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젓가락 & 숟가락◇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22. 16:25

◇젓가락 & 숟가락◇


하늘이 울고 땅도 울던 그날은
40년간 하늘을 엮어 행복을 만들어가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던 날이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 집 팔고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세요."

​"일없다."

​"수발들 사람도 없이 아버지 혼자 
이러고 계시면 저희가 불편하잖아요."

​"밥해달라고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나 잘 살아."

​서열 없는 말들만 내뱉고 간 두 아들 내외가 멀어진 자리에 우두커니 나와 앉은 노란 달을 이고 앉아 정을 주고
받던 아내가 사무치게 그리운 밤하늘 속 사라지는 건 모두 아름답다며​
눈물 훔치던 날들이
지나는 계절 따라 겹겹이 쌓여가는 
날들을 마주하며 자식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라며 부끄럽지 
않게 산 세월을 되돌아보지만
철없는 자식들의 무게까지 지고 앉아 
침묵으로 기도만 하던 어느 날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산책길 지나는 자전거에 부딪혀
깁스를 하던 날부터 번갈아 오가던
며느리들은

국수를 차릴 땐 젓가락을
죽을 차릴 땐 숟가락이 놓인 밥상을
올리듯 찌푸린 하늘처럼 구겨져 
가더니

​"아버지…
제발 요양원에 들어가세요."

"한 달간만 계시다 퇴원하시면 
되잖아요."

"제수씨랑 제 처도 너무 힘들대요."

"알았다 가마 가"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서 
한 달여 일을 속절없이 지내는 날 
그 어디쯤 같은 병실 노인들의 이야기에 아버지의 가슴은 또 한 번 
무너집니다.

"요즘 자식들이 부모 모시기가 싫어
국수를 차려놓으면서
아 글쎄 숟가락만 준다지 뭐요."

​그것뿐이게...
죽에 단 젓가락만 놓아둔 상을
차린대요."

"그걸 어찌 먹누."

"그러니까 굶어 죽으라는 게지."


흉내만 내도 좋은 게 효도랬는데 
부모라서 참았던 아픔 속
노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 
아버지는 아지랑이 핀 눈망울로 
햇살 한 줌으로도 행복을 주고받던
아내와의 시간을 떠올려보다가

​"나 집에 갈란다."

"좀 더 있다가 
저희가 퇴원시켜 드릴게요."

​자식들과 약속한 날보다 
일찍 퇴원해 돌아온 집

​"남의 집에서 뭐 하세요?"

"이 집을 산 사람입니다."

요양병원에 가 있는 동안
집을 팔아 버린 자식들의 속내를 
알게 된 아버지는
그제서야 
자식들이 한사코 만류했던 
얼굴들이 또렷이 떠오르는데요.

​줘도 줘도 
아깝지않은 게 부모 마음이고

받아도 받아도
부족한 게 자식 마음이라더니

밤을 쪼갠 날들을 마주하며 
돌덩이가 된 가슴을 술 한잔으로 
녹이다

​"이러려고 퇴원을 한사코 
막았던게냐?"

"아버지... 제가 오늘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내랑 
밤을 낮 삼아 평생을 일해 
늘그막에 마련한 집이었지만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니고
미리 유산으로 아들 둘에게 
넘겨줬다고 일언반구 말도 없이 팔아버린 괘씸함에
막걸릿 잔만 기울이다 일어난 아침

​"이 집 팔아서
아버지 계실 곳 마련해 놓았다고요."

​"네 어미랑 살아온 추억이 깃든 
집이었어.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걸…."

​"어차피 주실려고 살 때부터
명의를 저희 쪽으로 해 주신 
거잖아요."

​허물건 낮달이 비켜선 자리
서러움에 물든 두 눈을 앞세우고
아들 내외의 손에 이끌려 온 집은 
허름한 원룸이었다.

​"저희가 수시로 와서 식사도 
챙겨드리고 할 테니 노여움 푸세요
아버님."

​집도 절도 없는
인생이 무허가가 된 것같은 서러움을 
지워 주려는지 서너 달 뻔질나게 
드나들던 발걸음들이
일 년에 네 번 오는 계절같이 
점점 멀어지는 날들 속에

내 마음속 
어느 길을 가도 아내만 떠올리며
사는 아버지에게
큰아들 내외가 다녀간 자리에 차려 
놓은 국수 앞에 놓인 숟가락 하나.


며칠 뒤
작은 아들 내외가 다녀간 자리
죽 앞에 놓인 젓가락 한 쌍.

​먹으라고 차린 건지
먹지 말라고 차린 건지

​차려진 밥상 앞에
떨어지는 눈물을 주워 담기 바쁜

아버지는
날개를 펼친 듯한 서러움에
가슴으로 흩어진 눈물을 지워가며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
함께 먹던 밥상만 떠올리다


하루하루가
그림자보다 무거운 삶의 끝자락에 
노쇠해진 몸으로

​젓가락에
스며든 눈물로 간을 맞추고

​숟가락에 
녹아든 서러움으로 허기를 채우다

​그림자만이
가족이 된 공간에서
아내가 먼저 잠든 하늘나라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가슴에 있고

​부모는 
자식의 머리에만 있는 세상을
원망하면서....



"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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