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고락상평(苦樂常平)♡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9. 28. 16:29


♡고락상평(苦樂常平)♡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日常)에 항상(恒常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인생(人生)은 고해(苦海)라고
흔히 말한다.

정도(程度)의 차이(差異)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근심이 항상(恒常 )따라붙는다.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난 행운아(幸運兒)라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다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괴로움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고
고락병행(苦樂竝行)이라 했다.

그래서
고해(苦海)에 던져진
보통(普通) 사람들은
‘즐거움과 슬픔은 이웃사촌(四村)’
‘고통(苦痛)은 짧고 기쁨은 영원(永遠)하다’

등등(等等) 의 선인(先人)들의 말에 위로(慰勞)를 받는다.

채근담(菜根譚)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본 후(後)에 얻은 행복(幸福)이 오래 간다’
고도 했다.

20년(年) 가까이
유배(流配)생활(生活)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마(硏磨)하여 실학(實學)을 집대성(集大成)한
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
선생(先生)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괴로움과 즐거움(苦樂:고락)은
일상(日常)에 항상(恒常 )있는 것
(常平:상평)이고
서로 바뀌어 오고가는 것이므로
너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茶山)이
전남(全南) 강진(康津)의 다산(茶山)초당(草堂)에 은거(隱居)해 있을 때
지역(地域) 병영(兵營)에서 우후(虞侯)로 있던
이중협이라는 무관(武官)이 가끔 찾아와
분위기(雰圍氣)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년(三年)여(餘)를 그렇게 출입(出入)하던 그가
한 번(番)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임기(任期)가 끝나 서울로 가게 됐다고 했다.
섭섭한 표정(表情)의 그를 위로(慰勞)하느라
다산(茶山)이 시(詩)를 지어주고 서문(序文)을 쓴 것이
‘다산(茶山)시문집(詩文集)’ 에 남아 있다.

앞부분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곳에서 나온다고 한 말이 나온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
樂生於苦 苦者樂之根也
( 낙생어고 고자락지근야 )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
苦生於樂 樂者苦之種也
(고생어락 낙자고지종야 )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낳는 이치는
움직임과 고요함
음(陰)과 양(陽)이 서로
그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
苦樂相生 如動靜陰陽
互爲其根
(고락상생 여동정음양
호위기근 )

그러면서 3(年)간(間)이나 자주 찾아와
글을 써서 주고받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서글프지만 이후(以後 )고향(故鄕)에서 만나면
더욱 기쁠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일상(日常)속에
계속(繼續) 즐거운 일만 계속(繼續)되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幸運)은 있을 수 없다.

또 좋은 일이 계속(繼續)되고
고통(苦痛)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기대(期待)하지만
그 즐거움이 비극(悲劇)이 될 수 있어
낙극생비(樂極生悲)라 했고
흥(興)함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온다고
흥진비래(興盡悲來)라 했다.

반대(反對)로
고진감래(苦盡甘來)라
고생(苦生)을 참으면 즐거움이 따른다.
현실(現實)이 괴롭다고 좌절(挫折)할 일이 아니라
일상(日常)에서 작은 행복(幸福)을 찾는 지혜(智慧)가 필요(必要)하다.

부모(父母) 살아 계시고 형제(兄第) 탈(頉)이 없으니
삼락(三樂)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맹자(孟子)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갑자기 찾아온 환절기(換節期)에
건강(健康) 잘 챙기시고
항상(恒常) 행복(幸福)하시기 바랍니다.

- ( 좋은 글 중(中)에서 ) -

○   네박자 - 송 대관   ○

https://tv.naver.com/v/2313604?playlistNo=169905





Daum 메일앱에서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