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51 회
「하하하, 삼년 전의 외상 꼬투리가 그냥 남아 돌아간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오.......이러나저러나 나는 궁금하게 생각되는 일이 하나 있소이다.
「뭐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오.」
「노형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홀아비가 한밤중에 과부를 강제로 업어 가는 습관이 있지 않소? 이 부근에도 홀아비가 없지 않을 터인데, 과부 혼자서 버젓하게 술장사를 해오고 있으니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이오.」
김삿갓은 아까부터 궁금하던 일을 정면으로 물어 보았다.
그러자 백수건달은 불현듯 생각나는 일이 있는지, 들고 있던 술잔을 술상 위에 털썩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 참,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군.......이 집 주모가 한밤중에 홀아비한테 업혀 갔던 사건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오.」
「엣, 홀아비한테 두 번씩이나 업혀 갔던 일이 있다구?」
이번에는 김삿갓이 놀랄 밖에 없었다.
백수건달은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더니, 비어 있는 술찬을 김삿갓에게 내밀어 주며 말한다.
「삿갓 선생! 과부가 업혀 갔던 얘기도 좋지만 술이나 마셔 가면서 얘기합시다. 내가 한잔 따를 테니, 기분 좋게 쭈욱 들이키시오.」
백수건달은 남의 술로 선심을 써가면서,
「이 집 주모가 한밤중에 홀아비한테 업혀 가던 얘기를 들으면 삿갓 선생은 배꼽을 빼게 될 거요.」
「배꼽을 빼도 좋으니 그 얘기를 좀 들어 봅시다.」
「듣고 싶다면 얘기해 드리죠.」
그리고 백수건달은, 주모가 한밤중에 산너머 마을의 홀아비에게 업혀 가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그러니까 주모가 30 고개를 막 넘어섰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주모는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남편이 죽고, 딸 하나를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젊고 아름답던 시절인지라, 중신 할미들이 재혼을 시켜 주려고 꼬리를 물고 찾아왔었다.
그중에는 읍내의 갑부인 최 부자가 소실로 데려가겠다는 유혹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과부는 일체의 유혹을 물리쳐 가며, 누구한테나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누가 뭐래도 재혼은 안 해요. 백년가약을 맺었던 남편이 비록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남편이에요. 재혼을 했다가 훗날 저승에 가서 남편을 무슨 낯으로 대하겠어요. 그러니까 나는 딸자식 하나를 데리고 죽는 날까지 혼자 살다가 먼 훗날 저승에 가서 남편을 반갑게 만날 결심이에요.」
본인이 그런 각오로 나오니 중매장이들은 그 이상 할말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밤에 커다란 이변이 생겼다. 즉, 젊은 과부는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포대 자루 속에 갇혀서 그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내의 등에 강제로 업혀 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 과부는 업혀 가면서도 포대 속에서 <사람 살리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지를 결사적으로 버둥거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납치범은 그런대로 얼마를 업고 갔었다.
그러나 포대 속에 들어 있는 과부의 요동이 얼마나 격심한지 그 이상은 도저히 업고 갈 재주가 없었다.
납치범은 마침내 포대자루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제법 정다운 어조로 이렇게 설득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강제로 업혀 가기 싫거든 포대 속에서 내놔 줄 테니, 아뭇소리 않고 나를 따라오라구. 우리들은 과부와 홀아비거든. 이것도 인연인 줄 알아요. 과부와 홀아비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만 살면 될 게 아닌가. 나는 그만한 자신이 있어서 임자를 업어 가는 것이야 임자는 내 말을 들어줄테야. 어찌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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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52 회
포대 속에 잡혀 있는 젊은 과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이렇게 강제로 끌려가서는 못 살아요.」
포대 속의 여인의 대답을 듣고, 납치범은 일이 제대로 풀려가는가 싶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짐을 단단히 받아 놓고, 포대를 끌러 주려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아 묻는다.
「포대 속에서 내놔 주면 나를 순순히 따라오겠지? 분명한 대답을 듣기 전에는 포대를 절대로 끌러 주지 않을테야..」
「포대를 끌러 주든가 말든가 맘대로 하구료......... 나는 강제로 끌려가서는 안 살아요.」
계집이 그렇게까지 완강하게 나오니 납치범도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왕이면 환심을 사려고 포대를 끌러 주며 이렇게 말했다.
「부부란 배 안에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야. 나를 너무 고맙게 생각지 말고, 이제부터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자구.」
납치범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가는 줄만 알고, 안심하고 포대를 끌러 주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젊은 과부는 포대 속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별안간 표범처럼 사내에게 덤벼들더니, 대뜸 불알을 움켜잡고 늘어지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 같지 않은 놈아! 짐승만도 못한 네 놈은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
사태는 급전직하로 역전이 된 것이었다.
과부를 납치해 가려던 사내는 별안간 급소를 후려 뽑히는 듯한 아픔에 기절초풍을 하였다.
「아야 아야!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이걸 놓아 주어요.」
사내는 금방 죽어 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여인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려고 요동을 치면 칠수록 더욱 심하게 고통스러워 올 뿐이었다.
젊은 과부는 야멸차게 급소를 끌어당기며 항복을 받으려고 들었다.
「개만도 못한 놈아! 또다시 그럴 테냐 어쩔 테냐. 항복을 안 하면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
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제아무리 항우라도 항복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제발 사람 살려요.」
마침내 사내는 혀를 가로 물고 쓰러지며 젊은 과부에게 항복을 하고야 말았다.
김삿갓은 거기까지 듣다가, 배꼽을 움켜잡으며 포복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하마터면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물건을 송두리째 뽑혀 버릴 뻔 했구료. 급소를 사정없이 움켜잡고 늘어졌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만 해도 남의 일 같지 않구료.」
백수 건달도 덩달아 웃는다.
「누가 아니래요. 그러니까 삿갓 선생도 행여 뿌리만은 조심하시오.」
「에이 여보시오. 남의 걱정 말고 노형이나 조심하시오.」
김삿갓은 그 얘기는 그런 정도로 휘갑을 쳐버리고 나서,
「납치 사건이 두 번 있었다고 했는데, 또 한 번의 납치는 어떻게 모면하였소. 그 얘기도 들어 보고 싶구료.」 하고 다음 얘기를 재촉하였다.
백수건달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거절하는 자세로 나온다.
「삿갓 선생은, 술 한잔 사주고 그 좋은 이야기를 죄다 공짜로 듣겠다는 말씀이오. 그건 너무 하시오.」
「아파, 밑천도 안 들인 얘기를 무얼 그렇게 비싸게 구시오. 술은 얼마든지 살 테니 다음 얘기를 어서 계속 하시오.」
백수건달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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