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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중화학은 선진국 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태어 났다.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8. 20. 16:19

🇰🇷(중화학  총론)
박정희의  중화학은  선진국  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태어 났다.

(부제~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적  영웅이다)

박정희는 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에 성공하고  혁명공약 1항에서  반공을 국시로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2항에서 UN헌장을 수호하며 각종 국제협약을 존중하는 국가를 만든다고 했다.

4항에서 국민을 빈곤과 기근에서 해방시켜 자주국가를 설립한다고 약속했다.

박정희는 그의 혁명정부에서 빈곤에서의 해방을 위한  제1보로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박정희가 혁명을 이르킨 61년도의  한국은  1인당  GNP가  81달러여서 말레이시아 281, 필리핀이  268달러로서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3배나  못사는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였다.
  
거기에 남한은 김일성의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원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대치 상태에 있었다.
 
이리하여  한국은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빈곤 국가로서 전세계에서 최빈국으로 낙인 찍힌 희망과 용기없이 좌절과  패배속에서 헤메고 있는 국가였다.

여기서  보리고개란  말은 참으로 처절한 말이다.  가난한 농가는 봄이 되면 양식이 떨어진다. 
당장 먹을 저녁거리 뿐만아니라 내일도 모래도  먹을 양식이 없다. 초근 목피로 죽을 쑤어  먹는다.

너도 나도 다 못먹는다. 보리가
추수될때 까지 못견디면 죽는다.보리가 추수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된다.
  
박정희 장군은 구악을 일소하고경제개발에 착수한다고 하고 정부가 생기기도 전인 61년 12월 말에  울산공업단지 건설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62년 2월 3일  울산군 삼일면 과 방어진면 일대를 공업지역으로 지정하고 정유공장, 비료공장,  종합제철과 발전소가 입주하는 당시로는 국가 최대의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기공식  치사에서 "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한  공업도시를 건설하여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번영을  재현하여 민족부흥의  터전을  마련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의미 심장한  기공식 치사인가! 

이 울산 공업단지는 5년간의  
기간에 정유공장과 비료공징  그리고  발전소를  건설하여 한국 최초의 공업단지를 건설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당초의 종합제철은 항만이 좁아 포항으로  이전했다.

73년 이단지에 석유화학 공장을 건설하여  중화학에 의한 울산 석유화학 공업단지로 지정하였다.  중화학은 이에  추가하여 현대조선과  현대미포 조선을  조선공업 단지로 지정하고  자동차 공업단지에 이어   온산비철 금속공업  중화학단지가 지정되어  울산은 한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박정희의 울산공업단지 건설이 혁명정부의  성공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탄이 되었다

혁명정부는 이와 동시에  농본지국가에서 탈피하는 공업입국과 수출제일  주의를 근간으로 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였다.   

1962~1971년의  경제개발은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60년대의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8.8%였고  수출은  40%대의 성장으로 61년  4천 만불에서 시작하여  64년에 기념비적인 1억불을  달성하고 70년에 10억불의 고지를 점령하였다.

우리들 자신이  먼저 놀랬다. 이리하여  패배와 좌절감에서  벗어나서  자신감이 생겼다.

박정희는 집권 초기 10년의 기간에 국민을 기근에서 해방시켜 최빈국에서 대도약하여 개도국으로 뱔전하였다.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희망과 위기와 시련의 70년대를 맞이 했다. 

한국의 경제사회는 60년대의 과도 과속의 경제발전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인플레를 유발했다.

예를 들면 10억불을 수출하기 위하여 불가항력적으로  20억불을 수입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72년에는 대통령 긴급명령인 8.3조치를  실시하여 기업을 살리는 경제 행정조치를 시행했다. 

여기서 8.3 초치가  이것이  전부인양  떠들석 하지만  8.3조치는 대통령의 기업을 살리는 행정조치에 불과 했다.

8.3조치는 헌법 73조에 의거  경제안정을  위하여 긴급조치를 한 것으로서  사채지불을 동결 하여  월이자  1.35%,  3년거치  5년 분할 상환으로 하거나 기업에 대한 출자로 전환토록 한것이었다

그후  후속조치로서  74년에  5.29조치를 발동하여 기업을 공개할것을 지시한  특별명령을 내린 것으로 사채를 제도금융으로 흡수하여   증권시장을 육성하는 계기로 만든 것이다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당시  대통령실 경제1(  김용환 수석)에서 당면한  현실적  경제난국을 해결한 정책이다.

