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111 회
「주는 돈만 아는 여자가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술은 한 잔만 먹여 놓고 술값은 석 잔 값을 받아 내려는 여자가 돈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러자 주모는 도리질을 하며 대답한다.
「못난 사내놈들한테서 돈을 뺏아 내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손님의 경우는 달라요.」
「지금까지 내기를 해오다가, 이제 와서 별안간 나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은 무슨 소리야.」
손님은 학식이 너무도 높기 때문에, 이제 와서는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어떡해요.」
김삿갓은 주모의 입에서 <존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거지같이 떠돌아다니는 나를 존경을 한다니 고맙구료 주모는 술장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거짓말도 제법 잘 하는군 그래」
그러자 주모는 몹시 섭섭한지 탄식하듯 말한다.
「술장사를 해 먹는다고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세요. 이래 봬도 나 역시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여자예요.」
그 말을 듣고 나자, 김삿갓은 주모를 너무도 경멸해 온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모를 깔본 일은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말아요. 이러나 저러나 내기가 중단되었으니, 나머지 한 문제를 어떡하지? 주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손님이 위대한 학자님에게 이 이상 내기를 하자는 것은 예의가 아니에요. 승부는 끝난 것으로 치고, 술값은 한 푼도 안 받기로 하겠어요.」
그리고 술병을 들어 술 한 잔을 새로 따라 주면서,
「손님을 존경하는 뜻에서 술을 한 잔 더 대접하고 싶어요. 이 한 잔 더 받아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서슴지 않고 술을 받아 마시며 우스갯소리로 말하였다.
「한 잔 더 먹고 싶더니 마침 잘 되었네 그려. 오늘은 공짜 술을 석 잔이나 얻어먹게 된 셈이니, 내가 오늘은 재수가 억세게 좋은 편인걸!」
김삿갓은 술을 마시고 나서 주모의 무릎을 다정하게 두드려 주며 솔직하게 이렇게 고백하였다.
「실상인즉 나는 돈이 한 푼도 없는 놈이야. 만약 내기에 졌더라면, 나는 창피를 크게 당했을 것이야.」
그러나 주모는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거짓말은 하지도 마세요.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술집에 어떻게 들어와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나 돈이 한 푼도 없는 것만은 사실이야. 간밤에 같이 자던 사람한테 돈을 깡그리 도둑을 맞았거든」
주모는 그제야 김삿갓의 말이 믿어지는지 적이 놀라며 반문을 한다.
「어마! 그렇다면 내기에 지면 어떡할 뻔했어요?」
주모의 질문에 김삿갓은 솔직하게 대답한다.
「색주가라는 간판을 보자 술 생각이 하도 간절해, 돈 같은 것은 생각조차 안 하고 덮어놓고 들어 왔다오.」
그것은 사실이었다. 김삿갓은 술집 간판을 보자 정신없이 찾아 들어왔을 뿐이었다. 주모는 기가 막히는지 입을 딱 벌린다.
「아이 참, 기가 막혀서....돈 생각도 하지 않고, 남의 집 술을 마구 퍼마시고 나서 어쩌려는 거예요.」
「돈이 없어도 술 생각이 간절해 못 견디겠는 걸 어떡해. 이것 저것 따지고 나서 술을 마시는 것은 부자들이나 할 일이지, 나 같은 빈털터리는 애당초 술값 같은 것은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야.」
주모는 또다시 입을 딱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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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112 회
「생판 모르는 술집에 와서 무작정 무전취식 (無錢取食)을 하려는 배짱이었더란 말씀인가요?」
「「나의 경우는 무전 취식이 아니라, 무전취주(無錢取酒)라는 말이 옳겠지. 하하하.」
「이러나저러나 술을 마시고 나서, 술값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면 어떡할 생각이었죠?」
「글쎄...그런 경우를 당하면 어떡해야 좋았을까. 지금이라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하겠는걸.」
그리고 김삿갓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술집 주인의 성격에 따라 사태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거야. 가령 술집 주인이 인심이 좋은 사람이라면, 술이 얼마나 마시고 싶었으면 돈도 없이 술을 마셨겠느냐고 동정을 하면서 그냥 돌려보내 주었을 것이고, 인심이 사나운 주인이었다면 멱살을 움켜 잡고 뺨이나 몇 대 후려갈긴 뒤에 발길로 꽁무니를 걷어차서 쫓아냈을 것이고, 인심이 아주 못된 주인은 무전취주를 했다는 죄명으로 관가에 고발하여 나를 감옥으로 보내 버렸을지도 모르지...돈 없이 술을 마신 나로서는 결국 주인 양반의 처분을 바랄밖에 없었겠지.」
주모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소리를 내어 웃으며,
「아니 그래, 술 몇 잔 공짜로 얻어 자시고 감옥에 끌려갈 각오까지 했단 말씀인가요?」
「미리부터 그런 각오를 하고 있은 것은 아니지만, 무전 취주를 했다고 감옥에 잡아 가두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제 알고 보니 손님은 배짱이 보통이 아니시네요.」
「돈 없는 놈이 배짱까지 없으면 술맛을 한평생 못 보게 될 게 아닌가, 안 그래? 하하하.」
김삿갓은 별다른 생각없이 되는 대로 씨부려 대었다.
그러나 주는 김삿갓의 배짱에 남성적인 매력을 느꼈는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말이 없다가,
「만약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고 술값을 내놓지 못했을 때,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하고 묻는다.
「..........」
김삿갓은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주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주모가 대답을 재촉한다.
「왜 대답을 안 하세요? 어떤 말을 해도 좋으니 내게 대해 느낀 소감을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런 말을 왜 묻지?」
「손님이 나라는 여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 그래요. 아무리 나쁘게 보셨더라도 상관 없으니 솔직하게만 말해 주세요.」
김삿갓은 주모에게 대한 인물평을 늘어놓기보다는, 술이라도 몇 잔 더 마셨으면 싶었다. 그리하여 농담조로 얼른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기가 듣고 싶거든 술이라도 한잔 내놓으면서 부탁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러자 주모는 술을 아낌없이 따라 주면서 말한다.
「아이 참,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손님은 술을 무척 좋아하시는 모양이니까, 술은 얼마든지 대접할께요.」
김삿갓은 서슴지 않고 술을 받아 마시며,
「이 술은 좋게 말해 달라는 뇌물이라고 봐야 옳겠지?」
하고 익살을 부렸다.
「아니에요. 이 술은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드리는 술이니까 뇌물로 생각지 마시고, 내게 대해 느낀 소감을 솔직하게만 말해 주세요. 어쩐지 손님한테서는 솔직한 소감을 듣고 싶어 그래요.」
「그렇다면 솔직이 말해 주지.......내가 천만 다행하게도 내기에 이겼으니 망정이지 만약 내기에 지고 나서 돈이 없다고 했다면, 주모는 인정사정없이 관가에 고발해 나를 감옥에 보내고 말았을거야 ...... 어때? 나는 주모를 그린 여자로 보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김삿갓은 워낙 거짓말을 모르는 인간인지라, 주모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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