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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대기소의 비참한 현실.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8. 9. 15:18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대기소의 비참한 현실.

늙고 병든 부모들이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요양 시설을 보내며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마음 아프게  보는 자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

평생을 고생으로 고이 고이 키워온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고 모은 모든 것, 정든 집과, 가족과, 살아온 힘들었던 서러움과,  짧았던 행복의 순간들, 모든 인연들과 이별하는 날 ...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는 자식들 면전에서 애써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고 굳은 얼굴에
미소 지으며 내 걱정하지 말고 잘 살라는 부모님의 힘없는 한마디가 과연 얼마나 자식들의 가슴에 전해질까요!

마지막 가야하는 피할 수 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저승길 대기소
우리나라 요양시설의  현실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 지지 않았지만 그 실상은 지옥보다 더 비참하다.

간병사들은 병원 소속 직원이 아니라 대개 중국인들이며 센타에서 파견받은 사람들로 병원측의 말도 잘 듣지 않고 환자를 짐승이나 물건 대하듯 학대를 하며 한국인 요양보호사도 대다수 마찬가지다.

돈 받고 일하지만 그들은 요양보호사가 아닌 
요양 학대(虐待)사들이다.

죽어가는 가냘픈 목소리로 물을 찾아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먹으면 대소변의 기저귀 갈기가 귀찮아서 란다. 모르는 척 휴대폰만 들어다 보고 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단독 요양보호사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자식들에게 연락을 부탁해도 소용이 없고 어쩌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해도 부질없는 현실은 비참하고 냉혹하다.

자식들은 모두 바쁘고 집에서는 모시기가 불가능하단다.

요양시설은 늙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 거처야 할 마지막 코스이며 누구도 거부될 수 없고 머지않아 가야 하는 생지옥이다.

남의 일 같고 나는 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며 착각일 뿐이며 시간이라는 어둠의 그림자는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구나 죽을 때는 고통 없이 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마지막 겪어야 하는 고독과 아픔은 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차라리 AI가 간병하는 시대가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사람이 잠자리에 들 듯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죽음의 복이 참으로 큰 복이다.

(아래는 외국의 사례이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노인 요양시설에서 할머니 한분이 생을 마감하였고, 요양 보호사들이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시(詩) 한 편을 발견했다.

​시(詩)의 내용에 감동받은 요양 보호사들은 복사하여 돌려보았고 그 중 한 사람이 북아일랜드 정신건강 학회 뉴스지의 크리스마스지에 실리게 했다고 한다.

​곧바로 동영상으로 편집되었고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 요양 보호사님들
무엇을 보시나요.?

댁들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현명하지도 않고
변덕스러운 성질에
초점 없는 눈을 가진
투정이나 부리는 쓸모 없는
늙은 노인으로만
보았나요.

​음식을 먹을 때 흘리고
대답을 빨리빨리 못 한다고
큰소리로 나무랄 때
나는 당신들이
조금만 더 노력해 줄 것을
바랬습니다.

2, 당신들이 주먹질을 할 때는
맞으면서
잘 움직여 지지 않는 팔로
헛손질이라도 하고 싶었다오.

​댁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도 이해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양말이나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는
노인네로밖에는 안 보였나요?

저항하든 안 하든
목욕시킬 때는
설거지 통에 그릇만도못한 취급에
눈물도 쏟았지만
흐르는 물에 희석되어
당신들은 보지 못했지요.

3, ​음식을 먹여주는 댁들의 눈에는    가축보다 못한  노인으로 비추어  
졌던가요?

​댁들은 저가 그렇게 밖에는
안 보였나요.?

​제 팔에 든 수 많은 멍 자국들이
그냥 망가진
도라지 꽃으로 보이던가요.?

제발 나를 그런 식으로 보아주지 말아주세요.

온몸에 멍이 들어도
아픔을 삭여야만 했던 내가 누구인지
지금부터 말하겠습니다.

4, 내가 열살 어린아이였을 때
사랑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있었고
형제자매들도 있었답니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는
발에 날개를 달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답니다.

​스무 살 때는
평생을 사랑하고 살아갈
반려자를 만났고
스물다섯 살에는
행복한 가정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녀들이 태어났고요.

5, 서른 살이 되 었을 때는
아이 들이  쑥쑥 자랐고
마흔 살이 됐을 때는
자식들이 성장해서
곁을 떠났지만
내 곁에는 믿음직한
남편이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오십이 되었을 때는
자식들이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손주를 안겨 주었을 때는
비로소 인생의 참맛을 느끼는
자신을 알기도 했답니다.

​마침내 어두운 날이 찾아와
옆에 있던 남편이
하늘나라로 먼저 가면서
나는 두려운 나머지
몸이 오싹해 졌답니다.

6, ​자식들이 모두
저들의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나의 지난 날을
떠 올리기도 했답니다.

​나는 이제 볼품없이 늙어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들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몸은 망가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 버렸고
한때는 마음 있던 것들이
지금은 무딘 돌이
되었답니다.

​시체와도 같은
이 늙은이 속에는
아직도 어린이 같은
마음은 살아 있어
가끔씩 다 망가진
이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오.

7,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젊은 시절처럼
사랑도 해보고 싶다는 꿈도
꾸어 본답니다.

​너무도 짧고
빨리 지나간 세월의  삶들을
생각하면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답니다.

​요양 보호사님들
부디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 말고
좀 더 자세히 나를
봐주세요.

​당신의 부모님은 아니나
부모님 일수도 있답니다.

8, 그냥 가축에게
모이 주듯 하지마세요.

나는 그냥 먹고
싶답니다.

​몸에 멍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가슴에 멍을 안고 떠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사는 동안 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상은 외국의 사례이지만
우리나라의 요양시설도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인생사 덧없고
70이 넘으면 이미 저승으로 가는길을 접어들어 한참 걸어 왔고
생명은 꺼져가는 풍전등화와 같은 것이며
삶의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잔인하고 슬픈 숙명의 길 이다.

나는 오늘도 아내의 간병을 위해 서울행 SRT 열차에 오른다.

-  小雲이라는 분이 쓴 옮겨 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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