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5 회
김병연은 가산 군수 정 시가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광경을 눈앞에 그려 보고 머리를 새삼스러이 수그렸다. 그리하여 그의 충절을 찬양하는 데 온갖 힘을 죄다 기울었다.
그러나 충절을 찬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백 년 앞날을 위해서는 김익순 같은 역적들을 철저하게 탄핵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일일 것 같았다.
이에 김병연은 김익순의 죄상을 성토하기 위해 붓을 새롭게 가다듬는다.
김익순의 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규탄하기 시작한다.
서북으로부터 개탄할 소식이 들려오기에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냐고 물어 보았더니
문벌은 명성이 드높은 장동 김씨요
항렬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淳)자 돌림이 아니더냐.
西來消息慨然多 (서래소식개연다)
問是誰家食祿客 (문시수가식록객)
家聲壯洞甲族金 (가성장동갑족금)
名字長安行列淳 (명자장안행렬순)
김익순의 죄상을 하나하나 따져 나가는 김병연의 붓은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이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시 붓을 달린다.
가문이 훌륭하여 성은도 두터웠을 것이니
백만 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않았어야 할 것을
청천강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어디다 두고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 (弓矢)는 어떻게 했단 말이냐.
家門如許聖恩重 (가문여허성은중)
百萬兵前義不下 (백만병전의불하)
清川江水洗兵波 (청천강수세병파)
鐵甕山樹掛弓枝 (철옹산수괘궁지)
임금님 앞에 꿇어 엎드리던 바로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천에도 못 갈 놈이라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다.
吾王庭下進退膝 (오왕정하진퇴슬)
肯向西域凶賊蹶 (긍향서역흉적궐)
魂飛莫向九泉去 (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 (지하유존선대왕)
실로 통렬하고도 신랄한 규탄이었다. 만약 지하에 있는 김익순이 그 소리를 들었다면 그는 얼굴을 들지 못했으리라.
김병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지막 결구(結句)를 이렇게 맺었다.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忘君是日又忘親 (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 (차사류전동국사)
마지막 구절을 끝내고 얼굴을 들자, 김병연은 오랫동안 가슴에 뭉쳐 있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 버린 듯 통쾌한 기분이었다.
(20년 가까이 배워온 글을 오늘에야 한번 제대로 써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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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6 회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응시자들은 글을 짓기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김병연은 그 이상 눌러 앉아 있을 필요가 없기에, 손을 번쩍 들며 시관에게 고한다.
「시관 어른! 소생은 글을 이미 끝냈는데, 지금 바쳐도 괜찮겠습니까?」
답안지를 벌써 제출하겠다는 말을 듣고 시관은 적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하여 김병연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들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귀공은 벌써 다 썼다는 말인가.」
김병연은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써버려서 더 쓸 말이 없사옵니다.」
시관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김병연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귀공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시문(詩文)이란 퇴고(推敲)를 거듭할수록 좋아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마치 풋나기 서생(書生)을 다무는 듯한 말투였다.
김병연은 어쩐지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 짐짓 이렇게 대답하였다.
「시생(侍生)은 머리가 단순하여, 무슨 글이나 한번 써버리면 퇴고를 안 하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허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귀공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퇴고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퇴고의 고사도 모르는가.」
김병연은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 적이 약이 올랐다. 글 줄이나 읽은 사람이라면 퇴고의 고사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구태여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아서.
「시생은 그런 일은 잘 모르옵니다. 어쨌든 시생이 써야 할 말은 다 써버렸으니까. 이대로 받아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답안지를 시관에게 억지로 안겨 주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시관이 그처럼 강조하던 퇴고의 고사란 어떤 사연을 말하는 것일까.
그 옛날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는, 나귀를 타고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한편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한가하게 사니 이웃에 집이 없어서
좁다란 오솔길엔 잡초만이 무성하다.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자고
閑居隣並少 (한거린병소)
草徑荒園入 (초경황원입)
鳥宿池邊樹 (조숙지변수)
거기까지는 단숨에 읊었으나, 그 다음 결구(結句)가 얼른 생각 나지 않았다.
스님은 달빛 아래서 문을 밀고 있다.
儈推月下門 (쾌추월하문)
이상과 같이 끝을 맺어 보기는 했으나,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推〉자를 두드릴 고<敲>로 바꿔 볼까 싶어,
僧敲月下門 (승고월하문)
이라고 고쳐 보기도 하였다.
<推>자와 <敲>의 어느 글자를 써야 할지 얼른 판단이 나지 않아 정신없이 나귀를 몰아가다가, 그 당시 경윤(京尹) 벼슬을 지내던 대문장가(大文章家)인 한유(韓愈)의 행차와 충돌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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