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배우자!
제18회》
☆가다 죽더라도 가자!☆
1961년 5월 15일은 혁명군에게는 초조하고 긴장되는 날이었습니다.
박정희 2군부사령관은 휴가를 내어 신당동 자택에 머물렀습니다.
오전부터 혁명주체세력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혁명공약을 손질하고 각부대의 출동준비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빴습니다.
혁명지휘소는 영등포 6관구 사령부로 정하고 저녁 때 모두 6관구 참모장 김재춘 대령 방으로 모였습니다.
박정희 장군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웅진 준장과 김종필을 대동하고 안국동 광명인쇄소에 들려 혁명공약과 포고령 등의 인쇄 상태를 확인하고 영등포로 나갔습니다.
영등포 6관구에 들어가보니, 해병1여단(김윤근 준장)과 공수특전단(박치옥 대령)이 한강다리를 넘지 못하고 용산쪽에 있는 헌병들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즉시 해병여단으로 달려갔습니다. 김윤근 해병1여단장은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각하! 물러서십시오." 라고 말렸으나, 박정희는 "이까짓게 위험하면 혁명을 왜 했겠나? 밀어붙여!"라며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갔습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겸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빌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기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이 되고 혁명군은 역적으로 몰려 처형 당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입니다.
그 때가 5월 16일 새벽3시쯤 되었습니다.
수도경비사 헌병이 한강다리를 막고 있었던 연유를 알고보니,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혁명을 같이 하기로 박정희와 사전협의를 해놓고 헌병을 배치하여 혁명군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그자리에서 이번 "혁명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편지를 써서 부관을 통해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장도영은 전화로 빨리 부대를 원대복귀시키라고 고래 고래 소리만 질렀습니다.
박정희는 장도영은 믿을 사람이 못된다고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가자! 가다 죽더라도 올바른 역사가 있다면 우리를 다시 평가해줄 것이다." 라고 전진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병여단과 공수단을 이끌고 한강을 넘었습니다..
한강을 넘으면서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큰 피해없이 서울로 진입할수 있었습니다. 이때 이미 육군본부는 6군단 포병여단(문재준 대령)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곧바로 남산 KBS방송국으로 달렸습니다. 05시에 혁명공약을 발표해야 하기때문이었습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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