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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23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8. 16:10

방랑시인 김삿갓 2-23 회

「아직도 몸이 채 녹지 않아 술을 두어 잔 더 마셔야 하겠는걸!」

하고 또다시 자기 손으로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이었다.

좌중에는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이제는 삿갓 선생이 심판을 내려 주실 차례입니다.」

좌중의 시선은 모두가 김삿갓에게 집중되었다.

김삿갓은 세 선수의 발언을 무척 재미나게 듣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에 등급을 매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왜냐하면 김삿갓은 평소부터 무슨 일에나 우열을 가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좌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 분의 말씀은 모두가 훌륭하여, 나로서는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릴 만한 자신이 없읍니다. 오늘밤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진진했으니까 심판은 안하기로 하고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어떠하겠소이까?」

그러자 맨 먼저 반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이 무봉이었다.

「삿갓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내기에는 반드시 승부가 따라야 하는 법이오. 심판을 안 하면 어쩌자는 것이오.」

구경꾼들도 심판을 안 해주겠다는 말에 모두가 불만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오늘밤 내기에는 막걸리가 두 말이나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심판을 안 해주시면 이제부터 우리들이 먹게 될 막걸리 값을 누가 냅니까.」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였다. 승부를 가려 주지 않으면 막걸리 값을 낼 사람이 없을 게 아닌가.

「알겠소이다. 그러면 심판을 무봉 선생에게 부탁하면 어떠하겠소이까.」

김삿갓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무봉은 기다리고 있은 듯 얼굴을 번쩍 치켜 들며,

「하라면 하지. 그까짓 심판쯤 누가 못 할라구!」
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좌중은 열이 하나같이 대경실색하는 기색을 보이며,

「그건 안 됩니다. 강을 건너다 사공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세 선수들도,

「삿갓 선생은 우리 세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주기가 거북스러워 그러시는 모양이지만, 저희들은 어떤 심판이라도 달게 받을 생각이니 삿갓 선생께서 직접 심판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김삿갓은 회피할 재주가 없게 되 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애초의 약속대로, 내가 심판을 맡기로 하지요. 그러나 세 선수의 발언 내용이 워낙 난형난제(難兄難弟)하고 막상막하일 정도로 출중하여, 나로서는 등급을 매기기가 여간 어렵지 않군요. 그러니 이 일을 어떡하죠?」
「아무래도 좋으니, 공평 무사하게만 해주시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일단 등급을 발표하기로 하겠소이다. 그러나 등급을 발표한 뒤에도 불평을 품은 분이 있으면 기탄없이 이의를 제기해 주시오.」

김삿갓이 거기까지 말하고 등급을 기록한 종이를 손에 집어 들자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김삿갓은 심사 용지를 들여다보며, 좌중에게 다시 한번 설명 한다.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오해가 없기 위해, 심사 요령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혀 두겠읍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듯이, 심사 기준은 누가 거짓말을 더 잘했느냐 하는데 두었읍니다. 그러나 그 점만 가지고서는 충분할 것 같지 않아서, 물리적 조건도 가미해 가면서 결정한 것이니까, 그 점은 미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좌중은 등급을 아는 일만이 궁금하여 제각기 입을 모아 떠든다.

「심사 기준은 그만 설명하고 빨리 등급을 발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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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24 회


김삿갓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 조용한 어조로 등급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장원(元)......백두산 선수 박 서방!  차석 (次席).........함경도 선수 김 서방! 삼석 (三席).........평안도 선수 이 서방!」

심사 결과가 발표되자 좌중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백두산 만세!」 하고 합성을 올린다.

김삿갓은 세 선수의 얼굴 표정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평안도 선수인 이 서방은 심판에 별로 불복이 없는지, 여러사람들과 함께 웃어 쌓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함경도 선수인 사팔뜨기 김 서방만은 심판에 불만이 많은지, 사팔뜨기 눈을 이리저리 휘번득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무봉도 김삿갓의 심판에 불복인 모양인지,

「삿갓 선생은 심판을 잘못하신 게 아니오?」

하고 노골적으로 항의를 하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선수 자신들이 심판에 불만을 품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선수도 아닌 무봉이 남의 심판에 공개적으로 불복을 말한다는 것은 결코 점잖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웃으면서 무봉에게 이렇게 반문하였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나의 심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생각지 아니합니다. ...... 무봉 선생은 누가 장원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무봉이 당당하게 큰소리도 대답한다.

「장원은 마땅히 함경도 선수인 김 서방에게 줘야 옳을 것이오.」 

함경도 선수인 김 서방은 그 말에 용기가 솟는지, 얼굴에 흰색이 만면해진다. 구경하던 대중들도 수긍되는 점이 있는지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허기는 말소리가 꽁꽁 얼어붙었다가, 이듬해 봄에야 들려온다는 것은 거짓말치고는 보통 거짓말이 아니야!」

하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김삿갓은 물론 자신의 심판을 만장일치로 승복해 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판에 불복하고 나서는 데는 난처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떤 내기에 있어서나 심판에 대한 불평 같은 것은 으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의 불평 같은 것은 애당초 상대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선수가 아닌 사람들조차 불평을 들고 나온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김삿갓은 물론 자기 딴에는 공평 무사하게 심판하느라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팔뜨기 함경도 선수가 노골적으로 불평을 표시 하는 데는 한마디의 변명이 없을 수 없었다.

「함경도 선수인 김 서방과 백두산 선수인 박 서방의 발언은 너무나 기발하여, 나로서는 장원을 결정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생각다 못해 한 가지 기준을 새로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따라 장원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김삿갓이 그 기준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무봉이 또다시 반론을 들고 나온다.

「말소리가 공중에 꽁꽁 얼어붙어 있다가, 이듬해 봄이면 공중에서 수많은 말소리가 들려 온다는 것은 얼마나 기발한 이야기요. 그러니까 내 생각 같아서는 장원은 응당 함경도 선수인 김 서방 에게 돌려줘야 옳을 것 같소이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월권적인 발언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는지,

「같은 함경도끼리라고 편은 들지 말기요.」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김삿갓의 귀에 조그맣게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러한 속삭임을 듣고 내심 환멸의 비애를 느꼈다. 무봉이 기를 써가며 사팔뜨기 김 서방을 장원으로 치켜세우는 이유가 바로 지방색에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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