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약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8. 31. 15:16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약 

햇살이 송송 떠다니는 거리를 따라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약사 아저씨!
빨리 죽는 약 있어요?

아이의 말에 당황한 약사는
"그 약을 누가 먹으려고 그러니?

할머니 드리려고요,

아직은 죽음이 뭔지 모를 아이가 하는 말에
속 사정이 있으리라고 본 약사는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

네, 저를 재워놓고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늘 그렇게 말씀하였어요.
라고 말한 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손바닥만 한 돼지 저금통을 
내미는 게 아니겠어요 .

"내일이 할머니 생신인데 그 약을 선물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속에 묻어 있는 아픔을 
애연하게 바라보던 약사는

"네가 말하는 약이 여기 있구나 
이 약을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렴"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내민 저금통보다 약사가 내민 
약이 비싸 보였는지

"약사 아저씨!
진짜 이 돼지 저금통이랑 바꿔주시는 거예요?"

그럼
이 돼지 저금통에 들어있는 돈이면 충분하단다

동전 몇 개만 딸랑거리는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보이며
웃고 있는 약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하늘을 날듯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날들이 가고,

그로부터 3일이 더 지난 
비 내리는 오후
덜컹거리는 손수레를
끌고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요 

"저 약사 선생님" 
말끝을 흐리던 할머니가
미리 준비해온 듯 접어놓은
만원짜리 한 장을 카운터에 올려놓더니

"이 약을 며칠 먹고 나니 기운이 나서
이렇게 폐지를 주우러 
나온 김에 들렸구먼요"

손자 놈 재워놓고
혼자 넋두리 하는 걸 듣고
여기 와서
약을 사 올지는 몰랐다며
비싼 약을 가져온 미안함에 
쩔쩔매는 몸짓을 하고있는 
할머니에게 다시 약봉지와 
만 원을 지어준 약사는

"할머니 약 값은 손자한테 
받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린 게 무슨 돈이 있어 약 
값을 줬을까요!
모자라는 건 
제가 폐지를 주워 틈틈이 갚아 드릴테니 우선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할머니 그 약 다 드시고 나면 
손자를 다시 보내주세요.
아셨죠?"

비 갠 하늘에 펼쳐진 무지개를 타고
할머니가 멀어진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약사는 혼자 되뇌이고 있습니다

효심 만큼 더 좋은 약은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