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85 회
「너의 어머니도 불공을 드리러 보림사에 자주 찾아가느냐,」
「옛날에는 자주 찾아갔지만, 언젠가 큰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나서부터 절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요..」
아마 시앗 싸움이 굉장히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큰어머니와 너의 어머니가 왜 싸웠는지 그 이유를 너는 알고 있느냐?」
「그건 모르겠어요. 큰어머니는 우리 엄마를 몹시 미워한대요.」
「알 만한 얘기로다. 늙은 마누라가 시앗을 네 번 째나 보았으니, 오죽하겠느냐..」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먼 산에는 땅거미가 어려 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오늘밤의 잠자리가 은근히 걱정스러워서.
「너의 집이 이 부근인 모양인데, 내가 잘 곳이 없으니 혹시 너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 수 없겠느냐.」
하고 물어 보았다.
그들 모자의 생활 실태를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김삿갓의 말을 듣고 나자, 소년은 잉큼 뛸 듯이 놀라며 머리를 호되게 흔든다.
「그건 안 돼요. 아저씨를 우리 집에 재웠다가는 큰일나요.」
「큰일이 나다니? 사람이 사람의 집에서 자고 가는데 무슨 큰일이 난다는 말이냐.」
「모르는 사람을 집에 재웠다가는 아버지한테 벼락을 맞게 되는 걸요」
「그래애?............전에도 모르는 사람을 집에 재웠다가 아버지한테 벼락을 맞은 일이 있었는가보구나?」
「지난 봄에 지나가는 할머니 하나를 재웠다가 우리 엄마가 아버지한테 무섭게 두들겨 맞은 일이 있어요. 남자거나 여자거나 모르는 사람을 집에 재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에요.」
「하하하, 족히 알 만한 말이로다.」
칠십 고령에 소실을 네 명씩이나 거느리고 살아가자니, 어디서 무슨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외방 인사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는것은 알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누라를 여러 명 거느리고 살아간다는 것도 상팔자는 아닌 것 같았다.
「너의 집에서 자고 갈 수 없다면, 혹시 이 부근에 술집이나 서당 같은 것은 없느냐.」
「서당은 이십 리를 더 가야 있어요. 술집은 한 군데도 없구요.」
「이 부근에는 인가가 그렇게도 없다는 말이냐?」
「저기 보이는 고개를 넘어가면 윤 부자가 살고 있어요. 그 집에 가보세요.」
「고맙다. 그만 집에 돌아가거라.」
김삿갓은 소년과 작별하고 걸음을 걸어 나가며 무연 대사의 사생활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무연 대사는 날마다 부처님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며 불공을 열심히 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누라가 다섯 명이나 있어 가지고서는 소원 성취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불경에 육근 청정(淸淨)>이라는 말이 있다. 눈(眼)·귀(耳· 코[鼻]·혀〔舌]·몸(身]· 마음[意] 등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념을 깨끗 이 끊어 버리고 무애(無礙)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무연 대사의 경우에는 <육근> 이외에 육(肉)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뿌리가 있어서, 백 년을 두고 염불을 외도 독도(得) 만은 가망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연 대사가 자기 입으로 <자기는 전생에 업보가 많아, 번뇌를 청산하기가 어렵노라고 고백한 것도 그 점을 말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가사(袈裟)를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승려일 수는 없고, 염불을 외며 불공을 드린다고 해서 누구나가 극락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닌 성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넘어오니 자그마한 마을이 나온다. 10여 호의 초가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제법 오붓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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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86 회
(윤 부자의 집이 어느 집일까?)
언덕 위에서 마을을 굽어 살펴보니, 마을 한복판에 반기와 집이 한 채 있다. 몸채는 기와집인데, 사랑채는 초가로 되어 있는 제법 의젓한 가옥이었다.
(옳지! 저 집이 윤 부자의 집인가보구나)
김삿갓은 윤 부잣집 사립문 앞으로 찾아와 큰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이윽고 육십이 가까와 보이는 늙은이가 나오더니,
「누구요?」
하고 몹시 거친 목소리로 묻는다. 그 늙은이가 윤 부자인 모양이었다.
김삿갓은 머리를 정중히 그려 보이며,
「지나가던 과객이옵니다. 날이 저물어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갔으면 싶어 들렸읍니다.」
하고 간곡한 어조로 부탁해 보았다.
그러자 윤 부자는 대뜸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손을 휘휘 내저 으며,
「안 돼, 안돼! 정신이 없어도 유만부동이지,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낮도 코도 모르는 인간이 남의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거야. 우리는 재워 줄 방이 없으니 다른 데로 가보라구!」
하고 매정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동냥은 못 주 어도 쪽박은 깨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거절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말로 거절할 수도 있는데,
<정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너무도 심해 보였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람이 사람 집에 왔건만 사람 대접을 안 하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 못하도다.
人到人家不待人 (인도인가부대인)
主人人事難為人 (주인인사난위인)
그러나 주인의 비인사(非人事)를 시로써 나무래 보았자, 그것으로 잠자리가 해결될 일은 아니다. 김삿갓은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번 간청해 보았다.
「영감님! 그러지 마시고 하룻밤만 자고 가게 해주십시오. 이 댁이 아니면 갈 데가 없사옵니다.」
그러자 아들인 듯싶은 두 명의 젊은이가 안에서 우루루 달려나오는 것이다.
삼부자(父子)는 한패가 되어 연방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고 냉큼 꺼져 버릴 일이지, 돼먹지 못하게 무슨 놈의 잔소리가 그렇게도 많아!」
하고 여차하면 때려 주기라도 할 듯이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발길을 돌려 사립문을 나오려니까, 때마침 어디선가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서러운 심정을 즉흥시로 이렇게 읊어 보았다.
석양 무렵 남의 집 사립문을 두드리니
주인은 손을 휘저으며 어서 가라네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가
어서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어 쌓네.
斜陽叩立兩柴扉 (사양고립양시비)
三被主人手却揮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두우역지풍속부)
隔林啼送不如歸 (격림제도불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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