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16)며느리의 사위가 된 시아버지
이초시는 마흔둘에 홀아비가 되었다. 설상가상, 이초시의 외아들도 장가간 지 1년 만에 시름시름 앓더니 제 어미를 따라가 버렸다.
홀아비 시아버지와 청상과부 며느리 둘이서 대궐 같은 큰 집에 살려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이초시는 대가 끊어지고 홀아비가 된 자신의 신세도 처량했지만, 청상과부 며느리를 보면 가슴이 찢어졌다.
이초시는 장날마다 며느리를 위해 동백기름, 박가분, 비단옷감에 깨엿이며 강정이며 주전부리를 사다 줬지만 며느리 얼굴에 깊게 서린 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이초시가 며느리를 불러 앉혔다.
“얘야, 이대로 세월만 축낼 수는 없다. 네가 개가할 자리를 찾아보자.”
그 말에 며느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아버님을 혼자 두고 제가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초시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십대 초반의 천석꾼 부자인 이초시에게 매파가 뻔질나게 찾아왔다. 히지만 이초시는 “내가 새장가를 가면 며늘아기 상심은 더 크다”며 번번이 돌려보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초시도 새장가는 들어야 하는 것이 아이를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하고, 이대로 늙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남았다.
강 건너 혼인 잔치에 갔다가 얼근히 취해 들어온 이초시는 며느리를 불러 담판을 했다.
“너는 나를 두고 재가할 수 없다고 하고, 나는 너를 두고 차마 재혼할 수 없다고 하다가 세월만 날려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먼저 개가하고 내가 뒤따라 혼처를 구하는 게 순서이니 그렇게 하자. 논 열마지기 땅문서를 네게 줄 터이니 그걸 가지고 가면 괄시 받지 아니할 것이다.”
며칠 후 며느리는 눈물바다를 이루며 친정으로 돌아갔다.
며느리는 친정에 가서 귀가 번쩍 뜨이는 소문을 들었다. 이웃 마을에 홀아비가 딸과 단둘이 사는데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 스무살이 넘은 딸을 시집도 못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며느리는 곧 이웃 마을로 찾아가 그집 딸 달래를 만났다. 달래는 남루한 옷에 온갖 일을 하느라 손은 거칠었지만 얼굴은 반듯하고 얌전했다.
힐끗 본 달래 아버지는 시아버지 연배에 몸이 건장하고 얼굴에서 인심이 뚝뚝 흘렀다.
이초시 며느리는 달래의 두손을 잡고 청상과부가 된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나서 이런 제안을 했다.
“제 시아버지는 마흔둘밖에 안되었고 천석꾼 부자인데다 인품도 훌륭합니다. 달래씨가 시아버지에게 시집을 가면….”
그 말에 달래가 며느리의 말을 끊었다.
“아버지 혼자 두고 제가 시집가면 아버지 밥상은 누가 차려 주고 빨래는….”
그때 이초시 며느리가 다시 달래의 말을 끊었다.
“제가 들어오면 되잖아요.”
혼담은 그대로 무르익어 처녀 달래와 시아버지가 결혼하고 청상과부 며느리는 달래의 아버지와 결혼했으니….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사위가 되고, 며느리는 전 시아버지의 장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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