정부는  이와는 상관없이  72년에 81년 목표로  수출 53억불 달성의  3차와 4차5개년 계획을 합친 10개년계획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 갔다

경제기획 당국은  70년도에  수출 10억불을 달성한 국가가 10년 후인  81년에 5배에 해당하는 53억불을 달성하고  8.8%의 연평균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은  장미빛  계획이라고  부르고  자화 자찬하며  작성자 모두가 훈장을 받았다.

박정희 정부는  71년의  대통령 직선후  정치적으로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72년 10월 국내외의  친북 반미파와 골수 좌파세력의  소동과 북으로 부터의  남침 준동에 대천를 목적으로  하여  헌법을 개정하여  정당정치 활동을 금하는  유신 헌법을 공포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도  81년까지  보장 되었다.
 
희망의 70년대를 향한  박정희  정부는  연초부터  정치 사회와  경제적으로 다각적인 시련에   봉착한 것이다.

박정희는  73년 연두기자 회견에서 기존의 10개년의  목표를 뒤엎는  81년도에 1인당 국민소득  1,000불과  100억불  수출 달성을  목표로하는  이른바   박정희의 중화학 정책을  선언했다. 
 
박정희의 중화학은 공업구조개편론에 근거하여  중화학 공장을  건설하여  공업구조를  노동집약 공업에서  자본집약 기술공업으로  상향조정해야  된다는 공학적인 원리 원칙에  의거  출발 추진되었다.

한국의 중화학 업종은  철강, 비철금속, 조선, 기계, 전자, 석유화학의  6개업종으로 하고 이들 공업에 대한  공장이  가득찬  공업단지를 건설한다고 했다.

중화학 선언과 동시에  선언된  국민의 과학화 선언에 의하여 연구소 단지를  중화학과 동시에  건설한다고 했다.

중화학 선언은  6개공업 단지와 연구소 단지가 건설될 때  중화학의 목표인 중화학 공업화도   이룩되고  수출100억불을 달성할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중화학은  선진국의  전유물이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은  중화학의 사명이고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가적 사명이  된것이다.    

박정희의  중화학은  10년의 기간을 요하는 프로젝트여서 유신으로 정권이 보장됐기 때문에  중화학이 선언된 것이며   결과적으로  중화학의 성공여부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출발된것이다. 

박정희는 60년대에 국민을  기근에서 해방시키고 세계 최빈국에서  해방시켜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70년대에  반민주적인 유신으로  정권을  잡았으니  유신기간에  무엇을  성취하여 조국에 남겼는가로  영웅이냐!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장기집권자인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72년 유신으로  정권이 보장됐으니까  73년  중화학이 착수되었고   중화학은  유신의 책임
이  되어  박정희의 유신과 중화학과는  분리할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전인 잘사는 국가 건설을 위하여 박정희의 친정사업으로  대통령실의  T/F 팀과  중화학기획단과 정부의 모든 기관이 동원되고  관계획, 민실천의  원칙하에  국민 총화로 추진하여  목표의 두배 이상의 실적을 거두었다.

 목표년도인 81년에 수출은  목표의 2배인 200억불을 달성하였다. 100억불 수출목표는 4년 빨리 77년에 달성하였고  1인당 국민 소득은 1,000불 목표치에 비하여 1,630불을  달성하였다.
세계  경제발전사 상에 없는 기적 같은 실적을 이루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끄는 굳건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대한민국은  인구 5천만 이상의대국이 1인당  국민 소득  3만불  이상만의 국가가 가입하는 6번째의  50:30 회원국가가 되어 명실 공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지금의 선진국이 2~3세기에 걸린 선진국을  우리는  반세기만에 건설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은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들고  미국과의  동맹관계 확립시키고  세계자유민주 주의 국가와의 유대관계를 강회하였다.

단군시조가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이래  박정희의  61년을 기점으로 하여 제일 잘못사는 50년을 제일 잘사는 50년으로  만들었다. 

전후 독재자로  리비아의 카다피, 이집트의  무바라크, 이라크의 후세인,  필리핀의  마르코스, 큐바의  카스트로를 장기독재 악한으로 꼽는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남용으로
조국에는 패배와 빈곤과  좌절을 남겼지만  박정희는 그의 재임기간에 그의 예지로 선진국이 되는 공고한 기초를 쌓았다.

