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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19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7. 16:22

방랑시인 김삿갓 2-19 회

거짓말내기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소이까?」

그러자 늙은이 하나가 김삿갓에게 술잔을 내밀어 주며 말한다. 

「삿갓 선생!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세 사람들은 막걸리 한 말을 걸고 <춥기내기>를 하려는 중이옵니다. 내기를 하려면 반드시 심판관이 있어야 하겠으므로, 삿갓 선생은 심판관이 좀 되어 주서야 하겠습니다.

김삿갓은 어리둥절하였다.

「무슨 내기를 하신다구요?」
「춥기내기를 한다는 겁니다.」
「춥기내기라뇨?..나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 세상에 그런 내기도 있읍니까?」

늙은이는 자신의 설명이 미흡했음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 세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이 사람은 함경도 고무산(古茂山)에서 오지그릇 장사를 해먹던 김서방이고, 이 사람은 평안도 중강진(中江鎭)에서 소금장사를 해먹던 이서방이고, 저기 저 사람은 백두산 근처에서 엿장사를 해먹던 박 서방이랍니다. 이들 세 사람은 저마다 고향자랑을 하다가, 추운 것도 무슨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자기 고향처럼 추운 곳은 없다고 제각기 하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내가 얼마나 추운지 막걸리 한 말을 걸고 춥기내기를 말로 해보라고 부추겨 주었죠. 그래서 이제부터 춥기내기를 할 판이니까, 삿갓 선생이 공평 무사하게 심판을 좀 해주십사 하는 것이올시다.」

그들은 각처에서 모여와 지금은 한마을에서 한형제처럼 살아오고 있는 사이다. 그러나 고향을 자랑하는 점에 있어서만은 누구도 양보를 못 하는가 싶어, 김삿갓은 가슴이 찡해 오는 감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고향이 뭐길래 이들은 옛날에 떠나온 고향을 아직도 그처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옛글에 이런 말이 있다.

북쪽에서 온 말은 북풍에 기대이고,
남쪽에서 온 새는 둥지를 남쪽 가지에 튼다.

胡馬依北風 (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 (월조소남지)

비단 말과 새 같은 결승 뿐만 아니라 사람도 죽을 때까지 고향만은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자 김삿갓은 멀리 두고 온 자기 고향인 영월이 새삼스러이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향수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므로, 김삿갓은 세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며 익살을 이렇게 꾸려 보았다.

「춥기내기가 어떤 내용의 내기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소이다. 그러나 당신네들은 모두가 장사꾼 출신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모두가 잘할게 아니오. 나는 심판을 하기가 매우 어렵겠소이다.」

그러자 세 사람은 한결같이 말쩍 뛰면서 항의한다.

우리가 거짓말장이라뇨?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을 언제 들어 보셨다고. 우리들을 댓바람에 거짓말장이로 단정을 내리십니까?」

김삿갓은 세 사람의 항의를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이렇게 반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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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20 회

「당신네들은 모두가 장사를 해먹던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건 사실이오. 그러나 장사꾼을 거짓말장이로 몰아치는 것은 너무 심한 말씀이 아니요?」

그들의 항의는 제법 날카로웠다. 소문에 듣던 대로 백락촌 마을 사람들은 역시 괴퍅스럽고도 까다로웠던 것이다.

김삿갓은 그 정도의 항의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는지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당신네들이 만약 거짓말장이가 아니었다면, 진짜 장사꾼은 못 된다고 봐야 옳을 것이오. 왜냐하면 진짜 장사꾼은 거짓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법이니까요

「선생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장사꾼과 거짓말장이를 혼동해도 유만 부동이지, 우리가 촌놈들이라고 아무 말씀이나 함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세 사람은 제법 시비조로 나온다.

그러니까 주위의 사람들도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 될 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적당히 휘갑을 저버리고 싶은 생각에서 껄껄껄 웃어 보였다.

「장사꾼은 반드시 거짓말장이라야 한다는 내 얘기를 한번 들어 보시려요?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절대로 믿지 못할 거짓말이 세 가지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오. 첫째로 늙은이가 죽고 싶다는 말은 절대로 믿지 못할 거짓말이고, 둘째로 처녀가 시집을 안 간다는 말도 절대로 믿지 못할 거짓말이고, 세째로 장 사꾼이 물건을 팔 때에 밀져서 파노라고 하는 말도 절대로 믿지 못할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장사꾼이라는 말과 거짓말장이라는 말이 뭐가 다르단 말이오? 내 말이 틀린 말이오?」

좌중은 그 말을 듣고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김삿갓에게 시비를 걸었던 장본인들도 손등으로 입을 감싸며 웃어젖혔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요.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럴듯 한 말을 꾸며 댔을까요?」
「그런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장사꾼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오.」
「듣고 보니 정말 그래요. 우리들은 물건을 팔 때마다 <본전에 밑져서 파노라고 입버릇처럼 한마디씩 해온 것은 사실이에요. 물건을 사 가는 사람은 그런 거짓말이라도 들어야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랍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거짓말이니까, 별로 나무랄 것은 없어요.」

김삿갓은 오해가 없도록 세 사람의 기분을 적당히 달래 주고 나서 말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기를 시작하기로 합시다. 이왕이면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신바람이 나게 해주시오. 그래야만 심판을 맡아보는 나 자신도 신바람이 날게요.」

그러자 좌중은 또다시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춥기내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함경도 고무산에서 왔다는 김서 방과 평안도 중강진에서 왔다는 이 서방과, 백두산 근처에서 왔다는 박 서방 등 세 명의 선수가 김삿갓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는다. 

막걸리가 한 말이나 걸려 있는 제법 커다란 내기였다. 김삿갓은 세 명의 선수를 둘러보며, 먼저 심사 요령을 이렇게 말했다.

「심사의 기준을 어디다 둘 것인가, 우선 그 점을 분명히 밝혀 두겠소이다. 어차피 내기를 하다 보면 과장된 표현을 아니 쓸수 가 없게 될 것이니까, 심사의 기준은 거짓말을 누가 더 잘했는가에 두기로 하겠읍니다. 그런 줄 알고 세 분의 선수는 되도록이면 거짓말을 신바람이 나게 해주십시오. 결국은 누가 거짓말을 더 잘 했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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