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55 회
「한 사람의 범인을 관대하게 보아 주기 위해 마을 사람 전체가 도둑의 구멍을 쓰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범인만은 분명히 밝혀 내야 합니다.」
도둑이 누구인가를 밝혀 내자는 마을 사람들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한 이론이었다. 범인이 마을 사람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범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도둑의 혐의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니, 그처럼 불쾌한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무봉은 계원들의 그러한 심정을 알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의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는 하겠네. 그러나 자네들의 주장대로 범인을 밝혀 놓고 보면, 그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거북할 것인가 말일세. 호랑이도 쏘아 놓고 보면 불쌍하게 여겨지는 법이야.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밝혀 내면 그 사람은 영원히 매 장을 당하게 되는 것이야. 그러니까 한 번쯤의 과실은 너그럽게 보아주는 뜻에서, 범인을 굳이 밝혀내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래야만 범인도 개과천선하여, 우리 마을이 명실상부한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있을 게 아니겠는가.」
무봉 김삿갓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설득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차수 어른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모두가 나쁜 짓만 해먹다가, 지금은 개과천선하여 지상 낙원을 이루어 보려고 모여 온 사람들이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 우리 마을만 은 도난 사건이 한 건도 없었읍니다. 그런데 개과천선했다는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고 하니, 그런 사람을 그냥 두고서야 어떻게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인만은 밝혀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역설하고 나서자 다른 계원들도 모두들 입을 모아
「옳소! 그 말이 옳소!」
하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계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성싶어 무봉은 입장이 점점 난처해 왔다. 그렇다고 김삿갓과의 철석 같은 약속을 배반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봉은 생각다 못해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요. 그러나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이 얘기는 이 정도로 덮어 두자고 하는데, 자네들은 왜들 그렇게도 말이 많은가?」
그 정도로 윽박질러 놓으면 무난히 수습될 줄로 알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그럴수록 반발이 심했다.
「차수 어른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옵니까. 범인을 알아 낼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말부터 하지 마실 일이지, 마을 사람 전체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워 놓고 이제 와서 범인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면 그런 무책임한 말씀이 어디 있사옵니까.」
무봉은 자꾸만 궁지로 몰려들어가고 있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계원들의 말에는 추호도 틀림이 없었다. 범인을 밝혀 낼 자신이 없으면 숫제 범인은 마을 사람이라는 말부터 하지 않았어야 옳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마을 사람>이라고 장담을 해놓았으니, 그것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도둑놈으로 몰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백락촌 주민들은 워낙 산전수전을 많이 겪어 오는 동안에 성질이 괴퍅스럽게 되어서, 경우가 거울처럼 밝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소부터 되지 못하게 거들먹거리는 무봉의 행실이 몹시 아니꼽게 여겨져서, 이번 기회에 콧대를 꺾어 주려는 속셈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봉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계원들의 반발에 화가 치밀어올라 앞뒤도 가리지 않고 또다시 큰소리를 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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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6 회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사고방식이 왜 그렇게들 유치한가. 내가 범인을 찾아낼 방법을 정말로 몰라서 모르노라고 말한 아는가, 지도자라는 사람이 그만한 슬기도 없어 가지고서야 어떻게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범인을 찾아내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낼 자신이 있네. 그러나 계원 한 사람을 매장시켜 버리기가 아쉬워서 일부러 범인을 밝혀 낼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모두들 그렇게 알고 나의 고충을 이해해 주기 하라네..」
무봉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부각시켜 놓으려고 마구 큰소리를 쳐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계원들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계원 하나가 대뜸 반론을 들고 나온다.
「차수 어른께서 범인을 굳이 밝혀 내지 않으시려는 심정에는 저희들도 존경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범인을 감싸 주기 위해, 마을 사람 전체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울 수는 없는 일이 아나옵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범인은 반드시 밝혀 내세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도둑의 누명을 쓴 우리들이 무슨 낮짝으로 지상 낙원을 이루려고 노력할 수 있겠읍니까.」
사태가 그렇게까지 악화되자, 무봉은 범인을 밝혀 내지 않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눌러 버리려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시호 무봉은 김삿갓과의 약속을 무시해 버린 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좋아! 자네들이 그렇게까지 극성을 부리니 내가 이 자리에서 범인을 밝혀 내기로 하겠네. 법인을 알아내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자네들의 손 냄새만 맡아 보면,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낼 수 있으니까 말일세.」
계원들은 그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하였다.
「예? 손 냄새를 맡아 보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구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봉은 계원들이 자기를 경악과 정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심으로는 크게 만족스러웠다.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뚜렷하게 확립되어 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한마디 더 보태어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가 되려면 머리를 잘 써야 하는 법이야. 손 냄새를 맡아 보아서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니까 자네들은 무척 놀라는 모양인데,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자 계원 하나가 손을 들며 묻는다.
「차수 어른! 손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을 대번에 알아낼 수 다는 말씀이 정말입니까.」
「이 사람아! 그런 것도 몰라 가지고서야 어떻게 향약을 지도 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실상인즉, 손 냄새를 맡아 보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해 준 사람은 김삿갓이었다. 그렇건만 무봉은 마치 자기 자신이 생각해 낸 것처럼 거드름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손 냄새를 맡아 보고 어떻게 도둑놈을 알아낸다는 말씀입니까.」
계원들은 아직도 불가사의한 모양이었다.
이에 무봉은 통쾌하게 웃으면서 또 한번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이제부터 손 냄새를 맡아 보아서 범인을 알아내기로 할 테니, 자네들은 꼼짝 말고 그 자리에서 손만 내밀고 있게.」
계원들은 영문을 몰라 제각기 자기 자신의 손 냄새를 맡아 보며 한마디씩 중얼거린다.
「귀신이 아닌 바에야 손 냄새를 맡아 보고 범인을 어떻게 알아낸다는 말일가.」
「누가 아니래! 재수가 사나우면 남의 똥자리에 주저앉게 될지도모를 게 아냐?
무봉은 그 소리를 듣고 또 한번 큰소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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