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 하인의 법​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4. 26. 20:07

♧ 하인의 법​

​나이 : 60세
재산 : 빌딩 4채 보유

슬하에 아들 둘, 딸 둘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까지 다수

남편과 사별 후
어린 사 남매를 키우려
안 해본 일없이 고생을 하며
일군 재산이 2대는 놀고먹어도
남을 만큼 억척스럽게 모았다는
김여사에게

"엄마..
63번째 생신을 축하드려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해요"

"장모님.
제가 많이 많이 사랑하는거 아시죠?"

"할머니..제가 시집 갈 때까지
오래 오래 사셔야해요"

"오냐오냐 내 새끼들..
이 세상에서 나처럼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그래"

엄마는 행복쟁이라고 말하는
아들딸들을 악착같이 공부시켜
박사 아들에다 의사 사위들까지 ...

누가봐도
넉넉한 재산에 다복해 보이는
가족들까지 이세상 행복은 모두 다
거머진듯 보이는데요.

한바탕 소란스럽던 집이 주는
적막감이 싫었는지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겸
이리저리 전회를 눌러대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더니

배낭에 주섬주섬 남은
음식 몇 가지를 챙겨 멀지않는
산으로 등산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 색동옷 갈아입은
단풍잎들이 주는 황홀함을 따라
거뜬히 정상에 다다른 엄마는
배낭에서 챙겨온 음식들로 허기진 
배를 채우더니 나즈막한 바위 뒤
햇살 누인 자리를 찾아 망중한을
즐기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이쿠..
내가 넘 자버렸나보네"

이미 어둑해져 인적이 끊긴
산길을 급하게 내려가던 엄마는
그만 젖은 낙엽에 미끄러져
산길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는데요.

이틀이 속절없이 흘러가다 멈춘
낯선 내음이 나는 방안에서
눈을 뜨는 엄마

"이제 정신이 드나보구먼"

"할머니..
제가 왜 여기에...
그리고 여긴 어디예요?"

"기억이 안나유?
비탈진 산길에서 굴러떨어진걸"

"아.,,
내 다리가.."

"가만히 있어요.
발목이 부러졌는지 많이 부어있어
약초를 개서 좀 발라뒀다오"

"할머니..
전화를 좀 쓸 수 있을까요?"

"전기도 안 들어 오는 깊은 산중에
전화가 어딨겠슈"

그몸으로
걸어서 내려가기도 틀렸으니
나을 때까지 그러고 있을 수 밖에..."

하루..이틀..사흘..나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도시의 화려함 속에서만 살다
매일매일 찾아와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소리와 자연이 노래하는 속삭임 속에서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있던 엄마는
제법 친해진 할머니에게 이젠
척척 잘도 말을 건넵니다.

"할머닌....어쩌다가 이 외진 곳에
사시게 되셨는지
가족들은 없으세요?"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머리에 이고 앉아
모닥불에 고구마와 감자가 익어가는 걸 바라보던 할머니는

지나온 길 한 토막을
꺼내어 놓고 있었는데요.

"자식도 있었지 손주들도...
며느리도.."

"네..."

"그렇게 살갑던 자식들이
지 엄마가 암에 걸려 병원에 누운
뒤부터 병원비에 허구한 날 만나면
지지고 볶고 싸우더니 그 잦던 발길
마저 하나 둘 끊어지더구먼.."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래서 가방 하나 들고 죽으러
여기로 온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구먼"

"그뒤로 자식들하곤 연락을 안 하신 거예요?"

"병들은 부모 찾아서 뭐하누
실한 부모도 내팽개치는 세상에..."

달을 안고 울어야 했던 빈들에선
자신의 속을 내보이던 할머니는

밤바람이 전해준 서러움      
때문이였는지
억척스럽게 매달고 있던 눈물방울
하나를 땅 위로 튕겨 보내시더니

먼 하늘 끝에 실려온 자식들 소식을
애타게 찾고 있는 눈동자를 보며
가슴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자식들 만은 다를 거라며....

​먼저 가려는 가을을 붙들어 놓고
지내던 어느 시간의 한 복판
가을이 물든 산을 따라 가벼워서
높이 나는 깃털이 된 것 같이 길을
나서는 엄마

처음 찾았을 때 와는
다른 느낌으로 길을 걸으며
가을바람에 온몸으로 답하고 있는
들꽃을 따라 달걸음에 그렇게
그리던 집앞에 다다르며
신음소리 처럼 뱉어놓는 한 마디

"내 새끼들...."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며
제 어미를 찾느랴 온 불을 켜놓았구나
싶어 기쁜 마음에 달려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법원에 신청해서 빨리 상속 받자고..."

"오빠..청학동에 있는 건 나 줘야 해"

"그럼 이 집은 내가 한다"

"형님..
어머니 앞으로 된 통장도
조회해봐야 하는 거 아녀요?"

"그래 맞아 제부...
울 엄마는 옛날부터 돈 꼬불쳐
놓는 덴 선수였다니깐"

"엄마..엄마..나 유학 보내줘
지수는 벌써 갔단말야"

잡고 있던 손잡이를 맥없이
놓고 마는 엄마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온 눈물을 담아둘 때가 없어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인 것 같습니다.

​사시사철 자식 앞에선
마음의 색깔이 그대로인
엄마인데도 말입니다.

한 계절이 찾아온 거리를 따라
햇볕에 그을린 땅바닥만 보며
산으로 산으로 걸어 들어오는
익숙한 발길이 있었는데요.

"김여사..
자네가 어인 일이여
다시 안 올 사람처럼 가더니만..."

바람을 안고 어둠을 달려온 그녀는
지는 해를 붙들고 앉아있던
할머니 품에서 한참을 안겨 울더니

익숙한 듯
아궁이 불을 뒤적이며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앉았습니다.

"어찌하고 여길 다시 온겨?"

"할머니..
나 여기 오래오래 살아도 되죠?"

"그려그려..
마음 내키는 날까지 있어도 돼
아니 내 죽고 나면 자네가 여기서 살어"

​늙어 서러움 받지 말고 함께 하자는
할머니 말에

친정 엄마의 품에 안기듯
머리를 묻고 남은 눈물을 더 흘리고 마는 엄마는

"할머니..
괘씸한 마음에 모든 재산을
다 기부해 버릴까도 생각해봤어요"

"많이 섭섭했나 보구먼"

"그래도 새끼라고
차마 그러진 못하겠더라구요"

마치 내가 없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행동하는 자식들을 떠올리며
먼저 간 남편이 잠든 무덤가에서
모진 바람 목에 두르고
숱한 밤을 보내었다는 말에

"자네나 나나
자식을 왕자나 공주 같은
상전의 법만 가르치며 키워서 그런겨"

"불효자 는
결국 부모가 만드는거네요"

겨울 물든 하늘에서 반짝이던
꼬마 별을  간지럼을 태우며 놀던
외줄기 바람이 스쳐 지난 자리에

​자식은
상전의 법이 아닌
하인의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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