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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53 회

이종육[소 운(素 雲)] 2025. 4. 11. 15:39

방랑시인 김삿갓 1-53 회

「글쎄올시다. 밑천이 안 들었으니 선심을 쓰기로 할까........... 밀천은 안 들었지만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얘기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하고 아직도 자세를 부리고 있었다.

김삿갓은 웃을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천하일품>식의 허풍이 아니오. 얘기를 들어 보아서 그럴 듯 하거든 삼 년 묵은 외상 꼬투리를 내가 갚아드리기로 하리다. 그런 줄 알고 빨리 계속하시오.」

백수건달은 외상 값을 갚아 준다는 말에 손을 휘휘 내젓는다. 

「에이, 여보시오. 삿갓 선생의 인심이 아무리 후하기로, 외상 •술값까지 갚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요. 그것도 그렇지만 진정한 술꾼이란 외상 꼬리를 얼마간 남겨 둬야만 대접을 제대로 받게 되는 법이라우. 외상을 싹 갚아 버리고 나면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술맛이 안 나는 법이에요.」

외상 술값을 갚아 준다고 하면 얼씨구 좋다 할 줄 알았는데, 백수건달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하하, 노형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기도 하겠구료. 외상술을 먹는 것도 술꾼들로서는 하나의 멋임이 틀림없거든.」 
「역시 삿갓 선생은 주도(酒道)의 멋을 아시는 분이야.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얘기를 들려드리기로 하겠소.」

그리고 백수건달은 두번 째의 납치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젊은 과부가 납치되어 가면서 사내의 불알을 움켜잡고 늘어져서 위기를 모면한 사건이 있은 후에, 그 소문은 며칠이 안 가 모든 동내 방내에 널리 알려 퍼졌다.

월무족이보천(月無足而步天·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을 걸어가고)이요, 
풍무수이요수(風無手而搖樹.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 흔든다) 라는 옛글이 있더니, 말은 소리가 없어도 천리를 가던가. 납치사건은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던 사건이건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이야기는 사흘이 못 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홀아비는 어느 마을에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홀아비들은 문제의 과부를 업어올 생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처럼 무서운 과부를 섣불리 업어 오려다가 불알을 뽑혀 버리는 날이면, 인생이 송두리째 파멸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부가 워낙 귀한데다가 홀아비는 흔해 빠졌으므로, 개중에는 모험을 무릅쓰고 팔자를 고쳐 보려는 홀아비가 노상 없지도 않았다.

문제의 과부집에서 50리 가량 떨어진 청석골(靑石谷) 마을에 살고 있는 민 서방이라는 홀아비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만용가(蠻勇家)였다.

민 서방은 40 고개를 갓 넘은, 힘이 항우 같은 홀아비였다. 게다가 <만우 난희 (萬牛難回)>라고 말할 정도로 고집이 세고, 사람됨 이 우둔하기 짝없는 위인이었다. 

그러기에 마을 사람들이 그를 <민 서방>이라고 불러오는 데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도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그 민 서방이 어느 날 늙은이들이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는 중에 어느 홀아비가 과부를 납치해 오다가 뿌리를 뽑힐 뻔했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장담하였다.

「계집한테 뿌리를 뽑히다뇨?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계집이 제아무리 힘이 세기로, 사내의 뿌리를 무슨 재주로 뽑는단 말요. 나 같으면 계집년을 그 자리에 자빠뜨려 놓고 말뚝 같은 물건을 사타구니 속에 박아 버리겠소. 그러면 계집은 대번에 거품을 물고 나가떨어질 게 아니오.」

그 말에 늙은이들은 포복 절도를 하였다.

「이 사람아! 누군들 자네만 못 해서 뿌리를 뽑힐 뻔했겠나. 여자들의 앙심에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히는 법이네. 자네는 여자들의 무서움을 전연 모르는가 보구먼.」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언제나 밑에 깔려 돌아가는 것이 계집인데 무섭긴 뭐가 무섭단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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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1-54 회

「그렇게도 자신이 있거든 자네가 그 과부를 얹어 와 보게나.」 
「과부의 집이 어딘지 그것만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내가 오늘밤으로 업어 오기로 하겠소.」

이리하여 젊은 과부에 대한 납치극이 또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그날 밤, 민서방은 젊은 과부를 포대 속에 집어 넣어 등에 업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과우는 포대 속에서 결사적으로 난동을 부려 보았건만, 민 서방은 끄떡도 아니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납치되어 오는 과부 자신도 이번만은 <큰일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산골짜기를 달려오고 있을 때, 하늘이 도와주신 덕택이라고나 할까. 별안간 기적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저 멀리 산 위에서 홀연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눈에 쌍불을 켜 가지고, 우뢰 같은 포효성을 지르며 민 서방을 향하여 번개처럼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민 서방은 혼비백산하여 <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랑이는 도망가는 노루를 추격해 오는 중이었지만, 민 서방은 자기를 노리고 오는 줄 알고 겁에 질려 그대로 뻗어 버렸던 것이다.

납치되어 오던 과부가 자기 손으로 포대를 끄르고 나왔을 때에는 호랑이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자기를 납치해 오던 사내는 누런 똥을 한방석 싸갈겨 놓고 송장이 되어 있었다.

김삿갓은 두번째의 납치담을 듣고 포복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하늘이 무심치 않아 그 민 서방인가 하는 자가 천벌을 받은 셈이구료.」
「물론이지요. 그야말로 천벌이지요.

마침 그때 주모가 닭고기 남비를 들고 들어오며 두 사람에게 말한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미나게 하세요?」

김삿갓은 웃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주모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끼고 아끼는 씨암탉을 잡아오게 해서 미안하오. ...............우리들은 지금 홀아비가 과부 업어 가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오.」 

주모는 대번에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백수건달을 흘겨보며 정면으로 나무란다.

「백수건달이 허풍을 떤 모양이구먼.」

그리고 김삿갓에게 말한다.

「그런 허풍은 믿지 마세요.」

백수건달도 가만있지 않았다.

「허풍은 왜 허풍이야. 모두가 거짓 아닌 사실인걸. 누가 없는 말을 꾸며 냈을라구.」
「사실이거나 말거나 간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가.」

주모는 백수건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나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닭고기나 들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김삿갓에게 말한다.

「술 안주를 정성껏 만들어 오긴 했지만 음식 솜씨가 워낙 없어서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맛이 없어도 많이 드세요.」

김삿갓은 우선 국물 맛을 보았다. 간도 잘 맞지만, 무슨 양념을 넣었는지 향취가 그윽하게 풍기는 데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응?...... 이게 바로 <천하일품>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도 기막힌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으면서, 도토리묵으로 술을 마시라고 한 것은 너무하지 않았소.」

그러자 백수건달이 또다시 미운 소리를 들고 나온다.

「삿갓 선생! 섣불리 감탄하다가는 삿갓 선생도 누구 모양으로 뿌리를 뽑히게 될까 걱정스럽소.」
「에이, 여보시오.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리 불별이 없기로 내 것이야 뽑아 버리겠소. 하하하...안 그래요. 아주머니?」

주모는 닭고기 남비를 김삿갓 앞으로 내밀어 놓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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