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46 회
그러나 마나님은 겁을 내는 기색조차 없이, 어디까지나 당당한 자세로 중놈을 또다시 꾸짖는다.
「아니, 대사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고 안 들어주는 것은 순전히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일인데, 어찌하여 그런 일을 내기로써 결정하자는 말씀이오. 나는 이미 대사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으니, 여러 말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시오.」
그러나 이제는 말로 타이른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설 중놈은 아니었다.
중놈이 다시 말한다.
「나는 모든 일을 말재주로 결정하자고, 이미 타협안을 내놓았소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말재주로써 승부를 결정하든가, 그렇잖으면 무조건 나의 요구를 들어주든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하시오. 그 이외의 방법은 어떤 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그야말로 천부당 만부당한 억지다.
김삿갓은 나무 그늘에 숨어 관망하고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죽일 놈을 보았나!)
하고 분노를 마지 않았다.
마나님은 중놈의 고집을 꺾기가 어려움을 깨달았는지,
「좋소이다. 그러면 대사가 내기를 걸어 오시오. 그러면 내가 대(對)를 놓아 보이겠소이다.」
하고 내기를 응낙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저 마나님이 어떤 봉변을 당하려고 해괴한 내기를 응낙하는가 싶어 가슴이 철렁하였다.
중놈은, 이제 됐다 싶은지 크게 기뻐하며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내기말>을 씨부려대는 것이었다.
「일, 일룡사(一龍寺)사는 중이
이, 이용사(寺) 가는 길에
삼, 삼로(三路) 거리에서
사, 사대 부인(士大夫人)을 만났으매
오, 오음(五陰)이 불통하여
육, 육효(爻)로 점을 치니
칠, 칠괘(七卦)도 좋다마는
팔, 팔괘(八卦) 더욱 좋다
구, 굽어라
십, X좀 하자.」
중놈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도 해괴한 음담패설이었다. 김삿갓은 중놈의 음담패설을 엿듣고 나자, 저 마나님이 그런 상말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 걱정이 태산 같았다.
왜냐하면 양반댁 안방 마나님이 그와 같은 음담패설에 응답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즉석에서 응답을 못 할 경우에는, 마나님은 꼼짝못하고 욕을 보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표면에 나서야 하겠구나!)
김삿갓은 그런 생각조차 해보며, 마나님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나님의 태도는 시종이 여일하게 태연자약한 것이 아닌가.
중놈은 이제야 욕심을 채우게 되었구나 싶은지 크게 기뻐하면서,
「내가 내기를 걸었으니, 이제는 그대가 내기를 받아야 할 게 아닌가. 자신이 없거든 여러 말 말고 빨리 내 품 안에 안겨요!」
하고 말하며 여인을 품어 안으려는 듯, 두 팔을 좌우로 활짝 벌려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마나님은 자세를 바로 하더니 중놈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벼락 같은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이 천하의 잡놈아! 내가 다시 한편 훈계를 내릴 테니 그대는 내 말을 똑똑히 듣거라.」
그리고 그녀는 말재주 내기에 대한 응답을 다음과 같이 외쳐 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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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47 회
「일, 일편단심(一)이 내 마음
이, 이심(心)이 어찌 되랴
삼, 삼강(三綱)이 뚜렷하고
사, 사리(事理)가 분명커늘
오, 오할(五割)할 이 잡놈아
육 육환장(六環杖)둘러 짚고
칠, 칠가사(漆袈裟)둘러메고
팔, 필도(八道)를 편답(遍踏)하며
구 구하는 게
십, x이더냐!」
마나님의 호통은 추상 열일같이 준엄하였다.
김삿갓은 마나님의 준엄하고도 절묘한 응답에 무릎을 칠 듯 탄복하였다.
마나님은 지금까지는 말끝마다 <대사님, 대사님> 하고 깍듯이 존재를 해왔건만, 이제 와서는 <오할할 이 잡놈!>이라고 불호령을 지르는데 그 위세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중놈은 혼비백산 하여.
「예끼, 천하에 무서운 계집이로구나!」
하고 뇌까리며 즉석에서 줄행랑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중놈이 도망을 가버리자, 마나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길을 다시 조용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부인이기에, 김삿갓은 먼빛으로나마 머리를 몇 번이고 수그려 보였다.
파 도둑
이윽고 석양 무렵에 서당으로 돌아오니, 무봉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몹시 초조한 빛을 보이며 다급스럽게 말한다.
「선생은 어디를 갔다 오기에 사람을 눈알이 빠지도록 기다리게 하시오?」
「왜 그러시오?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김삿갓은 왜 그러는가 싶어 서당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무봉은 벌떡 일어나더니 김삿갓의 손목을 끌고 밖으로 나오며,
「여기는 아이들이 있으니 약국으로 가십시다. 삿갓 선생과 조용히 상의할 일이 있어요.」
이윽고 김삿갓은 약국에서 무봉과 단둘이 마주 앉았다.
「조용히 상의할 일이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봉은 탄식을 해가면서,
「어젯밤에 우리 마을에 커다란 불상사가 있었어요. 나도 조금 전에야 알았는데,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고 밑도끝도없이 씨부려 대는 것이었다.
「마을에 불상사가 나다뇨? 불상사란 도대체 어떤 일을 말하는 겁니까? 과부가 도망이라도 갔다는 말씀인가요?」
김삿갓은 일부러 너스레를 보였다.
무봉은 손을 휘 내저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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