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53 - 1회
계원들도 그 말에 수긍이 가는지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도둑놈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도 더 좋은 일은 없겠지. 그러나 도둑놈이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무슨 재주로 범인을 잡아내는구.」
하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봉은 자신의 지혜로움을 계원들에게 과시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불현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하여 앞뒤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했다.
「범인은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이 아니야.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인 것이 확실해!」
김삿갓에게서 얻어들은 말이 있었기에, 자신을 가지고 큰소리를 쳐버렸던 것이다.
만약 무봉이 조금만 신중히 생각했다면, 그런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놓을 소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범인이 마을 사람이라는 말은, 마을 사람들 전체를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같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계원들은 그 말을 듣고 나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진다.
「차수 어른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옵니까. 도둑놈은 외부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 마을 사람이라면, 도난 사건의 범인은 우리 계원들 중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계원들은 그렇게 반문하며, 저마다 한결같이 얼굴이 심각해진다. 모두가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된 판이므로, 얼굴이 심각해질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무봉은 방안의 분위기가 별안간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자,
(내가 안 할 말을 했구나!)
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차수의 체통을 생각해서도 취소해 버릴 수는 없기에,
「물론이지! 범인은 틀림없이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 있어요!」
하고 분명하게 잘라 대답하였다.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임을 무봉이 다시 한 번 확언하고 나자, 계원들은 벌집을 쑤신 듯 별안간 소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도둑의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저희들끼리 네가 도둑놈이니, 내가 도둑놈이니 하고 한바탕 떠들어대다가, 계원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 무봉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차수 어른께서는 조금 전에 매우 중대한 발언을 하셨읍니다. 범인은 분명히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어디다 근거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무봉은 좌중의 분위기가 점점 사나워 오는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실언을 뉘우치는 마음이 절실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한번 뱉아 놓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자네들 모두에게 도둑의 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그런 말 올 한 것은 아니야. 그러나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은 확실해. 그런 줄 알고,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묻지 말아 주기를 바라네.」
무봉은 그 얘기는 그 정도로 휘갑을 쳐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와 같이 중대한 문제를 이름어름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차수 어른! 우리들 전체의 명예에 관계되는 중대사를 어떻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름어를 넘겨 버리자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차수 어른께서는 어디다 근거를 두고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 단정하시는지, 그 점을 꼭 밝혀 주셔야 합니다.」
계원들의 추궁은 매우 심각하였다.
================================================================
방랑시인 김삿갓 2-54 회
무봉은 그럴수록에 자신의 권위를 보여 주고 싶은 충동이 절실하여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임은 자네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런 쉬운 문제를 가지고, 왜 나에게 일일이 따지려고 드는가.」
계원들은 무봉의 말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지, 저희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한동안 쑥덕거리다가 다시 말한다.
「저희들은 머리가 아둔하여, 차수 어른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사옵니다. 누구나가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 더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시호 무봉은 우쭐하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머리가 왜 그렇게도 우둔한가. 어젯밤 범인이 파를 훔쳐 갈 때에, 마을의 개들이 전연 짖지를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개가 범인을 보고도 짖지를 않았다는 것은 개들이 범인의 얼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범인은 마을 사람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무봉은 김삿갓에게서 얻어들은 말을 자기가 생각해 낸 것처럼 내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말을 듣고 나서, 모두들 감탄을 마지않았다. 개가 범인을 보고도 짖지 않았다면, 개가 범인의 얼굴을 잘 알고 있은 증거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과연 차수 어른은 사물을 관찰하는 판단력이 보통이 아닌데!」
「그렇다면 범인은 우리들 중의 누구라는 것이 더욱 분명하지 않은가.」
계원들 중에는 무봉의 관찰력에 탄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봉은 속으로 우쭐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 사람들아! 그만한 관찰력도 없이 어떻게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다시 한번 큰소리를 쳐보였다.
모든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리라고 무봉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계원 하나가 손을 들어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항의를 해오는 것이었다.
「지금 차수 어른의 말씀을 들어 보니, 범인은 우리 마을사람 이라는 것이 저희들도 수긍이 갑니다. 그러고 보니 문제는 점점 중대하게 되었읍니다.」
「이 사람아!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그 만이지, 그 이상 무슨 문제가 중대하다는 말인가?
「아니올시다. 이미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임을 말씀해 주신 이상 그 사람이 누구라는 것까지도 밝혀 주셔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저희들 전부가 도둑놈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범인이 누구다는 것을 밝혀 내는 것은 차수 어른의 의무라고도 생각됩니다.」
은근히 압력을 가해 오기까지 한다.
무봉은 책임을 강요하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해 왔다. 범인을 기필코 알아내자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삿갓의 말대로 마올 사람들의 손 냄새를 맡아 보면 범인을 쉽게 알아낼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범인을 절대로 밝혀 내지 않겠노라고 김삿갓과 철석 같은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무봉은 짐짓 웃음을 웃어 보이며 이렇게 둘러댔다.
「이 사람들아!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 알았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엇을 밝혀 내자는 말인가. 한 번 실수는 누구에 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만약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뚜렷하게 밝혀내면 그 사람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그러니까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뚜껑을 덮어 두는 것이 상책일 걸세. 그래야만 범인도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할 것이 아니겠는가.」
무봉은 지도자로서의 금도(襟度)를 보여 주기 위해 도도하게 설득 작전을 펴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이론에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다.
'좋 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살 수 없는 세상] (0) | 2025.06.25 |
---|---|
🌿여보시요 저기요🍀 - (0) | 2025.06.25 |
"소금 같은 인연" (0) | 2025.06.24 |
80세의 벽 (0) | 2025.06.24 |
인간관계 명품의 법칙 (0)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