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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것들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9. 27. 15:17

오지 않는 것들

당신이 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더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하고 질겨서 영원히 더위 속에서 살아야만 할 줄 알았습니다. 5일 전까지 세상은 불바다였습니다. 추석을 지내고 5일 후인 9월 21일, 정확하게 6월 21일 하지로부터 3개월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세상은 데워지는데 45일, 식는데 45일 걸리는 걸 이제 알겠습니다.

시원하고 상쾌하고 편안하고 더 보탤 수 없이 우아한 당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드디어 왔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언제나 짧은 법. 이제 조금 지나면 당신이 그저 그렇게 느껴지고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느꼈던 뜨거움을 그리워하게 될지 모릅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네 번의 9년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9년이 지난 1919년 동경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부터 조선의 3·1운동까지 비폭력 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선 3대 천재가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은 각각 2·8 독립선언서와 3·1일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벽초 홍명희는 충북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삼대 천재 중 두 분은 끝까지 광복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육당은 1919년으로부터 9년 후인 1928년에 친일행각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11년 후인 39년에 춘원도 친일파의 길을 걸었습니다. 임꺽정이란 소설로 유명한 벽초 홍명희만이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켰으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재들이라 참을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아니면 좀더 강대한 나라에 기대어 우리나라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큰 뜻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두둔해봅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오는 계절의 순환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두 천재는 참을성이 부족했습니다.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고통스런 그때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마당을 쓸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당시에 살았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하는 맹랑한 가정을 해보곤 합니다. 아마 찍소리도 못하고 강자의 눈치만 살피면서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소시민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을 내봅니다.

정처없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같은 우리에게  뚜렷하게 갈 길을 가르쳐준 고결한 선열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나. 중간이 없다

"모 아니면 도!"

요즘 날씨에서 비롯된 화두가 중간이 없다 아닐까 합니다.

"뜨겁거나 물폭탄이거나"

어느 것도 갖고 싶지 않은 것인데 세상이 각박해져서인지 날씨도 지랄맞습니다.
엊그제까지 불볕더위로 구워대더니 다시 물폭탄으로 세상을 어지럽힙니다. 불에 물에 천지가 혼란스럽습니다.

이제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그냥 움직이면 덥고 선풍기를 틀자니 춥고...
더위와 추위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치우치지 않은 경계에 서서 이편과 저편을 모두 밝게 살피는 조견照見하는 그런 여유가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비슷한 정도로 똑똑해지고, 만사가 안이 보이는 듯 투명해지고, 마음이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우리 인간세에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모두가 분노조절장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와 다른 너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나와 다르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듯 비난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디서부터 이 난제를 풀어야할지 정말 어려운 일이올시다.


다. 올 것은 꼭 온다. 광복도 통일도...

계절의 순환처럼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태양의 입사각이 만드는 열에너지가 지구에 작용하는 정도에 따라 계절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지구가 지금처럼 태양의 주위를 삐딱하게 공전하는 동안은 다소 덥고 춥고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계절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여름 다음에 겨울이 올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차례를 지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사에 요동치는 저 변천은 어떨까요?  인과응보因果應報나 사필귀정事必歸正 같은 것들이 있다고 믿는 당신은 아직 순수한 겁니다. 이런 단어들은 말로만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혹은 꼭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이 만들어낸 뜻만 좋은 환상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고진감래苦盡甘來나 흥진비래興盡悲來 혹은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말들은 어떻습니까? 사필귀정보다는 자연스런 단어라고 보는데...

어떤 분들은 한평생 고통만이 가득한 잔인한 인생을 감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운좋은 분들은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찬 즐거운 인생을 사는 내내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제가 볼 땐 거의 전부가 고통과 행복을 왕복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모두 행복 뿐인 인생을 기대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짧은 행복 뒤엔 긴 지루함이나 고통이 기다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칸트가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 뒤엔 고통이, 마찬가지로 고통 뒤에 행복이 놓여 있는 것이 살아있는 인생이고 진실인 것입니다. 푸지게 즐긴 잔치 뒤엔 반드시 그만큼의 설거지 거리가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 뒤엔 꼭 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면 세상이 그렇게 빡빡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긴 억압의 고통 끝에 광복을 맞이하는 것은 오랜 더위를 지내고 나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참고 기다리면서 그 변화를 관조하면 당신의 거친 인생과 엿같은 이 세상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원래 한 형제였던 남과 북이 갈라져서 이리도 원수처럼 악다구니와 쌍소리와 비난, 비방으로 날을 새지만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형제가 되어 포옹하게 되어 있습니다. 벽초 선생님처럼 분열과 통일 사이를 왕복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을 알고 기다리면 됩니다. 참을성이 부족한 세상에서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그런 것의 차이를 바로 봐야 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알고 서로 다른 점을 용납해야 합니다. 모두 바쁘게 하루를 살지만 가끔 하늘을 쳐다보고 대의大義와 천명天命에 대해 생각했으면 합니다.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에 상쾌한 마음이 들다가도 인간의 몸과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고 연약한 것이던가 하는 반성이 있습니다. 중간이 없이 극으로만 치닫는 세태에 대한 염려에 한 생각 보태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당신의 마음을 더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9월 27일 새벽에
잠 깨어 몇 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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