싱가포르의  리관요 수상은 30년의  통치기간에 조그만한  섬나라를  세계1등국 대열에 올려놨다. 그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는 바탕에 깔린 사회주의 사상과  진보세력과   그리고 우파 끼리도  남이 한것에  대하여는 존경할줄  모른다.  박정희의  중화학을 폄훼했다.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을  비롯하여 고속도로건설, 댐 건설등 국토개발, 민둥산을 푸른 산림으로 만든 일등 조림국가 건설과 국민을 빈곤에서 해방등이  있으며, 

공업적으로는 세계공업강국 과  부국강병의 국가건설  그리고  방산공업 제품 수출국가가 되고원전수출의 일등국이며  반도체와  배터리등의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원조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어록집과  수많은 카톡글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들 업적이 70년대의  잘사는 국가로 만든 박정희의  중화학이 없었다면 빛날수 있을가요?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의 근본은 박정희의 유신기간에 있은  중화학 덕분이라고  공언한  경우는 초기에 외국의 학자들  빼고는 극히 드물다
      
한국의 수출이  53억불이 100억불이 되고, 100억불이  200억불이되었고, 공업구조가 선진국형인  중화학공업 국가가 된 것은 박정희의 중화학이 만든 것이다

 연두기자 회견에서 돌연히 중화학을 한다고  하니까  박정희가  임명한  장관들이 중화학이란 하루 아침에  합시다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대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희생시키는  유신이 있었기 때문에  안정된 기간이  보장됨으로서  중화학을 성공시켜 선진국이 된 것이다. 근거가  없는 역사관으로는 후세를 설득시킬수 없다

한국의 위상을 공업입국이란 견지에서 살펴보자.

한국은 제12위의 경제대국으로 무역고 1조달러를 넘고 6천억불의 수출을 하는 국가로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불로  인구 5천만명의 대국에서  이태리 다음가는 세계 7위의 국가이다.

세계 5위의 공업대국으로 선진국 영국과  프랑스를  앞선다.
 
발전능력은 1억 KW를 넘는 국가로서 원전수출 세계 1,2위 국가에 해당되며  반도체 배터리를 비롯한 전략물자를 생산수출한다.

방위산업 공업대국으로 전차, 장갑차,  무반동포, 전투기를 수출한다. 염가로 공기내에 우량품을  납품하는 명성있는 방산품을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6개 중화학 단지는 업종별로 세계 1류화되어  철강은 포항과  
광양에서 4천만톤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석유화학은  울산 여수 비인단지  세곳의 연간생산  능력은 나프타 분해  기준으로 1천만톤을 넘는다.   정유공장의  일산  능력은 5백만 배럴선이다.

울산의 현대와 거제의 삼성조선과  한화오션이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을  만들었으며  회사별로도 세계 1,2,3위이다.

창원기계공업단지를 보자.  세계유례가 없는  방산품  박용기계와  항공기 부품등을  생산하는  기계공업전용 단지이다. 

박정희는 중화학 중에도  방위산업육성을  위하여 기계공업을 중심을 둔다고 했다.

기계공업은 부품의 국산화라는 방위산업을 수요로 맞이한 것이다.?  중화학과 방위산업이 총동원되어 창원기계공업단지를 건설한 것이다.

내륙공업으로서의 전자공업은  연구단지 육성과 더불어 셰계일류화 운동에 착수하여 세계를  리드하는 첨단 산업국가를 만들었다.  연구단지가  이를 실물로 보여주고 있다.

  2024년 현재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정치이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공업 대국이지만  정치는 확실한 후진국이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협치는 찾아볼수 없다. 좌경의 다수야당은소셜이즘 정책을 들고 나오고 있으며 심심하면  탄핵한다고 벼르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우크라이나와와  중동에서 보여 주듯이 영토 뺏기와 종교전쟁 그리고 미중간의 헤게모니 전쟁에 기후변화와 자원전쟁이다.  우리정치는 싸움만하고 있을 때인가! 한심하다.
   

박정희의  중화학 시절 실권자 들의  자서전에서 김종필 총리는  유신은 중화학을  위해서  했다고하여 유신의 공적을 치하했다.

 중화학을  반대하는데 선봉장을 섰던  남덕우 부총리는 중화학을  위한  국민투자기금볍을 제정한 것을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올려 놨다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은  유신이 계획되지도 않은 중화학을 생각해서  유신을  한것은 아니지만 중화학은  유신의 덕을  보고 성공한 것이며  중화학이 시의적절하게 태어나서  유신을  살렸다고 했다.

중화학의  총사령관인  오원철  수석은 중화학은  박정희가 몸소 다스린  박정희의  친정  친관의  국가최고의 정책으로  절대로 실패할수 없는 것이었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박정희의 10.26 서거는 박정희 대통령의  내일생 조국과 민족만을 위해  깨끗하게 바친 영도자로 남게  만들었다고 했다. 
 
중화학  담당 최하 실무자였던  필자는 어느 누가 뭐라고 하든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적  영웅으로  추대하는데  일생을  바칩니다.  (끝)

    2024.8.17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