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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17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5. 15:51

방랑시인 김삿갓 2-17 회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죄악이라니, 아무리 염라국이기로 그럴 수가 있는가.」
제 말씀을 조금만 더 들어 보십시오. 염라 대왕께서는 의원님의 대답을 듣고 나더니, 대뜸 얼굴에 노기가 충만해지면서 옆에 있는 사령 (使令)에게 다음과 같은 불호령을 내리시더이다. 즉 <여 봐라! 저놈을 당장 결박을 지어 기름가마에 처넣어 버려라. 내가 그동안 병든 인간들에게 많은 호출장을 보냈건만, 한 놈도 오지 않기에 웬일인가 했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저놈이 그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었구나. 저런 놈을 살려 두었다가는 내가 망할 판이니 지금 당장 저놈을 지글지글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 넣어라!> 하시더이다.」
「뭐라구?..........그러면 그 의원은 지글지글 끓는 기름가마 속에 서 타죽었다는 말이냐?」

무봉은 마치 자기 자신이 기름 가마 속에서 타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떨며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 서방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술 더 떠서, 

「그렇습니다. 그 분이 기름 가마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타죽는 꼴을 저는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읍니다.」

강 서방이 그렇게 말하자,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별안간 <와아!>하고 함성을 올린다. 평소에 무봉에 대해 쌓이고 쌓였던 원한이 환성으로 폭발되 었던 것이다.

상상조차 못 했던 환성을 마을 사람들이 터뜨리는 바람에 김삿갓은 깜짝 놀랐다. 오늘은 무봉이 마을 사람들한테 무참하게 욕을 보고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일로 주눅이 들어 버릴 무봉은 아니었다. 무봉은 분노의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호통을 지른다.

「통곡을 해도 시원치 못할 일에 웃기는 왜들 웃는가. 내가 죽으면 그대들은 그렇게도 기쁘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부랴부랴 웃음을 거두며,

「아니옵니다. 차수 어른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복(服)을 입어야 할 판인데, 어찌 웃음을 웃으오리까. 저희들이 웃는 것과 차수 어른께서 돌아가시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옵니다.」 장 서방은 연극이 너무 지나쳤다 싶은지,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차수 어른!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차수 어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옵니다.」
김삿갓이 짐작컨대, 무봉이 평소에 되지 못한 거드름을 부리며 마을 사람들을 음으로 양으로 멸시해 왔기 때문에, 강 서방은 심술이 도져서 무봉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계획적으로 그런 연극을 꾸며 냈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사태가 너무도 심각하게 되어가므로 강 서방은 마지못해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무봉도 그러한 사실을 이제는 제대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벌이는 것은 오히려 어른답지 못하다고 판단한 탓인지 무봉은 짐짓 얼굴에 미소를 띠며,

「내가 죽으면 강 서방은 복을 입어 줄 용의가 있는가?」

하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물었다.

강 서방이 대답한다.

「차수 어른은 우리 마을의 지도자 어른이시옵니다. 만약 차수 어른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다같이 복을 입어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그래? 내가 죽으면 자네도 복을 입어 주겠다는 말이지? 그야말로 고마운 말씀일세그려!」

그리고 먼 하늘을 잠시 우러러보다가 별안간,

「하하하하하...」

하고 방안이 떠나갈 듯이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차수 어른! 별안간 왜 그러시옵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보니, 무봉은 좌중을 둘러보며 다음과 같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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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18 회

「염라 대왕에게 유죄 판결을 받고 기름 가마 속에서 타죽었다는 그 의원 친구 말야. 그 친구가 환자들의 병을 백발백중으로 고쳐 주었다는 것을 보면, 그 친구가 명의임에는 틀림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러나 명의라는 것들은 열이 하나같이 주변머리가 없는 못난 것들이란 말야. 그러니까 염라 대왕한테 불려가 비참하게 죽어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하.」

조금 전까지도 분노에 넘쳐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일순간에 손바닥을 뒤집듯 표현하여 당당하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데는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삿갓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리둥절해 하며 묻는다.

「명의는 주변머리가 없는 못난 것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옵니까?」

무봉은 김삿갓을 돌아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삿갓 어른조차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시겠다는 말씀이오? 명의라는 것들은 주변머리가 워낙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염라대왕 에게 불려 가기만 하면 반드시 유죄 판결을 받고 죽게 마련이란 말이오.」

김삿갓은 아직도 무봉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사람을 많이 살려 준 명의에게 염라대왕이 어째서 유죄 판결을 내렸느냐고 호통을 친 분은 바로 무봉 선생이 아니었소이까.」
「하하하, 그것은 일시적인 농담에 불과했던 말이었지요. 명의는 염라 대왕에게 불려 가기만 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어째서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삿갓 선생은 생각을 해보시오. 앓는 사람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다면 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할지 몰라도 염라대왕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시오. 앓는 사람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 염라대왕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소이까. 그러니까 염라대왕은 명의만 보면 반드시 죽여 버리게 될 게 아니오. 그만하면 나의 말을 알아들으시겠소이까?」

김삿갓은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면 의원은 주변머리가 있으려면 환자를 될수록 많이 죽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러자 무봉은 팔을 휘휘 저으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염라 대왕의 입장에서 보면 명의보다는 나 같은 돌팔이 의원을 훨씬 고맙게 생각할 게 아니오? 염라 대왕은 나를 보면 <그대는 평소에 나의 식량을 넉넉하게 공급해 준 공로가 지대하니, 인간 사회에 되돌아가서 백년 만 더 살고 돌아오너라!> 하고 즉석에서 무죄 석방을 시켜 주셨을 것이오. 하하하.....여보게들! 내 말이 잘못된 말인가?」

무봉이 좌중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하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김삿갓은 무봉의 엄청난 배짱에 머리가 절로 수그러질 지경이었다. 무봉은 협잡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위기일발의 백척간두에서 천하 대세를 멋들어지게 뒤엎어 놓는 그의 재주에는 누구도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봉은 강 서방에게 술잔을 불쑥 내밀어 주며 허심탄회한 어조로 말한다.

「염라 대왕에게 불려가 재판을 받느라고 그대는 마음 고생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삼십 년을 더 살고 오라는 판결을 받았다니, 이제는 안심하고 인생을 즐기게. 뭐니 뭐니 해도 인생은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것일세.」

그리하여 술좌석은 다시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마침 그때, 떠들썩하던 저쪽에서 누군가가 김삿갓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삿갓 선생은 이리 오셔서, 이 사람들에게 심판을 좀 보아 주서야 할 일이 생겼읍니다.」

김삿갓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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