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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21 회....金益淳→安根→炳夏 (防禦使) 炳渊√ 炳湖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3. 25. 16:52

방랑시인 김삿갓 1-21 회

............金益淳→安根→炳夏
       (防禦使)       炳渊
√                   炳湖
                    
김병연은 김익순이 틀림없는 자기 할아버지임을 알게 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아이구! 이럴 수가............」

하고 거적 위에 푹 쓰러지며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울어도 울어도 설움은 자꾸만 북받쳐 올랐다.

역적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씨 부인도 울고 며느리 황씨도 울었다. 초상을 당한 사람들 처럼 정신없이 울었다.

이씨 부인은 한바탕 울고 나서 머리를 고즈너기 들며 아들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너는 백일장에서 무엄하게도 조부님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어른은 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비열한 어른은 아니셨느니라.」

김병연은 그 소리에 울화가 왈칵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세요. 반란군에게 항복을 했다면 그만이지, 그 이상 뭐가 비열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이씨 부인은 입술을 깨물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야 물론 홍경태에게 항복을 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라에서도 역적으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었겠느냐. 그러나 이에마는 그때의 실정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날 밤 너의 조부님께서는 술이 대취 (大醉)해 정신없이 주무시고 계시다가, 홍경래의 무리가 벼락같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어처구니없게도 포로가 되셨느리라. 포로가 되고 나면 누구나 살기 위해 항복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겠느냐.」

이씨 부인은 시아버님을 열심히 변명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김병연에게는 그런 변명이 몹시도 귀에 거슬렸다.

「이러나저러나 반군에게 항복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이씨 부인은 대답을 못 하고 또다시 울기만 하다가 문득,

「역적이든 충신이든, 그 어른이 조부님이신 것만은 사실이 아니냐. 자기 할아버지를 미친개 두들겨 패듯한 네 행실은 옳았다. 말이냐. 너도 곰곰 생각해 보아라!」

하고 역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국가 방위의 중책을 맡아 보는 방어사가 흉적(凶賊)에게 무릎을 뚫었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국가 외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 부인은 시아버님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에서 역습으로 나왔다.

김병연은 물론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 역습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정당성도 없지 않아 보였다.

(내가 역적이라고 몰아치는 김익순은 다른 사람 아닌 너의 할아버님이 아니시냐. 그렇다면 너 자신의 혈관 속에도 역적의 피 가 맥맥히 흐르고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생각이 들자 김병연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었다.

그나 그뿐이랴. 김병연 자신도 역적의 후손인 주제에 사뭇 충신연(忠臣然)하고 백일장에서,

<너 같은 놈은 죽어 황천에도 못 갈 놈이 아니냐.>

하고 자기 조상을 통렬하게 후려갈긴 것은 얼마나 웃지 못할 비극이란 말인가.
그 일을 생각하면 김병연은 수치심과 회한이 가슴에 사무쳤다. 

(자고로 역적은 삼족(三族)을 멸하는 법, 그렇다면 역적의 손자인 나 자신도 마땅히 죽었어야 할 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날까지 어엿하게 살아 남아 있으니, 그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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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22 회

문득 그런 의혹이 떠 올라 김병연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어머니! 우리나라 국법에는 역적은 삼족을 멸하게 되어 있읍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살아 남았읍니까.」
「.............」

이씨 부인은 대답이 없다.
김병연은 다시 캐어 묻는다.

「오욕(汚辱)으로 얼룩진 우리 가문의 역사가 송두리째 들통이 나버린 이 판국에, 어머니는 무엇이 두려워 대답을 안 하십니까. 역적의 손자인 제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오늘날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읍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어머니가 원망스럽고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김병연은 생각할수록 절통한 느낌이었다.

이에 부인은 마음을 가다듬느라고 눈물을 닦고 나서 차분한 어조로 대답한다.

「병연아!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제 와서 미주알고주알 캐어 물어 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지나간 일은 모두가 없었던 일로 돌려 버리고, 이제 앞으로 살아갈 길이나 상의해 보자. 

「어머니!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제가 조상을 모욕하는 어릿 광대 노릇을 한 것은 가문의 역사를 몰랐던 때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제가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역사만은 꼭 알아야 하겠읍니다.」 

김병연의 태도는 자못 강경하였다.
이씨 부인은 또 한 번 한숨을 쉬고 나서,

「지나간 일은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네가 기어이 알아야 하겠다면 말해 주마.」

그리고 이제 부인은 기나긴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는데, 그내용을 간추려 말하면 다음과 같았다.  
선천 방어사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을 한 것은 김병연이 4살 때의 일이었다. 그 후 석 달 만에 관군이 선천을 탈환하게 되자, 김익순은 역적으로 체포되어 참형(刑)을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당시의 국법으로는 역적은 삼족을 멸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이씨 부인은 자식들만은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병하 •병연 • 병호, 세 아들을 데리고, 종복(從僕) 김성수(金聖洙)의 고향인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후 관에서는 김익순을 참형에 처했다. 그러나 김익순이 항복한 그 당시의 정상(情狀)을 참작하여, 삼족만은 멸하지 말라는 특별 은총이 내렸다. 그로써 유족들은 죽음을 면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김익순이 참형을 당하고 나자,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해 오던 외아들 안근(安根• 병연의 아버지)은 울화병으로 석 달 만에 타계하고 말았다.

황해도 곡산으로 아들 삼 형제를 데리고 자취를 감춰 버린 이씨 부인은 눈물을 머금고 아들 삼 형제를 혼자의 힘으로 길러 내는 수 밖에 없었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세 아들을 먹여 살리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곡산으로 옮겨 온 지 몇 달 만에 세째 아들 병호는 영양 불량으로 해소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씨 부인은 어떡하든지 김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놓겠다는 결심에서 두 아들에게는 글공부를 열심히 시켰다. 역적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이들의 기가 죽어 버릴 것 같아, 할아버지 의 과거를 일체 비밀에 붙여 왔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 병연은 신동(神童)이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가 좋아, 한 번 읽은 글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기에 이씨 부인은 병연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만약 병연이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날이면 가문을 다시 일으키게 되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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