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29 회
취옹 노인은 그 대답을 듣고 감탄의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자네는 놀랍도록 박식하네 그려. ........자네는 그 글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글쎄올시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아서, 넓고 넓은 하늘을 어디로든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데, 불나방이란 놈은 어찌하여 하필이면 등불 속으로만 뛰어드는지 모르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나더니, 취옹 노인은 별안간 앙천대소를 하며 말한다.
「하하하! 자네는 그 글의 뜻을 잘 알고 있기는 하네 그려. 그처럼 머리가 좋은 자네가, 어찌하여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생각은 못하고, 하필이면 불나방처럼 등불 속으로만 날아들려고 하는가.」
김병연은 그 말 한마디에 마치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취옹 노인에게 술잔을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선생이 꾸지람하시는 뜻은 잘 알겠읍니다. 제가 불나방 같은 놈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하고 말했다.
취옹 노인은 술잔을 받아 들면서,
「이 사람아! 그건 오핼세. 나같이 몽롱한 늙은이가 누구더러 불나방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너나없이 모두가 불나방이나 다름없는 목숨인걸. 성인 군자가 못 되는 우리들은 누구나가 죄다 그런 것이야. 그러니까 어리석은 백성을 창맹(蒼氓)이 라고 부르지 않는가.」
「저는 창맹일지 몰라도 선생은 성인 군자이심이 분명합니다.」
「하하하, 자네는 늙은이를 놀리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네 그려..........자, 농담은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게.」
「제가 선생을 놀리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병연은 취옹 노인의 학덕(學德)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새삼스러이 정색을 하며 묻는다.
「참, 아까 산에서 만나봤을 때, 선생은 제 시를 매우 못마땅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어떤 점이 못마땅하셨는지, 그 점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취옹 노인은 대답을 회피하고 술만 권한다.
「이 사람아! 글 타령은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하지 않는가. 자네는 술을 마시려고 내 집을 찾아온 게 아닌가. 」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시가 어떤 점이 못마땅한지, 저로서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저를 위해 기탄없이 말씀 해 주십시오.」
취옹 노인은 도리질을 하면서,
「허어...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지껄인 걸 가지고 무얼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가. 그만하고 술이나 먹자니까 그러네.」
그러나 김병연은 <마땅치 못했다>는 말의 근거를 기어코 알아내고야 말 생각이었다.
「술은 술대로 마실 테니, 제 시에 대한 소감을 솔직이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술맛이 제대로 나겠읍니다.」
「허어, 자네는 고집이 대단하네그려. 내 얘기가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가. 그렇다면 내가 느낀 소감을 솔직이 말해 줌세.」
그리고 잠시 뜸을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나는 자네의 글을 읽어 보고, 비상한 시재(詩才)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네. 천재가 아니고서는 그처럼 좋은 시는 누구도 쓰지 못할 것이야. 그러나 나는 감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네가 큰 인물이 못 될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 시를 읽어 본 소감을 마땅치 못하게 말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네.」
「어떤 점으로 보아서 큰 인물이 못 될 사람이라고 느끼셨다는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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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30 회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사람 죽이기를 즐거워하는 자는 그 뜻을 천하에 펼 수가 없다(樂殺人者 不可以得志於天下)>라는 말이 나오네. 그런데 자네는 그 시에서 선천 방어사 김익순을 무참하게 난도(亂刀)질을 해놓았거든 글이란 어디까지나 신성한 것이어서 사람을 글로써 때려잡아서는 못쓰는 법이네. 김익순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아닌가. 자고로 죽은 사람을 때려잡는 다는 것은 선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에게 난도질을 해놓았으니, 그야말로 마땅치 못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선비는 글로 망하는 법이야. 내 말 알아듣겠는가.」
취옹 노인은 김병연과 김익순과의 관계를 전면 알지 못하면서, 단지 원칙적인 논평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병연은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선비는 글로 망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비수에 찔린 듯한 아픔을 느꼈다.
취옹 노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을 다시 계속한다.
「이 말이 난 김에 자녀한테 한마디 물어 보고 싶은 일이 있네. 자네는 솔직이 대답해 주겠는가?」
김병연은 정신없이 대답한다.
「무슨 말씀이든지 물으시는 대로 대답하겠읍니다.」
취옹 노인은 술을 한잔 들이켜고 나서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문제의 시를 단숨에 써 갈기지 않았는가 싶은데, 그 시를 쓸 때에 김익순에게도 후손이 있으리라는 것을 단 한 번이라 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
김병연은 너무도 정곡을 찔리는 바람에, 숨통이 막혀 아무 대답도 못했다.
취옹 노인이 다시 말을 계속한다.
「김익순에게도 후손이 있을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만약 그들이 그 시를 읽어 보았다면 자네를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김병연은 취옹 노인의 입을 통해 <신의 심판>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무 대꾸도 못했다.
취옹 노인은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지 다시 말을 계속한다.
「옛날에 정이천(程伊川)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선비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고 하셨네. 첫째 불행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高官)이 되는 것이고, 두 번째의 불행은 부모의 세도를 등에 업고 고관이 되어 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세 번째의 불행은 재주가 남달리 비상하여 문장을 함부로 써 갈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네. 나는 자네 시를 읽어 보다가 불현듯 <삼불행>이 란 옛글을 연상하였네. 덕(德)을 쌓지 못한 사람이 재주만 믿고 남을 함부로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을 글로써 죽여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거든. 선비가 붓을 들어 남을 논하려고 할 때에는, 모름지기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참된 애정이 선행(先行)돼야 하는 법이네. 그런데 자네의 글에서는 이해와 애정 같은 것은 추호도 찾아 볼 수가 없더란 말야. 그러니까 김익순의 후손들이 그 시를 읽어 보았다면 자네를 죽이고 싶어 했을 것이 아닌가. 내 말 알아듣겠는가.」
김병연은 눈앞의 늙은이가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가면을 쓰고 자기를 뚫려 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취옹 노인의 두 손을 왈칵 움켜잡으며 시비조로,
「선생은 나의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가면을 쓰고 사람을 골탕을 먹이려고 드시오. 세상에 그런 악취미가 어디 있단 말이오..」
하고 외치자 취옹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 사람아! 별안간 왜 이러는가. 내가 알기는 무얼 알고 있다는 말인가.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 해를 못 하겠네그려.
「거짓말 그만하시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면, 김익순의 후손 얘기는 왜 자꾸만 끄집어 내시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던가, 김병연은 제물에 화가 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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