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어와 놀이

🐰재미난 시(詩) 한편 소개합니다.

이종육[소 운(素 雲)] 2023. 2. 10. 17:26

🐸🐸웃으면 福이와요.
오늘도 많이 웃으시고
福 많이 받으세요.

🐰재미난 시(詩) 한편 소개합니다.

충남고교 여교사 이정록 시인이 쓴 "정말"이란 시 인데, 남편과 일찍 사별(死別)한 슬픔을 역설적이고,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읽다보면 마음이 짠~ 해지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詩> "정 말"/이  정   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아랫도리로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수욱~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초조루증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니였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ㅡㅡㅡㅡㅡㅡㅡㅡ
<조정현 評>

[이정록 시집 '정말' 중에서]

이정록(1964~),
충남 홍성 태생 시인, 고교 여교사

이 시 참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1연에서는 일찍 저세상으로 간
신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성격이 참 급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일찍 가시는 분들은 뭔지 모르게
급하게 서두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2연은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오토바이에 맞선녀를
번쩍 안아서 태웠을까요.

오토바이에 태웠으니
남정네의 등에 여자의 가슴이 스치면서
젊은 혈기에 확 불을 싸지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을까요.
그것도 바야흐로 봄날인데 말입니다.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후다닥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벌써 끝장이 났다니까”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남편)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첫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정말 한 순간에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마는
순간이 2연에서 펼쳐지는데
1연에서의 슬픔의 정조는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읽는 내내 웃음이
삐죽삐죽 새 나오게 만드는 서사시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마지막 3연은 더 절창입니다.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얼마나 빨리 끝났으면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절묘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가 나옵니다.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단박에 바꿔칠 수 있는 걸까요?

거의 마술처럼
슬픔과 웃음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웃음 마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워낙 첫 행사를 빨리 끝내신 양반이라서
바람 한 번 피울 여력이 없으셨겠지요.
그런데 가정용도 안 되었으니,
어떻게 상업용이 되었겠냐는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정말 날랜 양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빨리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내공으로 가득찬 시인의
넉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접한 최고의 詩였습니다.

"첨언"
외설과 예술에 대한 조정현의 정의?
예술 : 작품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 지고,
외설 : 작품을 보면 육신이 뿌듯해 짐.
내 남편은 번개 섹스자였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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