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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경제수석 비서관 신동식 박사 이야기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3. 19. 14:15

초대
경제수석 비서관 신동식 박사 이야기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신동식 박사 역시우수한 두뇌와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과학자
입니다.
♦️이 분은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부산항에서 거대한 미국의 화물선을 보고 우리도 저런 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입학 하여 졸업을 했으나, 취직 자리가 없어
전세게 유명한 이름을 가진 선박회사에 편지를 보냈는데,

♦️스웨덴 선박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거기 갔는데, 견딜 수가 없어 영국으로 건너가 로이드
선급협회 검사관으로,
♦️취직이 되어 근무 하던 중에 1961년 가을에 미국에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러 와 있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불려가 보니 임자! 조국의 조선 발전을 위해 나 하고
함께 일해 봅시다.
♦️그러시면서 그냥 바로 한국으로 갑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너무 당황하여 얼른 대답을 못 하고,
♦️영국 회사에서 해결
할 일도 있고 하니,며칠만 말미를 달라 해서 영국으로 돌아가
고민 끝에 조국의 지도 자가 부르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또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 밖에 안 되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생각 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가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귀국 날짜를 청와대에 보고를 하니, 도착한 날 김포 비행장으로 비서실에서
차를 가지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청와대 
초대 경제수석비관이 되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기안 하고 조선사업 발전 계획을 기안
하는 등.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동식 박사에게 부산에 있는 대한조선공사에 가서,
♦️조선사업을 할 수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해서 내려가 보니 배  한척도 만들지 못 하는
황무지가 되어 있더라고 합니다.

♦️거기서 제초작업만 실컷 하다가 그일을 그만 두고 거제도에
옥포조선소를 건립 하자고 건의 하여 지금의 옥포조선소를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현대조선 소를 설립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옥포 대우조선과 울산 현대조선 이라는 쌍두 마차를 끌게 된 것입니다.
♦️박대통령께서는 원래는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
사업을 해보라고 권했는 데 겁을 먹고 못하다가,
♦️신동식 박사가 옥포 조선소를 만드는걸 보고 마음이 움직인 정주영  회장이 프로젝트 하나를
울산으로 가져가 현대 조선소를 설립 했습니다.
♦️신동식 박사는 지금도 현역입니다, 한국해사 기술 협회장과 카본코리아 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1965년 10월 초, 미국 존슨 대통령이 3주 후에 방한 한다며
한국에 선물을 하나 주고싶은데 필요 한걸 요청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무엇을
요구 할까를 토의 하였는데, 한강에 존슨 브릿지(교량)를 세우자 여의도에 존슨 타워를 세우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때 신동식 경제수석비서관이 박대통령에게 기초과학연구소를
세우자고 건의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괴학자도 없는데 연구소를 지어서 어느 세월에
본전을 뽑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신동식 박사는 박대통령에게 백년이 걸려도 연구소를 지어야
합니다. 남의 나라에 돈도 빌려 보고 기술도,
♦️도입해 봤지만, 결국은 남의 심부름꾼 밖에 못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기술로 우리 것을
만들어 팔아야 잘 살 수가 있습니다, 라고 설득 하였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박대통령은 신동식 박사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존슨 대통령으로 부터 원조금을 받아,
♦️지금 성북구 하월곡동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한 것입니다.
♦️아무려면 존슨 대통령이 자기를 기념해 달라고 선물을 준다고
했겠습니까?
♦️신동식 박사는 이렿게 말합니다, 베에토벤이 불후의 명작 운명의 교향곡을 남길 수 있었
던 것은 그를 후원한,
♦️귀족들 악보를 멋지
게 연주한 음악가들이 있었기 때문 이었으며,
♦️우리가 오늘날  과학
기술 강국이 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 선 것은 박정희라는 탁월한 혜안을 가진
지휘자가 있었고, 

♦️24시간 연구실에 불을 밝히고 있었던 과학자들이 작곡을 잘
하고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사업가들이 연주를 잘해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은 매달 월간경제동향 보고회의를 주재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지표를 챙기니, 열심히 안 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작품을
만들어내면 교수평가단이 평가 하여 대통령 앞에서 강평을 하였습니다.
♦️그당시 까다롭게 굴었던 분이 남덕우 교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박대통령께서
남덕우 교수를 재무장관에 기용 하고 임명장을 주면서 남교수! 정부정책에 꼬장꼬장 따지더니,
♦️한번 당해 봐라!
하면서 껄껄 웃었다고합니다, 박대통령은 과학자들이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도,
♦️평가교수단에서 반드시 평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1966년 부터 1969년 KIST(한국과학연구소)가 설립 되기 까지 미국에서 활동 하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 30명을 조국의 기술 발전에 동참 하자고 설득 하여,
♦️1차로 귀국시켰습니다.
그 사람들은 미국에서 안전한 삶이 보장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조국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응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태규 박사와 최형섭 박사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물론 그 작업은 박정희 대통령이
지휘봉을 잡고 전폭적으로 지원 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뒤에 다시 1백명의 과학자들이 더 귀국하여 연구소에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지금 전세계 바다에 떠 있는 30만톤급 이상 배의 85%가 메이드인 코리아 라고 하면 믿겠
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현대조선과 대우조선이 만들어낸 작품들입니다.
♦️최근에는 대만까지 무인운전 선박 시험운행 까지 성공 하였습니다.
양철 조각 하나 만들지 못 하던 나라가 불과 몇십년만에 세계 최고의 조선(造船)국가라는 자리
에 우뚝 선 것입니다.

♦️신동식 박사는 2003년도에 조선 건조량, 수주량 등 분야에서
세계 1등 국가가 되었을 때 국내외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가,
♦️동작동 박대통령 묘지 앞에 올려 놓고 대장님! 그리도 원하시던 미래의 조선기술이 세계
1위를 차지 하였습니다.
♦️라는 보고를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577년전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다면,
♦️50년 전에는 과학기술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 K9자주포와 K2전차, T50항공기를 수출 하는 방위산업 국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도 박정희 대통령이 닦아놓은,
♦️과학기술 혁명의 결정체들 이라는 사실도 기억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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