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3 회
김병연은 어제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그 말을 그대로 믿어 왔었다.
그러나 어제 밤에 어머니가 무심중에 뱉아 놓은 말에 의하면, 자기 가문에는 어머니만이 알고 있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확실 하지 않던가.
(그 비밀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런 비밀이 사실로 있다면 어머니는 무슨 이유로 그 비밀을 나한테까지 숨겨 오고 계실까. 나는 이미 장가를 들어 자식까지 있는 어른이 아닌가.)
김병연은 백일장보다도 그 일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아니 단순히 궁금하다기보다도, 가문의 비밀을 자기한테까지 숨겨 오고 있는 어머니의 태도가 몹시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만사 제패하고, 어머니에게 그 일부터 따져 물어 봐야 하겠다.)
김병연이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데,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응시자들이 별안간 술렁거린다.
그제사 깨닫고 보니, 시관(試官) 4,5명이 이원(吏員)들을 거느리고 나와 동헌 바람벽에 오늘의 시제를 높다랗게 내거는 것이 아닌가.
백일장 시제는 다음과 같았다.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이 시제는 홍경래(洪景來)의 난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홍경래가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순조 11 년인 1811년 신미년(辛未年) 12월의 일이었다. 홍경래는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라고 자칭해 가면서 반란군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1대는 가산(嘉山)·박천(博川)을 함락시키면서 서울로 남진(南進) 하였고, 다른 1대는 서북(西北)으로 진격하여 곽산(郭山) ·정주(定州). 선천(宣川)등을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 석권해 버렸다. 그 통에 가산 군수(嘉山郡守) 정 시(鄭蓍)는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가산 군수 정 시는 문관(文官)이면서도 그러했건만, 선천 방어사 (宣川 防禦使) 김익순(金益淳)은 국가 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武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 커녕 즉석에서 항복해 버렸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반란군을 진압시키고 나자, 김익순을 역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참형에 처해 버렸다.
우리 역사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있었는데, 이날의 백일장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글을 지어 바치라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그 시제를 보는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충격심이 솟구쳐 올랐다. 왜냐하면 김병연은 평소부터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가산 군수 정 시를 <천고에 빛나는 충신>이라고 존경해 왔던 반면에, 반란군과 싸우지도 아니하고 항복해 버린 선천 방어사 김익순을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제가 공포되자, 응시자들은 풀밭에 흩어져서 붓과 종이를 꺼내 들며,
「시제가 몹시 까다로운걸!」
하기도 하고 어떤 응시자는
「시제의 내용을 잘 모르겠으니 어떡하면 좋지.」
하고 혼자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러나 김병연은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겁하고도 용렬하기 짝이 없는 김익순이란 놈을 백일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침 잘 만났다. 오늘은 나의 필봉(筆鋒)을 마음껏 휘둘러 비겁하기 짝이없는 네 놈을 뼈도 못추리게 탄핵 (彈劾)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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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4 회
하고 소리 내어 중얼거리며, 붓을 들기가 무섭게 다음과 같이 허두(虛頭)를 적기 시작하였다.
신하라고 불러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 릉(李陵) 같은 놈이요
정 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曰爾世臣金益淳 (왈이세신김익순)
鄭公不過鄕大夫 (정공불과향대부)
將軍桃李隴西落 (장군도이농서락)
烈士功名圖末高 (열사공명도말고)
.
역적 김익순의 죄상을 탄핵하는 김병연의 필봉은 첫구절부터 추상 열일(秋霜烈日) 같이 준엄하였다.
김병연의 필봉은 남달리 탁월하였다. 그러기에 붓을 준엄하게 갈겨 나가면 귀신도 몸을 떨 지경이었고, 붓에 정을 담아 놀리면 젖먹이 어린아이들조차 웃으며 감겨들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김병연은 선천 방어사 김익순이란 자를 진작부터 못마땅하게 여겨 왔기에, 이 기회에 만고의 충신인 정 시와 비교해 가면서, 그의 죄상을 여지없이 후려갈길 결심이었다.
그리하여 생각을 가다듬어 다시 붓을 달린다.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 오는 큰 고을이기에
가산보다도 의를 앞서 가며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어냐.
詩人到此亦慷慨 (시인도차역강개)
撫劍悲歌秋水淚 (무검비가추수)루
宣川自古大將邑 (선천자고대장읍)
比諸嘉山先守義 (비제가산선수의)
두 사람은 다 같은 조정의 신하였는데
죽어야 할 곳에서 어찌 두 마음을 먹었더란 말이냐
태평성대와 다름없던 신미년 그 해에
관서에서 풍운이 일었으니 그 무슨 변괴이더냐.
清朝共作一王臣 (청조공작일왕신)
死地寧爲二心子 (사지령위이심자)
升平月日歲辛未 (승평월일세신미)
風雨西關何變有 (풍우서관하변유)
김병연은 여기서 잠시 뜸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붓을 달린다.
주나라를 존중하려고 충신 노중련이 나왔고,
한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제갈양이 나왔듯이
우리나라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나와
풍진을 맨손으로 막아 내려다 죽지 않았더냐.
尊周孰非魯仲連 (존주숙비노중련)
輔漢人多諸葛亮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동조구신정충신)
抵掌風塵立節死 (저장풍진입절사)
전사한 충신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 갈 것이니
그 이름은 가을 하늘에 태양처럼 빛날 것이요,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뼈는 서산에 묻혀 백이 숙제와 이웃하게 될 것이로다.
嘉陵老吏揭銘旌 (가릉노리게명정)
生色秋天白日下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혼귀남묘반악비)
骨埋西山傍伯夷 (골매서산방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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