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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덜과 피맛길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11. 8. 15:19

거덜과 피맛길

재물을 마구 써 버리고 없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거덜 났다."

원래 거덜은 조선시대에 말(馬)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侍)의 하인(下人)으로,

귀인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가며 길을 틔우는 사람입니다.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갈 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하여 이렇게 외쳐 대던 하인을 말합니다.

"쉬~ 물렀거라~ 물렀거라!

대감마마 행차 납시오."

그 시대 ‘거덜’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남아 있지요.

지체 높은 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 고관들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길의 백성들에게 이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한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고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구부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갈 길을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죠.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길!

이른바 ‘힘없는 백성들, 즉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하지만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죠.

‘피맛길’은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피마 避馬)는 데서 온 말인데,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은 신분이었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리며 걸었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덜거린다,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했을 때 '거덜났다'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그 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어려워진 상황을 가리킬 때 ‘거덜났다’고 사용합니다.

기록에 남은 '거덜'은 관직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종7품의 잡직을 말하며, 피맛길은 지금 종로의 먹자골목입니다.

종로 1가 청진동부터 종로 6가까지로 빈대떡, 해장국 등으로 유명하였는데 2009년 이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모두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반대가 심하여지자 종로 6가까지 보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70년대 종로 3가 금강제화 뒷쪽의 골목에 학사주점 여러곳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과, 젊은 연인들이 적은 돈으로 푸짐한 안주와 소주, 동동주를 마실 수 있던 곳으로 암울한 시기에도 낭만이 넘쳐났던 곳이지요.

그 당시 단돈 천원이면 동동주 한 주전자에 큼직한 생선구이 한 접시가 나왔기에 '거덜날 일'은 없었답니다.

출처 / 살아가며 사랑하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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