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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은 적장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이종육[소 운(素 雲)] 2023. 2. 22. 17:53

[선우정 칼럼] 일본 해군은 적장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한국의 바다는 동해 넘어 북극 항로로
*해양 안보 생명선은 인도양까지 확장
*나라 운명 좌우할 바다 향한 경례 보고
*떠오르는 의미가 겨우 욱일기뿐인가

한국 근대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가 ‘이순신 서술’ 이다. 1795년 정조 임금 의 이순신 전서 편찬 이후 1908년 신채호의 이순신 전 연재까지 100년 이상 이순신 서술은 한국에서 공백이었다. 보통 한국 근대의 출발을 1876년 일본의 침탈이 시작된 강화도 조약으로 본다. 이순신은 당시 상황에서 최고의 시대적 상징 이었다. 그런데 망국 직전까지 한국에서 이순신은 영웅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미스터리가 일본 근대의 이순신 서술이다.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는 여러 저서에 일제 해군 장교들 이 러시아와의 결전을 위해 출항하면서 이순신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리 는 장면을 묘사했다.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일본 엘리트 일부는 이순신을 연구했고 존경했다. 이것을 하나의 동력으로 전쟁에서 승리 했고, 결국 한국을 병탄 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이면서 비극적인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 한다.

일본의 19세기 이순신 서술은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김시덕 교수, 후기는 김준배 교수의 연구로 자세히 밝혀졌다. 이들에 따르면 징비록이 일본에서 간행된 이후 50여 년 동안 일본 전쟁 소설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영웅’으로 등장 했다. 이 위상이 19세기 후반 ‘세계의 영웅’으로 격상된다. 이순신 서사는 문화 현상에서 정치· 군사적 현상으로 폭을 넓혔다. 이를 주도한 것이 일본군, 특히 일본 해군 이다.

이순신을 ‘동양의 넬슨’에 비유한 찬사는 1892년 ‘조선 이순신전’에 처음 나온다. 일본 육군 계열의 기관지가 펴낸 책이다. “이순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원정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찬사는 일본 해군에 의해 고조 됐다. 훗날 일본 해군 중장까지 올라간 사토 데쓰타로는 저서 ‘제국국방사론’에서 “넬슨은 인격에서 이순신에 비견될 수 없다”며 “필적할 자는 네덜란드의 더라위터르 (영국을 물리친 해군 명장) 정도”라고 했다. 해전 연구 에 뛰어든 동기에 대해선 “이순신의 숭고한 인격과 위대한 공적이 나의 정신 을 격렬히 일깨웠기 때문” 이라고 했다. 앞서 해군 참모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도 저서 ‘해상권력사 강의’를 통해 “이순신이 해상권을 확고히 지키고 있었기에 전쟁의 대요소가 전부 소멸돼 맹진하던 육군도 스스로 고립됐다”고 했다. (이상 김준배 연구) 이순신 서사가 존경과 찬사에서 전쟁사적 연구로 진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서술은 한국에 꽤 알려져 있다. 이를 인용 하는 글에는 “적국 일본 조차 존경할 수밖에 없던 성웅”이란 평가가 종종 뒤따른다. 으쓱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미국의 해군 이론가 앨프리드 머핸의 해양권 (Sea Power)론이 19세기 말 세계를 강타 했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이론을 압축한다. 이에 따라 국가 전략을 바꿔 제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머핸을 사사한 해군 참모 다. 일본은 바다의 전략적 가치에 눈을 떴다. 육군 중심의 무력을 해군 중심 으로 바꿔 열강으로 도약 하기 위해 머핸의 이론을 일본 전쟁사에 적용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엔 해군 영웅이 없었다. 그래서 적장 이순신을 끌어와 반면교사 방식으로 해양권의 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이 해양권론을 내재화하는 과정에 대해 “흑사탕을 백사탕으로 만드는 정제 작업”이라고 했다. 이순신 서사는 표백제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을 알면 한국의 미스터리도 풀린다. 당시 한국은 바다를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중국 중심의 좁은 세계관 에 갇혀 자국의 근해조차 지키지 못했다. 육군 영웅 은 차고 넘쳐도 해군 영웅을 가진 나라는 극소수다. 바다의 근대적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이순신의 근대적 가치도 몰랐다. 그러다 항일 영웅의 구국 서사마저 일본에 빼앗겼다. 좁은 세계관이 만든 비극이다.

한·미·일이 동해에서 합동 훈련을 벌이자 야당 대표 는 “친일 국방”이라고 공격했다. “독도 앞 욱일기 훈련”이라고 묘사했다. 한국 등 인도·태평양 12국 이 참여한 일본 주최 관함식 때도 한국 정계의 논란은 ‘욱일기’였다. 한국 해군이 주최국 정상을 향해 경례한 쪽에 욱일기 모양의 일본 해상자위대 깃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야당 의원은 국회에서 욱일기 모형을 쪼개는 유아적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한국 경제의 항로는 동해를 넘어 북극 항로를 돌파해 유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양 안보의 생명선은 인도양까지 확장됐다. 한국은 일본 근해를 통하지 않고 태평양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그날의 경례는 국가의 운명이 달린 광활한 바다를 향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눈엔 겨우 욱일기 문양만 보였나.

일본 해군은 결전을 앞두고 과거의 적장 이순신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동양인의 편에서 서양의 제국인 러시아에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였다고 한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승리하는 자의 행동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 선우 정 논설위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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