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
朴正熙 대통령과의 마지막 5년
10·26 아침 “李군, 어제 입었던 그 양복과 구두 가져다주게”
글 : 이광형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
⊙ 朴 대통령, 1979년 2월 초부터 옛 문서 正書 지시, “타이핑 연습 많이 해두게”… 물러날 생각한 듯
⊙ “오늘 같은 날 골프 나가면 좋겠다” 하다가 “골프 나가면 경호차들이 많이 움직이니 기름도 많이 들겠다. 관두자”
⊙ 초소 근무자에게 “발이 시리지 않으냐?”며 군화를 벗게 하고 양말까지 직접 확인
⊙ 집무실 전화기가 오래되어 교체하자 “아직 쓸 수 있는데 왜 바꿨나?”
⊙ “에어컨은 外貨를 벌어들이는 곳에서 사용하는 것”…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더운 날 땀을 훔치며 부채질
⊙ 여름날 창문으로 파리 날아들면 직접 파리채 들고 파리 잡아
이광형(李光炯·73) 전 (주)EG 부회장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마지막 부관(副官)’이다.
육사(陸士) 27기 출신으로 1975년 경호실에 들어가 1979년 2월까지 수행경호관으로 근무했다.
1978년 9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고, 이듬해 2월부터는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다.
이 시절 청와대 내에서는 그를 ‘이(李) 부관’이라고 불렀다.
10·26사태 후에는 최규하 대통령 비서실의 정무수석비서관실·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KBS로 자리를 옮겨 사장비서실장·경영관리실장 등을 지냈다.
1993년 삼양산업(현 (주)EG) 상무로 박정희 대통령의 영식(令息)인 박지만 현 (주)EG 회장을 돕기 시작, (주)EG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오래전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라는 권유를 받아온 이광형 전 부회장은 우선 10·26사태 당일부터 박정희 대통령 국장(國葬)까지 있었던 일들과 1979년 봄에서 가을 사이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을 글로 써서 《월간조선》에 보내왔다. 한자를 덧붙이고 약물을 손본 것을 제외하면, 글의 구성과 내용, 중간 제목 등은 전부 필자가 보내온 글 그대로이다.
1979년 4월 12일 청와대 정원에서 벚꽃을 구경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부속실 직원들. 왼쪽부터 이광형 부관, 부속실 직원 이혜란, 박정희 대통령.
1970년대에 TV에서 김일성(金日成)에게 열광하는 북한 군중을 보면서 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각하를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그런 심정으로 모시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당시 이 어른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일했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보릿고개도 넘기기 어려웠던 헐벗고 못 살던 우리나라를 이만큼 잘살게 만든 조국근대화, 민족중흥(民族中興)의 길에 벽돌 한 장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소탈하고 정감 넘치던 모습과 자나 깨나 잘사는 나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바치며 희생했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자립경제·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일부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장(國葬)이 끝나고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걸려 있던 달력이 ‘10월 26일’에 정지되어 있는 걸 보며 숨이 멎는 것 같았었다. 매일 아침 각하께서 직접 한 장씩 뜯어내던 일력(日曆)이 주인 없이 멈춰버린 것이었다.
42년이 지났지만 내 손을 흠뻑 적셨던 그날 각하의 붉은 피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나는 내 손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1부 그날 -
1979년 10월 26일
그날 아침
이광형 부관은 대통령 집무실 앞 前室에서 근무했다. 1979년 4월 4일 찍은 사진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6시가 되자 침대 머리맡에 있는 인터폰이 울렸다.
“네, 이광형입니다”라고 인터폰을 받자 “운동하러 가자”라는 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니 각하께서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오셨다. 나는 각하와 나란히 실내수영장에 있는 배드민턴장으로 가볍게 달려갔다.
석유파동 이후부터 각하께서는 골프를 나가면 경호원들이 많이 나오니 경비가 많이 든다며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하셨다.
어느 화창한 날 집무실 옆에 있는 잔디밭에 나가셔서 드라이버로 연습 스윙을 하시다가 “오늘 같은 날 골프 나가면 좋겠다” 하시더니 이내 “골프 나가면 경호차들이 많이 움직이니 기름도 많이 들겠다. 관두자”라고 혼잣말을 하실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본관 옆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치시다가 하루는 “수영장에 물을 넣어두고 관리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물을 빼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배드민턴장을 만들어보게”라고 말씀을 하셔서 이왕이면 시합도 가능할 정도의 규격에 맞춰서 배드민턴장을 만들게 되었다. (각하께서는 나 같은 아랫사람들에게도 반말을 쓰지 않으시고 ‘하게’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날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약 40분간 각하와 1대 1로 운동을 하였다. 각하께서는 볼을 좌측으로 보냈다가 다시 우측으로 보냈다가 하였는데 30대 초반인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에 웃으시면서 재미있어하셨다.
쉴 새 없이 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게 되지만 운동을 마치고 가볍게 본관으로 돌아오는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입은 운동복도 지난번 운동하러 나오실 때 각하께서 들고 나오셔서 “이거 내가 몇 번 입던 건데 이군한테 맞을지 몰라” 하시면서 슬그머니 건네주신 운동복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씩 티셔츠나 점퍼, 전기면도기, 볼펜 등을 직접 주실 때도 많았다.
각하께서 2층으로 올라가시고 나는 1층에 있는 부속실로 들어와서 곧바로 샤워를 하고 머리 손질을 하고 나면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가져다줬다. 식사를 마치고 용모와 복장을 단정히 하고 일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인터폰이 왔다.
“이군, 어제 입었던 그 양복과 구두 가져다주게”라고 하셔서 다려놓은 양복과 닦아둔 구두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각하께서는 바지를 입지 않은 채 거울 앞에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계셨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어, 어, 이리 가져오게” 하셨고 그 양복을 입으시는 것을 보고 나는 내려왔다.
그 양복은 얼마 전에 각하께서 양복 하의를 들고 오셔서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를 늘려달라고 하셔서 세기양복점에 보내서 늘려온 양복인데, 이유는 주치의가 코 수술 후 금연(禁煙)을 건의하여 담배를 끊으시고 나서 체중이 조금 늘었기 때문이다. 구두는 금강제화에서 구입한 것인데 얼마 전에 뒤축을 갈아드린 것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는 8시40분에 집무실의 상태를 점검하고 전실(前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9시 정각에 각하께서는 연설문, 안경 등을 넣은 소형 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며 집무실로 들어오셨다.
김계원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으시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신 후에 ‘삽교천 준공식’ 참석을 위해 집무실을 나설 때도 “삽교천에 다녀올게” 하시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농촌 지역, 특히 새마을 현장을 가실 때는 늘 그러셨듯이 각하의 기분은 최상의 상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오후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가 되었다.
오후 2시 반경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고 조금 지나서 각하께서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집무실로 들어오셨다. 오후에는 별다른 일정 없이 집무실에서 수석비서관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지시하거나 결재(決裁)를 하시며 보내셨다.
오후 6시경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이 전실에 도착하였고 곧이어 각하께서 나오셔서 보시던 책과 서류, 안경을 주시며 이거 2층 서재에 갖다 두라고 하시며 “근혜 인터폰 안 받던데 경호실장하고 저녁 먹고 올 테니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먹으라고 하게”라고 하시며 나가셨다.
가장 길었던 밤
10·26사태 궁정동 만찬 현장 검증 장면.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는 모습이다.
나는 각하를 배웅하고 난 후 바로 집무실을 정리하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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