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기 다 림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1. 25. 16:08

기 다 림

어느해 봄, 히말라야 산밑 작은 마을에
젊은 서양 여인 한 사람이 찾아들었습니다.

마을의 한 여관에 숙소를 정한 여인은 곧장 마을앞의 계곡으로 내려가 큰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는 말없이 산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녹은 눈과 흙이 섞여 탁하게 흐린 물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석고상처럼 앉아 있던 여인은 사물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한 곳에서 계곡물을 바라보며 그 해 봄과 여름을 보내고는 눈이 내리고 다시 물이 얼어붙기 시작할 때쯤 그녀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산 위의 얼음이 녹기 시작
할 무렵
마을을 다시 찾은 그녀는
같은 계곡의 바위 위에 앉아
물끄러미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여름까지 지내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쯤
마을을 떠났습니다.

여인의 이러한 행동은 해를 반복해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날,
이젠 흐려진 눈으로
계곡 아래를 바라보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내려가
물줄기사이 바위틈에 걸린
새파랗게 젊은 청년의 시신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조난으로 얼음 속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다가 얼음이 녹으면서 떠내려온
그녀의 옛 약혼자였던 것입니다.

우화인지 실화인지,
히말라야 산 밑 어느 마을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아주 오래 전 <샘터>라는 잡지의 뒷 표지에 올라있던 내용
입니다.

현실적으로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기다림'이라는 추상어(追想語)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난사고로로 세상을 떠난
젊은 시절의 약혼자를 그리며 평생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이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기다림'이라는 명제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기다림은  그 자체가 지닌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의미때문에 오늘날처럼 적극적인 생활자세가
요구되는 세태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태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오직 적극적인 생활 자세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때때로 한 발 물러서서 지나온 과정속에 쏟아 부었던 노력의 결실을 기다리며 삶을 관조하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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