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1kg의 꿀을 얻기 위해560만 개의 꽃을 찾는 벌꿀의 효능은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7. 4. 15:53


24년 7월 4일 (목요일)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 개의 꽃을 찾는 벌꿀의 효능은

1)면역력 강화
꿀에는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면역력에 좋다

2) 향균 작용
향균 작용이 있어
상처 치유에 도움을 준다.

3) 항산화 작용
벌꿀에는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이 함유되어
세포 손상을 예방한다.

4) 소화 촉진
올리고당이 함유되어
장내 유익균이 증식되
배변을 원활하게 한다

5) 피부 건강
풍부한 항산화 성분은
피부 노화를 방지한다

6) 피로해복
포도당과 과당으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7) 감기 예방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살균하는 기능이 있다

8) 고혈압 예방
꿀에는 미네랄이 풍부해
혈압을 낮춘다

9) 체온 상승
뜨거운 성질이 있어
선천적으로 몸이 차가운
사람과 수족냉증에 좋다

10) 수면 개선
세로토닌이라는 성분이
수면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침 편지

♦️복(福)

삼국지의 한 대목에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라는 말이 나옵니다.

장비의 군사들이 조조 군사들에게 쫓기다가 수풀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뒤쫓아 가던 조조에게는
화공(火攻)으로 장비의 군사를 일시에
전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조는 그의 지략으로 수풀에 불을 질렀고,
장비의 군사들은 꼼짝없이 전멸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한 점의 검은 구름이 피어 오르더니
난데 없이 장대 같은 소나기를 마구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대승을 바로 눈 앞에 두었던 조조는 이를 보고,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 라고 탄식 했습니다.

"아무리 지략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福받은 사람 만큼은 못하다." 는 말이 바로 ‘지자막여복자’ 입니다.

"福"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하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소관은 아닐 것입니다.

십 년이 넘도록 수도하고 하산하려는
제자가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스승님, 떠나는 저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부탁 하옵니다.”
라고 간청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만하면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福"받은 사람에게는 절대 함부로 덤비지 말라.” 라고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福"은 그 만큼 위력이 있는 것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福"은 모름지기 동양적 감성이 들어있는 단어이지만,
서양에서는 이것을 "행운(幸運)"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복(福)이란?

가난한 사람에게 물으면
돈 많은 것이 복(福)이라 하고!

돈 많은 사람에게 물으면
건강한 것이 복(福)이라 하고!

건강한  사람에게 물으면
화목한 것이 복(福)이라 하고!

화목한 사람에게 물으면
자식 있는 것이 복(福)이라 하고!

자식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무자식이 복(福)이라 합니다.

결국 복(福)이란 ?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을
복(福)이라 생각 하는것 같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남에게는 없는데
나에게 있는것.
그것이 복(福)이 아닐까요?

생각만 바꾸면 모든게 복이 됩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 "福의 위력"을 알았으니
"넉넉히 받은 福"을 확인하시고,
만사형통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오늘도 복(福)된하루로 화이팅.!







비 오는 바닷가의 작은 텐트
엄상익(변호사)
2024.06.26


초여름을 알리는 소낙비가 내리는 날 오후였다. 우산을 쓰고 해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성난 파도가 흰 거품을 뿜어내며 우르르 해변으로 달려드는 모래 위에 작은 텐트 하나가 외롭게 있었다. 그 안의 누군가가 가만히 앉아서 파도소리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연약해 보이는 그 텐트를 보면서 그게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여든여덟살의 영감이 배낭을 지고 끝없이 길을 걷는 장면을 봤다. 몸에 지닌 유서에는 자기를 발견하는 즉시 그가 지정하는 의과대학 병원에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는 장례를 치를 필요없이 바로 자신의 몸을 해부용 시신으로 사용해 달라고 했다.
갈대가 바람에 은발을 휘날리는 저수지 옆에서 작은 텐트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누룽지를 끓여서 멸치를 반찬으로 먹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밤하늘의 달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그는 길을 걷다가 어디서 쓰러져 숨을 거두어도 좋다고 죽음과 삶을 포갠 위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삶이 맑고 향기로워 보였다.
바닷가에 살다 보니까 작은 차를 자기의 집으로 해서 그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트럭을 캠핑카로 개조해서 몇 달씩 낚시터만 돌아다니는 사람도 봤다. 부자가 아니라도 그렇게 살아지는 것 같았다.
해변의 쉼터에서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제일 싼 아파트를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북평에 있는 열여덟평 아파트가 오천만원에 나와 있더라구요. 그걸 샀죠. 이따금씩 와서 쉬었다 갑니다. 나만의 공간이죠. 비워둬도 관리비가 거의 안 나와요.”
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돈 돈 하면서 미루면 나중은 없는게 세상일 것 같다.
나는 동해항의 작은 등대가 보이는 언덕에 있는 낡은 이층집을 사서 두 달째 살고 있다. 내부의 자잘한 구멍이 있는 거친 콘크리트 천정과 벽을 흰 페인트로 칠했다. 외벽도 소박하게 한 풀 가라앉힌 노란 칠로 마감을 했다. 천정에도 알전구를 달았다. 나이 먹은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쉽게 갈아끼우기 위해서 한 선택이다. 이 집을 나는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묵는 천막이고 텐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방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재가 되어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뿌려 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집에 대한 관념이 많이 바뀌었다. 어린 시절 동네 부자가 사는 기와집에서 살고 싶었다. 높은 축대 위에 있는 양옥집도 부러웠다. 봄이 되면 그 집 담장 위로 하얀목련이 등불로 피어나곤 했다. 대학 시절 강남에 신축된 열여덟평짜리 아파트를 보고 황홀했다. 따뜻하고 온냉수가 나오는 욕조와 깨끗한 변기를 보고 반했다. 그런 아파트에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셋방을 전전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한 끝에 서울의 강남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를 가졌다. 개발 시대 그것은 작은 성취였다. 나는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더 가면 집이 과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자기 집을 자랑하고 싶은데 구경하겠느냐고 물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백층 건물의 중간쯤이 그의 아파트였다. 유명 연예인들과 부자들이 산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한테는 거기 산다는 얘기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안내로 철저히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그곳으로 들어가 구경했다. 수십억이 든 인테리어의 집이었다. 이태리 대리석을 깐 바닥은 내게는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거대한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커다란 새가 된 느낌이었다. 선불교의 화두 중에 유리병 안의 새를 상하지 않고 꺼내보라는 문제가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고 불안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전시용공간이지 편안한 집이 아니었다. 메마르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호주의 골드코스트 호화저택을 소유한 엄씨의 집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백화점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집안에 요트선착장이 있고 드넓은 바다의 광경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마다 전면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넓은 주방의 싱크대에는 요리를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집 주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말이죠 내 가게의 구석에 딸린 작은 방이 훨씬 편해요. 거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평생 물건들을 팔았어요. 이 바닷가의 저택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용이예요. 이 집에서 사는 게 편하지 않아요”
인간은 길들여진 것이 편한 법이다. 집이란 결국 이 땅에 잠시 치고 사는 천막이 아닐까. 성경을 보면 우리의 몸도 영혼이 잠시 묵는 텐트라고 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향해 가야하는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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