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127 회
그러기에 처음 들어 보는 노래에 귀를 유심히 기울일밖에 없었다.
애원성이라는 노래는 이러하였다.
금수강산이 제아무리 좋아도
정든 임 없으면 적막 강산이로다
에-----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뒷동산 숲속에서 두견이 우는 소리
임 여읜 이내 몸 슬퍼만 지는구나
에-----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무심한 저 달이 이다지도 밝으니
울적한 심회를 어이나 풀어 볼까
에-----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더 없는 세월이 자꾸만 흘러가
꽃다운 청춘이 언제나 백발될까
에-----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쓸쓸한 한세상 누굴 믿고 살아갈까
맹세도 허사로다가 버린 그 님을 어이하리
에-----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김삿갓은 애원성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고, 그 노래의 취지가 왕생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생가를 죽어서 극락 세계로 가는 사람이 부르는 <영생의 노래>라고 한다면,
애원성은 남편을 잃어버린 청상과부가 가슴 아픈 심정을 절 절이 호소하는 <슬픔의 노래>요, <절망의 노래>였던 것이다.
애원성이라는 노래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는 노래여서, 지금까지 슬픔을 억제해 오고 있던 청상과부가 또다시 상여채를 부둥켜 잡고 목을 놓아 통곡하기 시작한다.
우리네의 조상들은 장사를 치르는 데 있어서도, 죽은 사람의 감정과 살아 있는 사람의 감정을 그처럼 골고루 달래 주었던 것이다.
집에서 산소까지는 한 마장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행상길은 본시 더디게 마련이어서, 상여는 집을 떠난 지 한나절이 지나서야 산소에 도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두꾼들은 노래를 주고받느라고 행보가 워낙 느린데다가, 망자가 옛집을 그리워한다고 하면서 열에 아홉 걸음은 뒷걸음을 치곤 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꼼짝못하고 산소까지는 만장을 고스란히 메고 나갔다. 그러나 행상이 끝난 뒤에도 어름어름 하다가는 또다시 붙잡힐 것만 같아서, 평토제(平土祭)까지 지내 주고 나서는 총총 꽁무니를 빼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깊은 산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오자니,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다는 느낌이 절실하였다.
인생은 어디로부터 오며
죽어서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멸하는 것일 뿐
뜬구름은 본시 실태가 없으니
삶과 죽음 역시 그와 같도다.
生從何處來 (생존하처래)
死向何處去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거)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是 (생사거래역여시)
김삿갓은 불경에 나오는 시를 입속으로 되어 보며, 깊은 산속을 한조각 구름처럼 휘적휘적 걸어 나가고 있었다.
김삿갓은 낮도 코도 모르는 사람의 장사를 고스란히 지내 준 일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불경에는 소매만 스치고 지나가도 전생부터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의 장사를 지내주게 된 것도, 그 사람과 나와는 전생부터 무슨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척 보람된 일을 해낸 것 같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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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128 회
이러나저러나 초저녁까지도 멀쩡하던 젊은이가 잠깐 사이에 죽어 버린 일을 생각하면, 인생은 너무도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느낌이 절실하였다. 그래서 〈인생은 초로 같다>는 말이 생겨났겠지만, 어떤 시인이 〈人生自古誰無死>라고 읊은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싶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문제는 죽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 버렸거니와, 아직도 앞길이 창창한 청상과부는 이제 앞으로의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모르기는 하겠지만,
그 청상과부는 어느 홀아비가 한밤중에 업어 간다 하더라도 호락호락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망부(亡夫)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그렇게도 열렬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못할 그 남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많은 세월을 마냥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쩌면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여자들의 타고난 숙명 적인 슬픔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자고로 여자들의 시에는 기다리는 슬픔을 노래한 시가 많다.
기생들의 경우는 더구나 그렇다. 가령 명기(名妓)능운(凌雲)에게는 <대낭군(待郞君)·임을 기다리며>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달이 뜰 때 오신다던 그 임이건만
달이 기울어도 임은 오시지 않네
아마도 생각컨댄 임이 계신 그곳은
산이 높아 달이 늦게 뜨는 것일까.
郎云月出來 (낭운월출래)
月出郎不來 (월출낭불래)
想應君在處 (상응군재처)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을 여실히 묘사한 시이거니와 임진왜란 당시의 여류 시인이었던 이옥봉(李玉峯)은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기필코 오신다고 언약하신 그 임이
매화꽃 다 져 가도 오시지 않네
아침 까치 나무에서 지저귀기에
행여나 임 오실까 분단장하오.
有約來何晚 (유약래하만)
庭梅欲謝時 (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虛畫鏡中眉 (허화경중미)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런 시가 나왔을 것인가.
그런대로 그들은 살아 있는 임을 기다린 것이지, 죽은 임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죽은 임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청상과부의 비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청상과부의 슬픔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 오는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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