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출발 없다, ''완주가 중요》
2022년 미국 네바다주를 들썩이게 한 여성이 있다. 주 역사상 처음으로 백인이 아닌 아시아계 흑인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패트리샤 리(49)가 주인공이다.
그는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 대법관은 당시 네바다주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지원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외국에서 태어나 집도 없이 가난하고, 학대받은 어린 시절을 보낸 혼혈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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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리'는 네바다주 대법관 7명 가운데 남다른 사연으로 더 화제가 됐다.
4살 때 미국으로 갔다가 45년 만에 한국에 온 그를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재외동포청 산하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주최하는 ‘제10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소녀 가장, 노숙자 노릇을 하다 대법관이 된 자신의 인생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했다. “다이아몬드도 엄청난 압력이 있어야 만들어지잖아요(Pressure makes diamonds).”
- 노숙자라니, 유년시절이 어땠나.
“8살 때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 아버지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 이후 영어를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두 남동생을 데리고 가장 역할을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서류를 엄마 대신 작성하면서 처음 법을 접했다.
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길거리에서 노숙생활도 하고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침대 밑에는 바퀴벌레가 늘 기어 다니던 삶이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유년 시절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런 환경이 내 평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학대받으면서 15살 때 가출했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소파에서 자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했다. 하지만 외부적인 불행에 발목 잡히지 말고 성장동력으로 삼자고 다짐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내 부모님처럼 살까 봐, 기꺼이 도와줬던 친구 부모님을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서 더 열심히 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저소득계층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인 ‘업워드 바운드 프로그램(upward bound program)’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일정 소득 이하이면서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리 대법관은 “과목별 과외 선생님 지원부터 여름방학 선행학습, 대학입시 준비까지 도와줘서 부모 도움 없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최근 한 법률 콘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130명의 흑인 판사 대다수가 이 프로그램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든지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받은 것 갚으려 하니 기회가 더 오더라.”
리 대법관은 ‘카우치 서핑’ 생활을 하면서도 고교 3학년 때 전교학생회장과 응원단장을 맡았고 최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변호사가 됐다.
이후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법무법인 허치슨 앤드 스테펀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했다. 이때 그는 무료 법률 서비스인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에 관심을 기울였다.
가정폭력 피해 아동, 파산 직전 저소득층, 대기업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약자가 주요 고객이었다.
그는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당연했고,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얼마짜리 사건을 수임했어’라고 말하기보다 ‘엄마가 네 또래 친구를 도와줬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리 대법관은 이 공로로 2013년 미국 변호사 협회가 주는 ‘프로 보노(무료법률지원) 공로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됐다.
리 대법관은 삶이 어려운 한국 청년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대법관에 지원하면서 제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한 이유는 나처럼,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완벽하게 출발하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주했는가’입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불행 속으로 가라앉지 말고 긍정의 힘으로 나아가세요.”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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