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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이 떠나신다

이종육[소 운(素 雲)] 2022. 12. 6. 17:33

♤ 어르신들이 떠나신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아프리카(Cote d'Ivoire?) 속담에도, 오나라 명장 여몽의 어록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황혼의 반란'에도 나오는 말이다.

내 마음의 어른이셨던 또 한 분이 떠나셨다. "이게 뭡니까 ~" 나비 넥타이 매고 서슴없이 직언하던 김동길 박사께서 올해 10월 4일 94세를 일기로 시름을 놓으셨다.

몸은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하고, 집은 이화여대에 기부하고 가을 하늘 구름처럼 그렇게 가셨다.

롤 모델 네 분 중 세 분이 올해 모두 떠나 가셨다. 이어령 선생도 송해님도 가셨다.

아름다운 세상 고맙게 살다 간다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셨으니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겠지만, 다들 대쪽같이 올곧으셨던 분들이라 서운함이 더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도 품위를 잃지 않고 곱게 늙으며, 고전(古典)과도 같이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어주던 분들이셨다.

이어령 님으로부터 사랑을, 송해 님 에게서는 공평과 평등을, 김동길 님으로
부터는 책임을 배워 간직하게 되었다.

청장관 이덕무가 조선의 책벌레였고, 20C 한국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은 사람이 청주 출신 민병산이라면, 21C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읽고 쓴 사람은 영원한 문화부장관 이어령 님일 것이다.지금도 어디에선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아이를 흐뭇이 바라보고 계시리라.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송해'다."

천만 명의 시민을 만나 함께 울고 웃었던 영원한 MC 송해 님! 계단 오르기를 좋아 하여 엘리베이터를 멀리하고 전철을 즐겨타셨던 분이다.

송해님이 돌아가시자 어떤 이는 "큰 박물관 하나가 사라졌다"고 했다. "6층 아파트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건강에 좋다"는
송해님의 말씀과, "남자들도 술 먹을 돈으로 향수를 사서 뿌리라"는 김동길 박사의 말씀을 잊지 않고 따르고 있다.

새들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 아랫마을 연풍면 원풍리에 비류직하 칠십 척의 수옥폭포가 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이 영조 13년(1737년) 8월에 이 폭포를 유람하고 '수옥정도'(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를 그린 후, 은빛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잊지 못해 12년 만에 다시 찾아 '조령 수옥폭포기'를 쓴 곳으로, 지금도 로케이션 매니저들이 좋아하는 유명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수옥폭포에서 북서쪽으로 1km 남짓한 곳에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수련원이 있다.
18년간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옥길 여사를 위해 동생 김동길 교수가 인세를 받아, 고향 평안남도 맹산 마을과 흡사한 고사리에 7천 평을 사서 집을 짓고 살면서, 모두를 이화여대에 기부한 터전에다 1985년에 준공한 붉은 벽돌집이다.

퇴계 이황이 도산(陶山)에 들어가 서당을 지어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고 후학들이 거기에 도산서원을 세운 것처럼....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 소풍지였던 수옥폭포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산 남매분도 홀로 가정을 지키셨던 어머님을 그리며 호마망북(胡馬望北)의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책 읽기는 커녕 쓰레기 분리배출도 제대로 못하는,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 걸핏하면 바퀴 네 개에 매달리는 이 사람에게 님들의 꾸짖음이 서릿발 같다.

"뭐 하는 짓이냐!" 평화와 정의와 우정의 상징인 코끼리 같았던 어르신들을 생각 하며, 이 시대 촌철활인(寸鐵活人)의 멋쟁이 논객(論客)이셨던 김동길 박사님께 국화 한 송이를 바친다.

'좋은 곳에 가셔서 누님 만나시거든 다정히 손잡고 연풍에 한번 내려오세요. 생전에서처럼 조령 3관문도 가시고 수옥폭포에 발도 담그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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