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45 회 주막 얼마를 가다 보니, 커다란 소나무 그늘에 농사꾼인 듯싶은 장정 하나가 네 활기를 쫙 펴고 태평세월로 누워 있었다. 지게와 낫이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나무를 하러 가다가 낮잠을 자려는 모양이었다. 김삿갓이 가까이 가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두 눈이 왕방울처럼 부리부리하고 머리에는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호락호락한 위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양반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기에, 김병연은 옆으로 다가 가서, 「날이 몹시 덥군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시는 길인가요.」 하고 말을 걸었다. 농사꾼은 옆자리를 비켜 주며, 「여기 좀 쉬어 가시오... 방립을 쓴 것을 보니, 상제님인가 보죠.」 하고 말한다. 김병연이 쓰고 있는 삿갓을 방립 (方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