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33 회
「옛날 시에 <만사무십일조간, 삼공물환차강산(萬事無心一釣芉 三公不換此江山)>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모든 욕망을 깨끗이 버리고 한 세상을 산천 경기와 더불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매우 운치 있는 생애가 될 수 있을 것이야. 나는 한평생을 영달에 급급해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모두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거든.」
하고 자조적으로 씨부리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취옹 노인의 말을 들을수록 모든 욕망을 버리고 되는 대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였다.
(그렇다!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고 한 조각 구름처럼 살아가기로 하자. 나 자신이 기세인이 되어 버리면, 누구와 더불어 시비(是非)를 가릴 것도 없고, 조상에 대한 죄도 절로 풀려 버릴 것이 아닌가.)
김병연은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자기도 모르게 시흥(詩興)이 솟구쳐 올라
「되는 대로 살아가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 제가 희시(戱詩)를 할 수 지어 보고 싶은데 들어주시렵니까.」
하고 말했다.
「자네가 시를 한 수 읊고 싶다구?......가만 있자. 지필묵을 갖다 줄 테니, 이왕이면 종이에 써주게.」
취옹 노인은 부랴부랴 붓과 종이를 갖다준다.
「저는 되는 대로 살아가라는 말씀에 매력이 느껴져서, 시(詩) 도 되는 대로 읊을 테니 한번 보아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김병연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일필휘지로 갈겨 놓았다.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취옹 노인은 고개를 이리 기웃거리고 저리 기웃거리며 시를 음미해 보다가
「나는 암만 보아도 도무지 알 길이 없네 그려. 자네가 한번 해석을 해주거나」
하고 말한다.
「하하하, 선생이 못 알아보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애초부터 희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시에 나오는 대죽(竹) 자는 <대로>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제가 설명할 테 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김병연은 자기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해 놓았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며 살아 보세.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물건 매매는 세월 돌아 가는 대로
세상 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취옹 노인은 김병연의 해설을 듣고 나서, 배를 움켜잡으며 웃는다.
「하하하..... 이것을 어찌 격(格)에 맞는 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희시라고 하지 않았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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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34 회
「격에는 맞지 않아도 명시 (名詩)임에는 틀림이 없네. 파격시(破格詩)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만한 시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야. 되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시상(詩想)이 매우 고답적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내 술 한잔 받게」
「아닙니다. 선생과 술을 나누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제가 한잔 올리겠읍니다.」
「에끼 이사람! 되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이 무슨 그런 감상적인 소리를 하고 있는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바로 그때, 주모가 돌아왔는지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할아버지! 저 지금 돌아왔어요. ............ 어머나! 오늘은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오신 모양이죠?」
하고 혼자 놀라는 소리가 들려 온다.
취옹 노인은 술을 마셔 가며 김병연에게 이렇게 귀띔을 해주었다.
「주모가 이제야 돌아온 모양일세. ............그러잖아도 지난번에 자네가 돈을 맡겨 놓고 한 달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아서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네. 자네가 온 줄 알면 무척 반가와 할 걸세.」
김병연은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몰라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주모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란다.
「어머나! 서울 손님 아니세요.」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김병연이 망건 바람인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며,
「아이구머니! 서울 양반이 의관도 갖추지 않고 이게 웬일이세요.」
하고 묻는다.
김병연은 주모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무척 기쁘기는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져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네. 그동안 잘 있었는가?」
하고 대답을 얼버무려 버렸다.
주모는 여전히 반가워 하면서 말한다.
「술값을 맡겨 놓고 어쩌면 그렇게도 안 오셨어요.」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참, 우리 집 영감님이 그러시는데, 서울. 손님은 지난번 백일장에서 장원 급제를 하셨다면서요?. 장원 급제를 하셨으면 한턱 내실 일이지 어쩌면 그렇게도 시치미를 떼고 계셨어요.」
그러나 취옹 노인이 대답을 가로막고 나선다.
「한턱 내기는 커녕 백일장에서 장원 급제한 것이 동티가 나서, 이제는 양반 노릇도 못 하게 되었단다.」
「양반이 양반 노릇을 못 하게 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녀자가 남의 집 불상사를 미주알고주알 캐어 묻는 법이 아니야. 잔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더 가져 오너라.」
취옹 노인이 한마디로 휘갑을 쳐버리자, 주모는 그 이상 아무 말도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안의 분위기에서 무엇인가 불길감을 느꼈는지 얼른 김병연에게 술을 따라 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거예요. 우리 집 할아버지처럼 세상만사를 죄다 훑어 버리고 술이나 드세요.」
김병연은 나이 어린 주모로부터 뜻하지 않았던 위로의 말을 듣자 별안간 눈시울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아무 영문도 모르는 여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자네는 새벽부터 어딜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하고 숫제 화제를 돌려 버렸다.
주모가 대답한다.
「가기는 어딜 가겠어요. 행여나 영지(靈芝) 버섯을 구할 수 있 을까 해서 산속으로 돌아다니다가 헛물을 켜고 돌아온걸요.」
「엣?...... 영지 버섯을 구하러 갔었다구? 영지 버섯은 무엇에 쓰려고?」
취옹 노인은 <영지 버섯>이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면서 주모를 나무란다.
「아니, 네가 오늘 아침에도 영지버섯을 따러 갔었단 말이냐. 영월이 아무리 산골이기로, 영지버섯이 어디 있다고 날마다 영지버섯을 따러 간다는 거냐.」
그러나 주모는 상글상글 웃으면서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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