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방랑시인 김삿갓 1-141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5. 25. 16:27

방랑시인 김삿갓 1-141 회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爲爲不厭 更爲爲 (위위불염 갱위위)
不為不為 更爲爲 (불위불위 갱위위)


훈장은 종이를 집어 들고 한문과 해설문을 한참 동안 눈여겨 보다가 별안간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것이었다.

「과연 옛날 사람들은 남녀 간의 묘리를 잘도 묘사해 놓았구나.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라는 말은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 말이 아주 실감이 나시는 모양이구료.」
「실감이 나다 뿐이겠어요. 허기는 여자를 좋아하기는 선생도 나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오. 안 그래요?」

훈장은 별안간 역습으로 나온다. 김삿갓은 정면으로 질문을 받고 웃을밖에 없었다.

「나한테서도 거기 대한 대답을 꼭 들어야만 하시겠소?」

그러자 훈장은 소리 내어 웃는다.

「하하하........허기는 대답은 들으나마나지요. 사내치고 계집 싫어하는 사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까요. 만약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있다면 나는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그 사람의 얼굴을 꼭 한번 보아 두고 싶소이다.」
「하하하....... 그 방면에는 각별히 관심이 깊으신 모양이구요?」 
「모두들 체면을 지키느라고 점잔을 빼고 있기는 하지만, 한꺼플 벗겨 놓고 보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계집 좋아하기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요. 

<점잖은 개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고, 점잖은 사람일수록 종년의 치마 속에 손을 먼저 집어 넣는다오.」 
「하하하... 종년의 치마 속에 손을 많이 집어넣어 보신 말씀 이구료. 허기는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은 <삼충 동물(三衝動物)>이라고 일러 오는 모양인가봅니다.

김삿갓이 그렇게 말하자, 훈장은 또다시 눈이 휘둥그레진다. 

「뭐라구요? 사람을 삼충동물이라고 부른다구요? 선생은 아시는 것이 너무도 많소이다. 도대체 삼충동물이란 무슨 뜻이오이까」
「훈장어른이 삼충 동물이라는 말도 모르시오?」

그러자 훈장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엉터리 훈장이라는 사실을 선생한테만은 이미 고백하지 않았소니까. 그런 줄을 아시고, 삼충동물에 관한 설명을 들러주소서.」

자기 입으로 엉터리 <훈장>이라고 자처하고 나오는 데는 더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내가 설명할 테니 들어 보시오. 삼충이라는 말은 석삼(三)자와 찌를 충(衝) 자요. 그러니까 삼충 동물이라는 말은 세 번 찌르는 동물이라는 말이지요.」
「세번 찌르다뇨? 무엇을 세 번 찌른다는 말씀이오?」
「여자를 찌르는 방식이 세 가지라는 말이지요.」
「엇! 여자를 찌르는 방식이 세 가지 뿐이라구요? 여자를 찌르는 방식이 어째서 세 가지뿐이란 말씀이오. 그 사람은 아마 기술이 형편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이구요.」

훈장이 엉뚱한 오해를 하는 바람에 김삿갓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내 얘기는 그런 얘기가 아니오. 사람의 일생을 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셋으로 나눠 보았을 때, 청년기에는 여자를 만나기 만 하면 찌른다고 해서 청년기를 봉충기(逢衝期)라 부르고, 장년기에는 여자를 골라 가면서 찌른다고 해서 택충기(擇衝期)라 부르고, 나이가 많아 이도저도 안되는 노년기에는 여자 얘기가 나오면 <흥! 훙!>하고 콧소리만 하게 되므로, 그 시대를 비충기(鼻衝期) 라고 부른다는 것이지요.」

훈장은 그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는다.

「과연 삼충 동물이라는 말은 명담 중의 명담이올시다.」

이진수라는 인간은 천하의 협잡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결 파(波)>자를 <물가족 피>라고 읽을 정도의 판무식장이가 훈장이랍시고 으스대는 것도 놀라운 협잡이 아닐 수 없는데, 눈병에는 어린 아기의 오줌을 넣으면 좋다는 경험만 가지고 약국까지 개입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방랑시인 김삿갓 1-142 회

그러고도 훈장 노릇과 의원 행세를 당당하게 하고 있으니. 그 뱃심과 그 파렴치는 가히 알아줄 만하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그와 비슷한 협잡꾼은 어느 사회에나 흔히 있는 일이다. 사기 사건으로 징역을 살고 나온자가 애국지사연하는 것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이진수 훈장은 협잡성은 많아도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러기에 그는 김삿갓의 손을 움켜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삼충 선생! 내가 선생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김삿갓은 삼충 선생이라 불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훈장의 손을 떨쳐 버렸다.

「에이, 여보시오. 내가 왜 삼충 선생이란 말이오.」

그러자 훈장은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면서 말한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선생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소이다.」

훈장이 정색을 하고 나오니, 김삿갓도 정색을 아니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지 어서 말씀을 해보시죠.」
「선생은 학문이 놀랄 만큼 박식한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공맹재의 훈장 자리를 선생이 맡아 주시오. 나로서는 간곡한 부탁이에요」

김삿갓은 천만 뜻밖의 부탁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선생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선생과 나는 금시초면인 사이가 아니오? 선생은 내가 어디서 굴러 먹던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서당의 훈장 자리를 맡아 달라고 하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요?」

물론 김삿갓은 애시당초 훈장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진수는 김삿갓의 손을 다시 움잡으며 간곡하게 말 한다.

「나는 물론 선생의 과거를 전연 몰라요.. 금강산 구경을 가는 길이라는 말씀은 잠깐 들었지만,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이까. 선생이 예사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일은 몇 해 동안 연기하시고, 나 대신에 이 마을의 서당을 좀 맡아 주세요. 나로서는 간곡한 부탁이에요.」

김삿갓으로서는 상상 못했던 부탁이었다. 협잡꾼의 입에서 설마 그와 같은 양심적인 부탁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에게 훈장 자리를 넘겨 주시겠다니 고맙기는 고맙소이다. 그러나 나는 훈장 노릇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려니와, 아이들을 가르칠 만한 실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김삿갓이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자. 이진수 훈장은 펼쳐 뛰며 손을 내젓는다.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이왕 말이 난 김에 모든 것을 솔직이 말씀드리지요. 나는 오늘날까지 어거지로 훈장 노릇을 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훈장으로 있어 가지고서는 앞길이 창창한 이 마을 아이들의 장래를 송두리째 망쳐 버리게 되는 거예요. 내가 비록 사리사욕을 위해 훈장 자리를 어거지로 타고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전정(前程)을 끝까지 망쳐 놓을 수는 없어요. 내가 아무리 거지 발싸개 같은 협잡꾼이기로, 아직까지 양심의 그루터기만은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훈장 자리는 선생이 꼭 받아 주세요.」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이진수가 훈장으로 있으면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삿갓 자신이 문장 자리를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선생은 지금까지 훈장 자리를 잘 지켜 오시다가 별안간 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내가 나타나지 않은 줄 아시고, 그 자리를 그냥 지켜 나가도록 하시오.」

그 말에 이진수 훈장은 도리질을 크게 하면서 말한다.

'좋 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람데오  (0) 2025.05.25
✍️다 늙어서 겨우 깨달은 것 5가지  (0) 2025.05.25
🍏 노인이 십니까? 어른이십니까?  (0) 2025.05.25
♡ 천적(天敵)  (0) 2025.05.24
💛아름다운 감동 이야기  (0)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