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75 회
「남의 집 귀동 딸을 다리없는 여자로 만들어 놓았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고 사돈댁 사람들에게 야단을 쳐주었지. 사돈댁 사람들은 내 딸이 멀쩡한 것을 알고, 모두들 깜짝 놀라며 어쩔 줄을 모르는 거야. 자기 집 아들이 멍청스러워서 그런 사고를 일으킨 것을 그제야 깨닫고 백배 사죄를 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시집에 가서 잘살고 있는가요?」
그러자 주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첫날밤에 그런 해괴 망측한 일을 당한 신랑 신부가 잘살 수가 있겠어? 나는,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니까 모든 것을 웃어 넘기고 시집으로 가라고 누누이 타일렀지. 그러나 내 딸년은, 제 구멍도 찾지 못하는 그런 얼간이놈하고는 죽어도 못 살겠 다는 거야.」
「그러면 지금은 어떡하고 있소?」
「어떡하긴 무얼 어떡해! 신랑이 다음 날 다시 찾아오자, 그 애는 신랑의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그날 밤으로 밤도망을 쳐버린 거야. 그래서 십 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거야.」
그리고 주모는 또다시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집을 나가서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말이오?」
「그 애가 집을 나가고 나서부터 우리 집안은 완전히 망해 버렸어. 우리 집에서는 그 애가 복덩이였던지, 그 애가 집을 나가고 나서부터 나는 신통력을 잃어버려서 무당질도 못 하게 되어 버린 걸. 신령님이 노하셔서 나에게 앙화(殃禍)를 내리신 것이지.」
「십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는 것은 너무하구료.」
「풍문에 들으면 원산인가 함흥에서 그 애를 본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십 년이 넘도록 소리 기별이 없는 것을 보면 죽었는지도 모를 거야.」
「죽기는 왜 죽소. 그 애도 어머니처럼 남자 복을 많이 타고나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오, 하하하. 」
「허기는 그래! 그 애가 남자 복을 많이 타고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야. 아무리 신의가 없는 바람둥이라도 그 애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나면 그 애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한다거든! 그러고 보면 그 애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化身)인지도 모를 일이야.」
「지장보살이오?...하하하 그럴는지도 모르겠구료!」
김삿갓은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를 크게 내어 웃었다. 마침 그때 사립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안마당에서,
「여보게, 그동안 잘 있었는가. 내가 왔네!」
하고 위풍이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는 사나이가 있었다.
술집 안마당으로 서슴지 않고 들어서며 큰소리를 치는 사나이. 나이는 오십이 되었을까 말았을까, 기골이 장대한데다가 머리에는 일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는 동저고리 바람의 무척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였다.
주모는 그 사나이를 보자 벌떡 일어서면서 대뜸 이렇게 비아냥 거린다.
「흥!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남의 집에 문차도 없이 함부로 들어오는 거야!」
김삿갓은 그 말 한마디로써 문제의 사나이가 주모의 기둥서방인 산적 떼의 두목임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니?...... 내 집에 내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주모는 입을 딱 벌리며,
「뭐?............ 여기가 내 집이라구?..........사 년 동안이나 소리 기별이 없다가, 이제 와서 내 집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오지?」
「서방이 돌아왔거든 반갑게 맞아 줄 일이지, 여편네가 되지 못하게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도 많아!」
그리고 사나이는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열려 있는 방문을 닫고 아랫목에 털썩 누워 버리며,
「어젯밤 밤을 새워서 한잠 자야 하겠으니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아요!」
하고 명령조로 씨뿌려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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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76 회
4년 만에 만나는 부부이건만, 사나이는 마치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돌아오는 남편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주모는 그 이상 바가지를 긁어 보았자 별 볼일 없다고 느꼈는지, 다시 털썩 주저앉으며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제 까짓것 왔거나 말았거나, 우리는 술이나 마셔요.」
그러나 주모의 얼굴에 별안간 화색이 충만해진 것으로 보아, 그녀는 기둥서방이 돌아온 것을 무척 대견스럽게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익살을 부려 주었다.
「바깥 양반이 화로에 불을 피워 주려고 돌아온 모양이구료. 기쁘면 솔직하게 환영할 일이지, 마음에도 없는 외면을 왜 하오.」
「아따! 바람둥이는 역시 다르구먼. 남의 심정을 잘도 알아주시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들라구.」
「남의 좋은 일에 훼방을 놓고 싶지 않으니, 나는 한 잔만 더 마시고 이만 가겠소. 주모는 사 년 묵은 화로에 불이나 화끈 달아 오도록 피워 달라고 하시오, 하하하.」
김삿갓이 술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서자, 주모는 사립문 밖까지 배웅을 따라 나오며 오늘밤의 잠자리를 걱정해 준다.
「여기서 이십 리쯤 가면 신안(新安) 마을이 나올 거야. 그 마을에 가거든 오(吳) 별감 댁을 찾아요. 그 영감님은 마음이 좋아서 편히 재워 줄 거야.」
「고맙소.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들어가 화로에 불이나 피워 달라고 하시오.」
김삿갓은 통쾌한 익살로써 작별 인사를 대신하였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번쩍 들어 보니, 어느새 서녘 하늘에는 놀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명재판, 명판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삿갓은 지팡이를 친구삼아 산길을 터널터덜 걸어 나가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부부라는 게 뭐길래,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집을 나갔다가 4년 만에 돌아온 기둥서방을 주모는 그렇게도 반가워하는 것일까?)
김삿갓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영월에 있는 자기 마누라가 연상되었다.
(내 마누라도 주모처럼 날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김삿갓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불현듯 간절해 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된다. 금강산을 구경한답시고 집을 나온 내가, 금강산을 구경조차 못 하고 집에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걸음을 재촉해 나가노라니, 문득 이수대(李遂大)라는 시인의 <산중귀와(山中臥)>라는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뜬세상 일이 내게 무슨 상관이던고
다만 홀로 산길을 걸어가노라
내 고향은 산속의 유연한 고장
돌아가 사립문을 닫고 살아 볼까나.
浮世終何事(부세종하사)
空山且獨行(공산차독행)
悠然洞陰裡(유연동음리)
歸去掩柴扉(귀거엄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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