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119 회
돌 위에 풀이 나기 어렵고, 방안에서는 구름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은,
<글을 배우지 못한 너 같은 촌놈이 무슨 놈의 시를 짓겠다고 껍죽거리느냐 >
하는 모욕적인 말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 가서는 자기네를 <봉황새>로 자부하면서, 김삿갓을 숫제 <산속에 사는 잡새>로 몰아붙였으니, 그 얼마나 모욕적인 시란 말인가.
김삿갓은 그 시를 읽어 보고 늙은이들의 시에 대한 실력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짐짓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칭찬해 주었다.
「참으로 훌륭한 시올시다. 이태백이 이 시를 보았다면 경탄을 마지않았을 것이옵니다.」
노인은 김삿갓을 나무란다.
「나는 귀공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시를 지은 것은 아니여. 내가 시를 읊었으니까, 귀공은 약속대로 빨리 화답을 해야 할 게 아니여.」
옆에 있던 늙은이들도,
「그렇소. 귀공이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약속대로 화답을 해야 할 것이오.」
하고 덩달아 공격의 화살을 퍼부어 오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화답을 할 테니 붓과 종이를 주십시오.」
김삿갓은 필묵을 받기가 무섭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일필휘지로 써갈겼다.
나는 본시 하늘 위에 사는 새로서
항상 오색구름 속에서 노닐었거늘
오늘따라 비바람이 몹시 사나와
들새 무리 속에 잘못 끼어들었소.
我本天上鳥 (아본천상조)
常留五彩雲 (상류오채운)
今宵風雨惡 (금소풍우악)
誤落野鳥群 (오락야조군)
늙은이들이 자기네를 <봉황새>로 자처하며 김삿갓을 <잡새>로 비유한 것과는 정반대로, 김삿갓은 자기를 <하늘에 사는 새>로 자처하면서 늙은이들을 <형편 없는 들새 무리>로 몰아붙여 버렸던 것이다.
김삿갓은 그 시를 늙은이에게 내밀어 주고 자리에서 성큼 일어서면서,
「이 한 수면 술값은 넉넉할 듯싶습니다. 나는 앞길이 바빠 그만 떠나가겠읍니다. 여러 어르신네들은 천천히 재미있게들 노십시오.」
그 한마디를 내던지고 자기 길을 걸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늙은이들은 김삿갓의 시를 돌려 가며 읽어 보고 나더니, 모두들 노발대발하면서 뭐라고 큰소리로 김삿갓을 불러 댔다.
그러나 김삿갓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언제나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이 었던 것이다.
한동안 무심히 걸어 나가다가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서산머리에 놀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허! 하루 해가 또 저무는구나. 오늘밤은 또 어디서 신세를 져야 할 것인가.」
날은 자꾸만 저물어 오는데, 아무리 걸어도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가을이 완연하여 소슬바람은 옷깃 사이로 차갑게 스며들고, 하늘가에서는 기러기 떼가 남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벌써 가을이 이렇게도 깊었는가.)
김삿갓은 기러기 소리를 듣자, 불현듯 유우석(劉禹錫)이라는 사람의 <추풍인(秋風引)>이라는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
방랑시인 김삿갓 1-120 회
가을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기에
기러기 떼를 쓸쓸하게 날려 보낼까
아침부터 나뭇잎 울리는 바람 소리를
외로운 나그네가 먼저 듣노나.
何處秋風至 (하처추풍지)
蕭蕭送雁群 (소소송안군)
朝來入庭樹 (조래입정수)
孤客最先聞 (고객최선문)
애달프기 짝없는 시였다.
고개를 넘어와도 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어두워 올수록 접동새 우는 소리만이 구슬프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가 얼마나 깊은 산골이기에 인가가 이렇게도 없을까?)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산골짜기에 빠알간 불빛이 하나 보인다.
(아, 저 깊은 산골에 집이 있는가보구나!)
김삿갓은 구원의 광명을 발견한 것만 같아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눈앞은 어둡고 길은 험하다. 얼른 보아서는 불빛이 그다지 먼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불빛은 자꾸만 뒷걸음을 치는지, 걸어도 걸어도 불빛은 가까와 오지 않았다.
(저 불은 등잔불이 아니고 혹시 도깨비불은 아닐까?)
밤에 보는 불빛은 멀어도 가깝게 보인다는 사실을 김삿갓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와도 불빛은 언제나 한모양이어서 김삿갓은 일순간 등골이 오싹해 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발길을 돌려 보았자 갈 곳이 없지 않은가.
(에라 모르겠다. 도깨비불이거나 말거나 신지에까지 가 놓고 보자. 어렸을 때부터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왔지만, 정작 도깨비를 직접 만나 본 일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김삿갓은 배짱을 두둑하게 먹고 불빛을 향하여 꾸준히 걸음을 옮겨 나왔다.
그러자 어렸을 때 들은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누구는 캄캄한 밤에 도깨비를 만나 밤새껏 씨름을 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도깨비는 간 곳 없고 모자랑 빗자루 하나 가 있을 뿐이었다는 이야기.
누구는 캄캄한 밤에 도깨비와 함께 대장간에서 <금 나와라 뚝딱!>하고 밤새껏 대장질을 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도깨비는 간 곳 없고 온 집안에 금은 보화만 이 가득하게 쌓여 있더라는 이야기 등등.......
'좋 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래 한알 (0) | 2025.05.14 |
---|---|
귀한 손님 왔으니 오늘은 홍어다! (0) | 2025.05.14 |
스크랩한 URL ♡♥♡★ "인간의 바른 몸가짐" (0) | 2025.05.13 |
* 간디의 명언 * (0) | 2025.05.13 |
우린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0) | 2025.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