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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139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5. 24. 14:25

방랑시인 김삿갓 1-139 회

이 사람아! 장모가 죽었거나 마누라가 죽었거나 일단 죽고 나면 모두가 귀신이 되어 버리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귀신에게 들려주는 제문을 가지고 콩이야 팥이야 까다롭게 따질 필요가 뭐냔 말일세. 귀신한테는 어떤 제문을 읽어도 마찬가지니까, 빨리 돌아가서 내가 써준 제문을 그대로 읽도록 하게.」

훈장은 그렇게 뱃심을 퉁기고 나서, 김삿갓을 돌아다보며 난데 없는 동의를 구한다.

「삿갓 선생! 내 말이 틀림이 없지 않소?」

김삿갓은 훈장의 후안무치한 뚝심이 오직 놀랍기만 하였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고 보니, 김삿갓으로서는 어느편이 옳고 어느편이 그르다고 말하기가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촌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문이란 본디 돌아가신 혼령에게 들려주는 글이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소 잘못된 점이 있기로 크게 망령된 일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잘못된 대목을 한두 글자만 고치면 되니까 제문을 가지고 오셨거든 이리 내놓으시오. 선생 대신에 내가 고쳐드리도록 하리다.」
「그러면 수고스러우신 대로 선생께서 좀 고쳐 주십시오.」

김삿갓은 즉석에서 제문을 수정하여 촌부를 돌려보내고 나서, 웃으면서 훈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벽촌에서 훈장 노릇을 하시자니, 별의별 일을 다 당하게 되시는군요.」
훈장은 오연히 웃으며 대답한다.

「산골 놈들이란 음흉스럽고도 얌치가 없어서, 엔간히 잘못된 일이 있어도 무작정 윽박질러 깔아 뭉개 버려야 하지, 섣불리 잘못 됐다고 사과라도 했다가는 그날로 훈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우. 하하하............내 말 알아들으시겠어요?」

아닌게 아니라 시골 사람들이란 엉큼스러운 데가 있어서, 섣불리 약점을 보였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김삿갓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 할 밖에 없었다.

「시골 사람들을 상대하자니 고충이 많으시겠읍니다.」

마침 그때 젊은 환자 하나가 찾아왔다.

「몸이 좀 이상해 의사 선생님을 뵈러 왔사옵니다. 선생님은 댁
에 계실는지요.」

첫눈에 보아도 무척 나약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진수는 서당의 훈장이면서, 환자가 찾아 왔을 때에는 즉석에서 의사 선생님으로 둔갑해 버린다. 그리하여 수염을 쓰다듬으며 청년에게 말한다.

「이 사람아! 의사 선생님을 눈앞에 모셔 놓고서 의사 선생님을 찾으면 어떡하자는 것인가. 내가 바로 자네가 찾고 있는 백중국 선생일세.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청년은 억압적인 질문에 기가 질렸는지, 황급히 머리를 그려 보이며 조그맣게 대답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웬일인지 기운이 없어, 선생님한테 진찰을 받아 보려고 왔사옵니다.」
「음 기운이 없어서 진찰을 받으러 왔단 말이지?」

갑작스럽게 의원으로 둔갑한 훈장은 사뭇 신중한 어조로 반문 한다.
김삿갓은 돌팔이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다루는가 싶어, 옆에서 조용히 지켜 보고 있었다.

돌팔이 의사가 환자에게 묻는다.

「기운이 없다면 무슨 병이라도 생긴 게로구먼....... 병은 병인데 무슨 병인지 몰라서 찾아왔단 말인가?」
「아닙니다. 식욕이 왕성한 것을 보면, 병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식욕은 왕성한데, 다만 기운이 없을 뿐이라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음----밥을 잘 먹는데도 기운이 없다면, 자네는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 아닌가?
「아닙니다. 술처럼 몸에 해로운 것이 없는데, 몸에 해롭다는 술을 무엇 때문에 마시겠읍니까. 저는 술 같은 것은 입에 대지도 아니합니다.」

환자는 손을 휘휘 내저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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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140 회

「술은 몸에 해롭기 때문에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단 말이지?」

돌팔이 의사는 환자의 말을 되씹어 보고 나서,

「식욕이 왕성할 뿐만 아니라, 술도 마시지 않는데 기운이 없다면, 자네는 용색 (用色)이 파도한 모양일세 그려? 색이라는 것은 적당하게 써야지, 과도하게 쓰면 반드시 기운이 약해지는 법이네.」 

하고 자못 점잖게 타일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 말을 듣고 펄쩍 뛸 듯이 놀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것은 오진(誤診)이시옵니다. 색을 쓰는 일처럼 몸에 해로운 일이 어디 있다고 색을 함부로 씁니까. 저는 용색을 한 달에 한 번쯤 할까 말까, 여자는 될수록 멀리해 오고 있사옵니다.」 

돌팔이 의사는 그 말을 듣자 별안간 얼굴에 노기가 충만해지더니, 다음 순간 벼락 같은 호통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어쩌구 어째? 계집질을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한다고?....... 이 거지 발싸개 같은 놈아! 하룻밤에 열 번을 해도 싫지 않을 나이에, 몸이 해롭다고 해서 그 좋은 것들을 이것도 안 한다. 저것도 안 한다면, 네 놈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간다는 말이냐. 너 같은 놈은 꼴도 보기 싫다! 당장 뒈져 버려라!」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노발대발이었다. 그러나 그 호통이 어찌나 추상 열일 같았던지, 청년은 용수철을 퉁긴 듯이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번개처럼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청년이 기절초풍을 하며 도망가는 꼴을 보고, 김삿갓은 배를 움켜 안고 웃었다.

「하하하,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기로, 약국을 찾아온 환자에게 호통을 친 것은 너무하셨소이다.」

그러나 돌팔이 의원은 고개를 단호하게 가로 젓는다.

「환자라구요? 사내 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무슨 환자란 말씀이요. 그런 높은 밥벌레 밖에 못 되는 놈이에요」
「밥벌레란 말은 너무 심한 말씀인 것 같소이다.」
「심하기는 뭐가 심하다는 말씀이오. 선생도 보셨다시피, 그놈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에요. 내가 그 나이 때에는 하룻밤에 다섯 번도 그만, 여섯 번도 그만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밖에 안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오.」
「화를 낼 물건은 따로 있는데, 선생이 왜 화를 내시오.」

김삿갓이 웃으면서 놀려 주자 훈장도 통쾌하게 웃으면서, 

「에이, 여보시오. 나를 뭘로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그 나이에는 계집을 다섯씩이나 거느렸건만, 그래도 부족했어요. 그런 병신 같은 놈을 그냥 살려 두었다가는 만천하의 여자들한데 내가 몰매를 맞아 죽게 될 것이오..」
「하하하, 만천하의 여자들한테 몰매를 맞아 죽을까 봐, 그 청년의 병을 고쳐 주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죠.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그 물건이 튼튼해야 하는 거예요. 선생은 잘 알고 계시면서 괜히 그러시네요.」
「허기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위위불염 갱위위, 불위불위 갱위위>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요. 선비들을 그린 음담을 흔히 써왔지요.」

김삿갓이 그렇게 말하자, 훈장은 별안간 눈알이 휘둥그래지며, 

「위위...뭐라구요? .........나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 그게 무슨 음담이오?」
하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이 꼭 알고 싶다면 종이에 적어 드리기로 하리다.」

그리고 김삿갓은 종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고, 거기에 해설까지 달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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