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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35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4. 1. 17:21

방랑시인 김삿갓 1-35 회

「누가 알아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날마다 정성스럽게 찾아다니면 영지버섯이 기적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지 않아요.」 

김병연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취옹 노인에게 물어본다.

「영지 버섯을 무엇에 쓰려고 구하십니까.」

취옹 노인은 어이가 없는 듯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한다.

「저 애는 나를 신선(神仙)으로 만들고 싶어 새벽마다 영지버섯을 찾아 다닌다네.」
「신선이라뇨? 영지 버섯을 먹으면 신선이 됩니까?」
「옛날 한(漢)나라 때에, 중국에 상산(商山)의 사호(四皓)라는 네 명의 신선이 있었지. 그들은 날마다 영지버섯만 따먹고 살았기 때문에 결국은 신선이 되었다는 거야. 내가 며칠 전에 저 애한테 그런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저 애는 나를 신선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날부터 새벽마다 영지버섯을 찾아 나서곤 하는 거야. 그러나 영월 땅에야 영지버섯이 있어야 말이지.」

김병연은 그 말을 듣고 젊은 주모의 알뜰한 정성에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취응노인은 젊은 주모를 <낮에는 나의 딸이요, 밤에는 나의 마누라>라고 자기 입으로 공언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주모 자신도 취옹 노인을 <영감님>이라고도 부르고, 혹은 <아버지>라고도 부르고, 또 혹은 <우리 집 할아버지>라고도 불러 왔었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도록 복잡 미묘한 그들의 남녀 관계였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어떠하든 간에, 새파랗게 젊은 주모가 70 이 넘은 취옹 노인을 신선으로 만들려고 새벽마다 영지버섯을 찾아 헤맨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애정인가.

김병연은 생각이 그 점에 미치자, 불현듯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마누라를 연상하였다. 마누라 황씨도 사랑스러운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주모의 애정이 헌신적인 데 비기면, 마누라의 애정은 너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절실하였다. 그 증거로 며칠 전에 김병연이 죽어 버리고 싶다고 말했을 때, 마누라는 위로는 못 해주나마 대뜸,

<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떡하란 말예요.>

하고 시비조로 나오지 않았던가.

(그렇다! 취옹 노인과 주모처럼 헌신적인 애정을 누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세속적인 계류(繫留) 같은 것은 일체 끊어 버리고, 탁발승(托鉢僧) 모양으로 혼자서 방랑 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한 인생행로가 될지도 모른다.)

김병연은 취옹 노인을 상대로 술을 마셔가며 마음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골똘하게 하고 있었다.

김병연은 취옹 노인과 함께 붙박이로 술을 마시다가, 닷새 째 되는 날 저녁 무렵에야 집에 돌아가려고 취옹정을 나섰다. 취옹 노인은 석별을 아쉬워하며 말한다.

「이 사람아! 이왕이면 낮에 돌아갈 일이지, 왜 저녁에 떠나려고 하는가.」
「햇볕을 보기가 부끄러워 일부러 밤에 돌아갈 생각입니다.」
「음.... 그렇다면 삿갓을 빨리 만들어 써야 하겠구먼.」

취옹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따라 나오며,

「내가 산 아래까지 배웅을 나가 줌세.」

그러자 주모도 이별이 아쉬운 듯 뒤따라 나서며,

「사람은 만날 때의 기쁨은 몰라도, 헤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인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김병연은 그 말을 듣고 나니 새삼스러이 가슴이 뭉클해 왔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취옹 노인과 젊은 주모는 김병연에게는 노방(路傍)의 타인(他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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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36 회

그러나 김병연은 술을 마셔가며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취옹 노인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더구나 취옹 노인을 받들어 아끼는 젊은 주모의 헌신적인 애정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선망감조차 느꼈다.

게다가 속죄의 길을 제시해 준 취옹 노인의 예지(叡智)가 무한히 고맙기도 하였다.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걸어오노라니 냇물이 그들의 앞을 가로잡는다.

김병연은 냇가에 발을 멈추며 취옹 노인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선생을 다시는 못 뵐지도 모르겠읍니다.」
「음...........우리가 아마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거야. 저 애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취웅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잠시 우려보다가 문득 시 한 수를 읊는다.
그대 가면 이 봄을 누구와 함께 노닐고 
새는 울고 꽃은 떨어지고 물은 흐르네 
지금 그대를 배웅하며 냇가에 섰으니 
뒷날 내 생각나거든 냇가에 와보게.

君去春山誰共遊 (군거춘산수공유)
鳥啼花落水空流 (조제화락수공류)
如今送別臨淨水 (여금송별임정수)
他日相思來水頭 (타일상사래수두)

김병연은 송별의 시를 듣고 나자 별안간 눈시울이 달아올라, 취옹 노인의 손을 덥석 부둥켜 잡았다.

「선생님! 부디 부디 오래 사십시오.」

그리고 옆에 있는 주모에게 간곡한 어조로 이렇게 부탁하였다.

「선생께서 영생 불사하시도록 부디 영지 버섯을 구해다 드리도록하게.」

주모는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고개만 수그린다.

김병연이 자기 집에 돌아온 것은 집을 나간 지 엿새 째 되는 날 새벽이었다.
어머니가 대문 여닫는 소리를 듣고 대청마루로 달려 나오며,

「병연이냐?」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읍니다. 여러 날 동안 많이 걱정하셨죠.」
「..........」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뜰 아래 서 있는 아들을 가엾은 시선으로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이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사과하자, 이씨 부인은 한숨을 씹어 삼키며 이렇게 말한다.

「너나 나나 모두가 죄인인데 무슨 사과를 하느냐........... 몹시 고단하겠다. 어서 네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자거라.」

일언반구의 질책도 아니하는 어머니의 깊은 애정에 김병연은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자기 방으로 들어오니, 마누라 황씨는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 앉더니, 짜증스러운 어조로 따지듯이 묻는다. 

「당신은 어디가 있다가, 이제야 돌아오시는 거예요.」
「응!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몹시 고단하니, 잠 좀 자게 해 달라구.」

김병연은 그렇게 말하며 쓰러지듯 이불 속에 드러누워 버렸다. 여러 날 밤 제대로 못 자고 술만 마셨기 때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마누라는 그것이 또한 불평이었다.

「누구하고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도 고단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때에는 김병연은 이미 정신없이 코를 골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잠만은 자야 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였던 것이다. 어머니 이씨 부인은 그러한 생리를 알고 있었기에, 아들의 방문 앞에까지 걸어와서 며느리에게 조용히 타이른다.

「아가! 애비가 몹시 고단한 모양이니 절로 깨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도록 하거라.」

김병연은 어머니 덕택에 그날 하루를 진종일 자고, 석양 무렵에야 깨어났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 보니 모든 일이 허망하기만 하였다.
(천하의 죄인인 내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러자 새삼스러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취옹 노인이 들려주던 말이었다. 

<한평생 삿갓을 쓰고 팔도 강산을 한 조각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라>

고 하던 바로 그 계시적인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이제 무슨 낯으로 남들처럼 처자식을 버젓하게 거느리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속죄를 하기 위해서도 모든 영욕을 떠나 한 조각 구름처럼 살아가는 것이 나의 길일 것이다.)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한평생을 방랑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고 김병연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