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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71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7. 5. 13:36

방랑시인 김삿갓 2-71 회

주모는 수치심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없는지 이렇게 대답한다.

「나이가 사십이 넘고 보니 아무리 무당이라도 기둥서방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더군. 그래서 고륜산(高崙山) 화적 (火賊) 떼의 두목으로 있는 사내를 십 년 가까이 기둥서방으로 삼아 왔었지. 그때만 해도 나는 무당으로 날리던 시절이어서 그 사내한테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온 일은 한 번도 없었어. 아니,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 사내의 처자식들까지 내 돈으로 먹여 살렸는걸.」
「그러면 그 사람은 지금도 가끔 들르겠구료?」
「지금도 가끔 찾아오기만 하면 오죽이나 좋올라구. 그러나 그 죽일 놈이 몇 해 전부터는 발을 딱 끊어 버리고, 내 집에는 얼씬도 안하는 거야.」
「왜 그러죠?」
「왜 그러긴 뭐가 왜 그래. 이제는 내가 너무 늙어 쓸모가 없게 된 줄 알고 젊은 계집을 새로 얻은걸. 남자라는 것들은 여자들의 오묘한 생리를 그렇게도 몰라 주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야!」
「젊은 계집을 좋아하는 것은 사내들의 본성이 아닐까요. 여자들의 오묘한 생리를 몰라 준다는 것은 무슨 소리죠?」

주모는 어이가 없는 듯 김삿갓의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보다가, 문득 탄식하듯 말한다.

「그대도 역시 남자인지라 여자들의 오묘한 생리를 모르기는 화적 떼의 두목과 다름이 없구먼 그래.」

김삿갓은 웃을밖에 없었다.

「여자들의 생리가 어떻게 오묘한 것인지, 이왕이면 설명을 좀 들어 봅시다.」
「이왕 말이 난 김에 내가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보아요. 남자들은 아무리 늙어도 여자를 좋아하듯, 여자들 역시 아무리 늙어도 남자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야. 음양(陰陽)의 본능이 바로 그렇게 되어 먹은걸! 그러나 남녀 간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어 남자들은 언제나 능동적이지만, 여자들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이라는 점이야. 여자들의 생리는 마치 화로와 같은 것이야. 화로라는 것은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불만 피워 주면 언제든지 화끈 달아오르게 마련이야. 그런데 사내놈들은 불을 피워 화로를 화끈 달아오르게 해줄 생각은 안하고 늙었다고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런 죽일 놈들이 어디 있느냐 말야.」 

김삿갓은 여자를 화로에 비유한 주모의 말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여자들의 생리가 화로와 같다는 말은 만고의 명담이오. 그러면 주모는 육십이 가까운 지금도 여자 구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이오?」
「물론이지!」

주모는 그렇게 대답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참, 내가 재미나는 실담을 하나 들려줄까?」 하고 묻는다.
「재미나는 얘기란 어떤 얘기를 말하는 것이오? 여자의 생리는 화로와 같다고 했으니까, 이왕이면 그런 얘기를 좀 더 들어 보기로 합시다.」

김삿갓이 그런 부탁을 하자, 주모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내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얘기야. 이것은 10여 년 전에 어느 산골에서 있었던 실담이니까 잘 들어 두어요.」

그리고 주모는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어떤 두메 산골에 팔십이 넘은 노파가 혼자 살고 있었다. 어떤 총각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깊은 밤중에 노파를 찾아와서 하룻밤 자고 가게 해달라고 간청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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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72 회

노파는 두말없이 그를 재워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방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노파와 총각은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총각은 정력이 넘쳐흐르는 열일곱 살인지라, 여자가 옆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노파는 이미 팔십을 넘은 할머니건만, 정력이 넘쳐 나는 총각 놈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팔십이 넘었거나 말았거나, <그녀도 역시 여자>라는 생각에서 그냥 참아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총각은 마침내 잠이 깊이 들어 있는 노파를 사정없이 눌러 버리고 말았다. 이를테면 고물딱지처럼 오래된 화로에 불을 지펴 준 것이었다.

노파는 젊은 시절을 회상한 탓인지, 별로 반항을 하지 않고 총각놈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 주었다.

그리하여 젊은 총각은 열화처럼 달아오르는 욕정을 몇 번이고 만족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였다.

노파는 눈이 어두워 어젯밤에는 총각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총각 놈은 증손자뻘밖에 안 되는 새파란 어린아이가 아닌가.

노파는, <내가 어젯밤에 저렇듯 어린놈에게 욕을 당했구나>고 생각하니 화가 동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젯 밤에 일을 치를 때에는 마냥 즐거워 이것저것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막상 상대자가 어린아이였음을 알고 나자 일종의 모욕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말하자면 평소에 머릿 속에 잠재해 있던 도덕관념이 머리를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아니, 저런 어린놈이 방자스럽게도 나를 겁탈을 하다니!) 

노파는 화가 치밀어 올라 마침내 총각 놈을 강간죄로 고발하고 말았다.
김삿갓은 주모의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고 포복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선하심(先何心) 후하심 (後何心)이라더니, 어젯밤에는 맘껏 즐긴 주제에 이튿날 아침에는 고발을 했다니, 그야말로 걸작이구료.」
「누가 아니래! 나이가 팔십이 넘었다고 하지만, 그 노파는 아직 딱지가 덜 떨어진 것이야!」
김삿갓은 연성 웃어 가면서 다음을 재촉하였다.

「관가에 고발을 했더니 관가에서 뭐라고 판결을 내렸소? 강간죄로 고발했다면 총각놈이 호되게 주리를 틀렸을 게 아니오?」 
「내가 얘기를 계속할 테니 그대는 잠자코 듣기만 하라구!」 

주모는 코침을 한 대 놓고 나서 이야기를 다시 계속한다. 강간죄란 본디 중죄에 속한다. 그러기에 총각 놈은 포승을 지고 동헌으로 끌려와 사또의 문초를 받게 되었다.

사또는 동헌 대청마루에 덩실하니 올라앉아, 계하(階下)에 꿇어 앉아 있는 총각놈에게 추상 같은 불호령을 내린다.

「너 이놈! 네놈은 아직 귀밑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어젯밤에 증조할머니 같은 노파를 능욕을 했다니, 사람의 가죽을 쓰고 그럴 수가 있느냐?」

물론 총각놈 옆에는 고발자인 팔십객 노파도 증인으로 불려 나와 있었다.
총각놈이 시치미를 떼고 대답한다.

「황공한 말씀이 오나, 소인은 주인 할머니를 능욕한 일은 전연 없사옵니다.」

총각으로서는 죽지 않으려면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또는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놈아! 네놈한테 능욕을 당한 본인이 이 자리에 직접 나와 있는데, 네가 사실을 부인한다고 무죄가 성립될 줄 아느냐?」 
「아니옵니다. 제가 아무리 환장을 했기로 팔십객 할머니에게 욕을 보였을 리가 있사옵니까. 그것은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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