아직 딱지가 덜 떨어진 증거야.」
「하하하, 주모 같았으면 고발하기는커녕 씨암탉이라도 잡아먹일 뻔했구요. ......그건 그렇고, 주모는 집안에 흉악한 사건이 있은 뒤로는 무당 노릇을 못 하게 됐노라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 <흉악한 사건>이란 어떤 일이었소? 이왕이면 그 얘기도 좀 들어 봅시다.」

주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 일은 우리 집안 일이기 때문에 너무도 창피스러워 누구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아!」

김삿갓은 짐짓 술잔을 다시 권하며,

「아따!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들 사이에 창피가 어디 있단 말이오. 창피 운운 하는 것을 보면 주모도 팔십 노파처럼 아직 딱지가 덜 떨어진 모양이구료?」

하고 은근히 비꼬아 주었다.

주모는 그 말에 수긍되는 점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기는 동네 방네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니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창피스러울 것도 없지.」

그리고 주모는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모가 무당으로 있었을 그 옛날, 그녀에게는 보패 (寶貝)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보패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행실이 난잡해져서, 원근 각지의 바람둥이들치고 그녀를 거쳐 가지 않은 놈은 한 놈도 없을 지경이었다.

주모(그 당시는 무당)는 딸의 행실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어, 열일곱 살 나던 해 봄에 시집을 보내기로 결심을 하였다.

다행히 산너머 마을에 사는 안(安) 존위네와 혼담이 있었다. 신랑 될 총각이 다소 어리석은 편이기는 했으나, 돈이 많기 때문에 그 집으로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초례를 거행하고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었다.
신랑은 신방으로 들어가 신부의 옷을 벗겨 자리에 눕히고, 동방화촉을 꺼 버린 데까지는 좋았다.

불을 끄고 나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신랑은 별안간 신방에서 허겁지겁 달려나오더니, 

「다리가 없는 여자하고는 못 살아! 다리 없는 여자하고는 나는 못 살아!」

하고 연달아 외치며 부리나케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신부의 어머니인 무당은 기절초풍을 하게 놀라며, 신방으로 뛰어 들어와 딸에게 따져 물었다.

「신랑이 다리 없는 여자하고는 못 살겠노라고 외치면서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가 버렸으니, 도대체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러자 신부는 코방귀를 뀌면서,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어차피 오늘밤은 일을 치러야 만 할 판이기에 나는 이불 속으로 먼저 들어가자 마자 두 다리를 미리 꼬부려 좌우로 짝 벌리고 누워 있은걸. 그런데 그 멍청이가 아랫도리에 손을 넣어 보더니 다리가 없다고 외치며 도망을 가버리지 뭐야. 제 구멍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얼간이 놈하고는 나는 죽어도 못 살아!」

하고 길길이 날뛰더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주모의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다가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

「하하하, 워낙 경험이 풍부한 신부인지라, 신랑을 멋들어지게 맞아들이려고 한 것이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된 셈이구료. 그래서 그 후에 어떻게 되었소?」

주모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한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신랑네 식구들이 그날 밤으로 떼거리로 몰려와서 야단법석이 났는걸.」

김삿갓은 연방 웃어 쌓며 말한다.

「다리 없는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들일 뻔했으니까, 신랑 집에서는 야단을 떨었을밖에! 그래서 사돈댁 사람들보고 뭐라고 했소?

주모가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