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4 회
가령 《천자문》 속에는,
웃사람이 화목하면 아랫사람은 절로 존경하게 되고,
남편이 노래하면 아내는 그에 따른다.
上和下睦 (상화하목)
夫唱婦隨 (부창부수)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인화(人和)의 근본을 명시한 말인 것이요,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있는 고기는 물에 살고, 날개 가진 새는 공중을 난다.
海鹹河淡 (해함하담)
鱗潜羽翔 (린잠우상)
같은 말은 바닷물과 강물의 특징과, 물고기와 날짐승의 특색을 간단명료하게 구별해 놓은 말이다.
그리고 또,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주고,
오동 나뭇잎을 일찍 시든다.
枇杷晚翠 (비파만취)
梧桐早凋 (오동조조)
고 한 것은 식물학의 현상을 설명한 말이요,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을 믿지 말라.
罔談彼短 (망담피단)
靡恃已長 (미시기장)
고 한 것은 인간학의 도리를 설파한 말이요,
구름이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이 엉기면 서리가 된다.
雲騰致雨 (운등치우)
露結為霜 (로결위상)
고 한 것은 기상학의 원리를 깨우쳐 준 말이다.
그 모양으로 《천자문》에 수록되어 있는 2백 50 수의 문장은 하나 하나가 주옥 같은 내용이건만, 우리나라에서는 자고 이래로 《천자문》이라는 책을 아이들에게 자연 어떻게 가르쳐 오고 있는가.
대여섯 살 먹은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서당에 가면 맨 먼저 배우게 되는 이 '천자문이다. 그러므로 훈장들은 《천자문》 속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은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고, 오직 한자 한자의 글자만을 가르쳐 왔었다.
그러므로 《천자문》 한 권을 다 배우고 나도 1천 자의 글자만 알았다 뿐이지, 그 속에 담겨 있는 주옥같은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김삿갓은 그와 같이 그릇된 교육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첫머리에 나오는 <天地玄黃> 넉 자를 아이들에게 가리켜 보이며.
「너희들은 이 네 글자들을 어떻게 배웠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하고 시험을 해보았다.
아이들은 <天地玄黃> 네 글자를 보고 열이 하나같이.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하고 자신만만하게 소리를 높여 읽는다.
선생한테서 그런 식으로 배웠으니, 그렇게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김삿갓은 다시 물어 본다.
「<天地玄黃)이라는 네 글자로서 하나의 뜻을 이루고 있는데, 너희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느냐?」
그러자 조무래기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은 <天地玄黃>을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으로만 배웠읍니다. 거기에 무슨 뜻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오히려 김삿갓을 나무라는 투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글자만 가르쳐 주고 뜻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항의를 하는 것은 오히며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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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 회
김삿갓은 옆에 앉아 있는 《(동동선습(童蒙先習)》을 읽는 아이에게 물어본다.
「<天地玄黃>네 글자의 뜻을 너는 알고 있겠지? 네가 한번 대답해 보아라.」
그러나 그 아이도 도리질을 하면서,
「저도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으로만 배워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혼자 탄식하였다.
(하나 하나의 글자만 가르쳐 주고, 전체의 뜻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은 마치 커다란 숲을 앞에 놓고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 이름만 가르쳐 준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까지 우리들은 여러 백년 동안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켜 왔으니, 그로 인해 정신문화가 얼마나 낙후되었을 것인가.)
김삿갓이 잠시 한탄에 잠겨 있노라니까. 한 아이가 김삿갓에게 묻는다.
「선생님! <天地玄黃>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의 넉자 뿐인데, 거기에 무슨 뜻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김삿갓이 대답한다.
「<天地玄黃>의 네 글자를 한 자 한 자 따로 떼어서 읽으면 너희들의 말대로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네 글자는 한 자씩 따로 떼어서 배울 게 아니라, 네 글자를 하나로 묶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식으로 배워야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두들 괴이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 그러면 <寒來暑往>이라는 네 글자는 무슨 뜻이옵니까?」
「<寒來暑往>은 <찰 한, 올 때, 더울 서, 같 왕>이라는 네 글자로 되어 있으니까. <추위가 오니 더위가 간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천자문>에 실려 있는 모든 문장은 그런 식으로 읽어야만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들을수록 흥미가 있는지 또다시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그러면 <秋收冬藏>이라는 네 글자는 무슨 뜻이옵니까?」
김삿갓은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秋收冬藏>을 글자로 읽자면 <가을 추, 겨울 수, 겨울 동, 간직할 장>자로 읽는다. 그러나 그 넉자를 한데 묶어 뜻으로 읽는다면 <가을에는 거두어 들이고, 겨울에는 저장한다>라고 읽어야 한다. 너희네 집에서는 가을이면 모든 곡식을 거두어 들여서, 겨울에 먹으려고 창고에 쌓아 두는 것을 너희들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秋收冬藏>이란 바로 그것을 말한 것이니라.
아이들은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아낸 것을 무던히도 즐거워하며 또 묻는다.
「선생님! 그러면 <雲騰致雨>는 무슨 뜻이옵니까?」
「<雲騰致雨>는 <구름이 공중에 올라가 비가 된다>는 소리요. 그 다음에 나오는 <露結爲霜>은 <이슬이 엉켜 서리가 된다>는 소리다. 비는 구름 속에서 내리고, 이슬이 얼어 서리가 된다는 것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겠지?」
김삿갓은 시험삼아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고개를 갸울이며,
「선생님! 구름이 공중에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이 엉켜서 서리가 된다는 것은 처음 들어 또는 말이옵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하고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기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웃으면서 질문하는 아이들 이렇게 나무라 주었다.
「예끼, 이 녀석! <구름이 공중에 올라가서 비가 되고, 이슬이 엉켜서 서리가 된다는 말을 처음 들어 본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 그처럼 새빨간 거짓말을 해서는 못 쓰는 법이다.」
그러자 그 아이는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처음 들어 보는 말이옵니다.」
「그렇다면 너한테 하나 물어 보기로 하겠다. 너는 《천자문》을 다 배우고 나서 지금은 《동몽선습》을 읽고 있지 않느냐. 《천자문》에 나오는 <雲騰致雨, 露結爲霜)이라는 말이 바로 그 소리였는데, 그 소리를 처음 들어 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아이는 그제야 뒤통수를 툭툭 치면서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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