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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2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6. 24. 16:01

방랑시인 김삿갓 2-52 회

김삿갓은 그 소리에 크게 웃었다.

「무봉 선생은 제 말씀을 아직도 못 알아들으셨읍니까. 파를 훔쳐 갈 때 범인은 파를 손으로 뽑아 냈을 것이니까. 범인의 손에는 냄새가 배어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파는 냄새가 지독한 물건이기 때문에, 냄새가 손에 한번 배면 손을 씻었다고 해서 냄새가 쉽게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니까 손 냄새 맡아보면 범인을 대번에 알아내게 될 것입니다.」

무봉은 그 말을 듣더니 무릎을 치며 감탄을 마지않는다.

「과연 듣고 보니 천하의 명답이외다. 그렇게도 쉬운 일을 내가 어째서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선생이 만약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박문수(朴文秀)같이 유명한 암행어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오.
손 냄새를 맡아 보면 범인을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봉은 <과연 그렇구나!> 싶어 속으로는 크게 감탄하였다.

그러나 솔직이 감탄해 보이면 위신이 손상될 것만 같아서.

「나도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삿갓 선생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소. 그러고 보면 삿갓 선생의 머리는 나보다도 좋으신 모양이구요.」 하고 말했다.


김삿갓은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어찌 무봉 선생의 머리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머리가 좋고 나쁘기로 말하면 무봉 선생과 저는 천양지차일 것이옵니다.

「하하하, 설마 그렇기야 하겠소.」

김삿갓이 다시 말한다.

「아뭏든 법인을 잡아낼 생각은 하지 마시고, 지금 곧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도난 사건을 신속히 귀결지어 버리도록 하십시오 나쁜 일이란 오래 끌어 갈수록 잡음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빨리 매듭을 짓고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알겠소이다. 그러면 선생 말씀대로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깨끗이 매듭을 지어 버리도록 하지요. 참, 오늘 모임에는 삿갓 선생도 동석을 해주셨으면 싶은데, 선생 생각은 어떠하시오?」
「저는 계원도 아닌데, 제가 왜 그 모임에 참석을 합니까.」

김삿갓은 일언지하에 참석을 거부해 버렸다.
그러나 무봉은 머리를 흔든다.

「계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네의 모임에는 선생같이 지혜로운 분이 꼭 필요해요. 나는 선생을 이번 기회에 고문으로 추대할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바쁘더라도 잠깐 참석을 해주시오.」

무봉은 그런 식으로 김삿갓을 야금야금 계원으로 끌어들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그러한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머리를 단호히 흔든다.

「무봉 선생이 계신데 저 같은게 어떻게 고문 노릇을 합니까. 그런 감투는 백 번 씌워 주신다 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김삿갓은 고문 취임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무봉은 그것을 겸양지덕 (謙讓之德)으로 알았는지 감격의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의 뜻이 그렇다면 고문 감투를 억지로 씌워 드리지는 않겠소이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마을에는 선생 같은 분이 꼭 필요 해요 그런 줄 아시고, 선생은 언제까지나 백락촌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기로 합시다.」
「그런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시고, 빨리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도난 사건의 매듭을 지어 버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을에 내려가 사람들을 소집하도록 하겠소.이다.」

무봉은 계원들을 긴급 소집하기 위해 마을로 달려내려갔다. 
때마침 농한기어서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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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2-53 회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31명의 직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자, 무봉은 김 향수를 대신하여 차수의 자격으로 일장 연설이 없을 수 없었다.

그는 백락촌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임을 거듭 강조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향약계의 강목에 <환난 상휼>이라는 조목이 뚜렷이 들어 있는 데다가, 도난당한 포천 노파의 생활이 궁색한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일이오. 그러므로 포천 노파가 도난당한 손실 전액을 한약계금 중에서 보상을 해주었으면 싶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오?」

포천 노파의 손실을 공금으로 보상해 주자는 제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포천 노파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지라, 그녀를 도와주자는 제안에는 이론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보상 문제는 한 사람의 이외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셈이었다.

무봉은 자신의 제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데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 그래서 한마디 없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내가 평소에 강조해 온 대로 상부상조의 향약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나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주어서 나로서는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그러자 계원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서며 말한다.

「차수 어른의 말씀대로 계원끼리 상부 상조하며 살아가자는 데 누가 반대를 할 것입니까. 그러나 이번 기회에 우리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사옵니다.」

뜻하지 않았던 의견에 무봉은 적이 놀랐다.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니, 그것은 무슨 소린가?」
「제가 거기에 대한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이번 도난 사건은 천제지변이 아닌 단순한 도난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줄로 알고 있읍니다. 그러한 도난 사건은 이제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때마다 계금으로 보상을 해주려면 무슨 재주로 그 돈을 감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듣고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무봉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계원들도 발언자의 말에 모두들 공감이 가는지.

「허기는 그래! 도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공금으로 보상을 해주려다가는 무슨 돈으로 견뎌나노?」
「아닌게 아니라, 그것은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젠걸!!」

하고 제각기 한마디씩 씨부려 대고 있었다.
무봉은 대답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차수의 체통이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아, 무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발언자에게 역습을 하였다.

「그러면 자네는 포천 노파에게 보상금 지급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발언자는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올시다. 이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일에 대해 제가 어찌 반대를 하겠읍니까. 그러나 앞으로도 도난 사건의 뒷수습을 그런 식으로 해결해 나가려다가는 한이 없을 것 같아, 이 기회에 도난 사건의 근본 대책을 한번 논의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무봉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자네가 근본 대책에 대한 묘안이라도 있거든 이 자리에서 말해 보게나.」
「근본 대책이란, 범인이 누구인지 꼭 잡아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범인을 잡아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도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무엇으로 보장을 할 수 있겠읍니까.」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범인을 잡아내어 발본색원할 생각은 아니하고, 공금으로 도난 손실에 대한 보상만 해주면 그만이냐 하는 간접적인 비난의 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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