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11-1 회
「술장사를 해먹으면서 손님에게 결박을 지어 놓고 술을 억지로 팔아먹다뇨?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오. 결박을 지운다면 누가 그런 술집을 찾아가겠소?」
「누가 아니라오. 그 늙은이는 그렇게도 고집이 세고 경우가 발바닥이라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마을 사람이 은근히 화가 동하는지,
「차수 어른은 무슨 말씀을 그처럼 침소봉대 (針小捧大)를 하시오. 손님에게 결박을 지었던 일은 단 한 번밖에 없었는데, 번번이 결박을 지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면, 삿갓 선생은 변 존위 영감님을 나쁜 영감님으로 오해하실 게 아니오?」
하고 무봉을 정면으로 나무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봉을 <차수>라고 부르는 것은, 향약을 조직한 이후로 김 부자를 향수라 부르고 무봉 자신을 차수라고 불러 주기를 본인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무봉은 마을 사람에게 정면으로 항의를 받고 나자, 약간 무안한 기색으로 이렇게 변명한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손님에게 결박을 지어 놓고 술을 억지로 팔아먹은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러자 또 다른 마을 사람이 김삿갓의 손을 붙잡으며 호소하듯 말한다.
「삿갓 선생께서 오해하실까 두려워 모든 이야기를 내가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그리고 마을 사람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변 존위가 젊었을 때 오대산 속에서 술장사를 해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겨울에는 열흘이 넘도록 술꾼이 한명도 없어서 밥을 굶을 지경이었다.
그러한 어느 날 술꾼이 한 명 찾아왔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불이 죽어서 술국을 끓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변 존위는 산 너머 마을에 불씨를 얻으러 가기 위해 손님에게 결박을 지어 놓았다. 손님이 크게 놀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결박을 지우시오?」
하고 항의하니까, 그때 변 존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우리 집은 열흘 동안이나 손님이 한 명도 없다가, 당신이 처음으로 찾아온 손님이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불이 꺼져서 아랫마을에 내려가 불씨를 얻어 와야 하겠는데, 그동안에 당신이 도망을 가 버리면 어떡하오. 그래서 도망을 못 가도록 결박을 지어 놓았소. 그 대신 술값은 절반으로 탕감해 줄 테니 꾹 참고 기다리시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포복 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도망을 못 가게 손님을 묶어 놓은 것은 너무했지만, 그 대신 술값을 절반이나 탕감해 주었다니, 그야말로 양심적이었군요.」
무봉은 <양심적>이라는 말이 비위에 거슬리는지,
「에이, 여보시오. 손님을 결박하는 놈이 뭐가 양심적이란 말이오?」
하고 김삿갓을 정면으로 나무란다.
김삿갓은 웃을밖에 없었다.
「손님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도망을 못 가게 결박을 지어 놓았겠소. 결박을 지어 놓은 대신에 술값을 절반이나 탕감해 주었다면, 그게 바로 양심적이 아니고 뭐겠소이까?」
「삿갓 선생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사람을 죽여 놓고 나서 미안하다는 말만 한마디 해도 양심적이라고 봐야 옳단 말씀이오?ᅩ
무봉은 변 존위에 관해서는 건건 사사가 마땅치 않은지, 자기 나름대로 독설을 퍼붓고 나서 숫제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 버린다.
「무봉 선생이 왜 저러시죠? 변 영감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 는 모양이죠?」
김삿갓이 옆 사람에게 그렇게 물어 보니, 그 사람이 웃으며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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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12 회
「무봉 자신은 변 존위 영감님에게 원한이 있을 리가 없지요. 그러나 김 부자 영감님과 변 존위 영감님이 앙숙이니까 무봉은 김 부자 영감 편을 드느라고 절로 앙숙이 된 거랍니다.」
「김 부자 영감님과 변 존위 영감님은 무엇 때문에 앙숙이 되었나요?」
「따지고 보면 어린아이들의 장난 같은 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마을 사람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백락촌 마을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김 부자의 소작인들이기 때문에 김 부자는 마을에서 군왕처럼 군림하였다.
그러나 변 존위만은 소작인이 아닐 뿐 아니라, 성미가 워낙 괴팍스러워서 김 부자에게 절대로 머리를 숙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김 부자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어느 날은 변 존위 를 직접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나에게 머리를 숙이는데, 당신만은 어찌하여 나에게 머리 숙일 줄을 모르오.」
그러자 변 존위는 머리를 더욱 꼿꼿하게 세워 보이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은 재산이 많다지만 그 재산을 나에게 줄 것도 아닌데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한테 머리를 수그리오?」
「좋소! 그러면 나의 재산을 삼분의 일쯤 주면 나에게 머리를 숙이겠소?」
「천만의 말씀이오. 그만한 돈으로 당신에게 머리를 숙일 내가 아니오.」
「그러면 나의 재산을 절반쯤 주면 머리를 숙이겠소?」
「그렇게 되면 나도 당신과 똑같은 부자인데 내가 왜 머리를 숙이오?」
「그러면 나의 재산을 다 준다면 나에게 머리를 수그리겠소?」
「그건 안 될 말이오. 그렇게 되면 나는 부자이고 당신은 가난뱅인데, 부자가 무엇 때문에 가난뱅이에게 머리를 숙이오?」
김삿갓은 김 부자 영감과 번 존위 영감이 앙숙이 된 이야기를 듣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그런 사건이 있은 것이 3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 이후로 두 노인은 오늘날까지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봉도 변 존위 영감을 앙숙으로 여겨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김 부자와 변 존위가 천하의 앙숙임을 알고, 김삿갓은 웃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김 부자는 돈이 많은 관계로 누구한테나 절을 받아야만 심성이 개운한 성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 존위만은 비록 돈은 없어도 자존심이 강하고 성품이 괴팍스러워 김 부자에게 절대로 머리를 숙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두 늙은이는 절로 앙숙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무봉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봉은 김 부자를 신주처럼 모셔 오는 처지인지라, 두 늙은이가 앙숙이 되자 무봉도 변 존위와 자동적으로 앙숙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정도의 알력(軋轢)은 어느 촌락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아무러나 모두들 술이 취해 떠들어대고 있는데, 마을 사람 하나가 방안으로 불쑥 들어서며 큰소리로 외친다.
「여러분들,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 사람아! 왜 이제야 오는가. 그러잖아도 자네 한 사람이 빠져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 중일세!」
하고 한결같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봉만은 만도자(晩到者)에게 이렇게 책망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강 서방! 자네는 왜 그렇게도 버릇이 없는가. 어른을 초청했거든 일찌감치 와서 손님을 접대해야 옳을 일이지, 파장이 되어가는 이제야 얼굴을 내밀었으니 그게 어디 어른에 대한 예절인가. 자네는 그런 버릇을 어디서 배웠는가?」
강서방이라는 사람은 머리를 수그러려 보이며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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