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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祥寺(길상사)에 깃든 子夜(자야)의 純情(순정)*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9. 2. 15:49

*吉祥寺(길상사)에 깃든 子夜(자야)의 純情(순정)* 
        
여자 몸으로 원한의 38선을 넘어 함경남도 함흥에서 서울로 피난 온 기생 ‘자야’(子夜: 본명 김영한/1916~1999)는 1953년, 대한민국 3대 고급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大苑閣)'을 설립하고 재력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훗날 자야는 당시 돈으로 1,000억원 상당의 고급요정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없이 무소유 ‘法頂 스님’에게 시주했다. 

그 대원각 요정이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지금의 사찰, 길상사(吉祥寺)이다.
 
평생을 사랑했던 북한에 머물고 있는 시인 ‘백석(白石)'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살았던 기생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를 시주받은 법정스님은 창건법회에서 자야(김영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자야는 법회에 참석한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저는 불교를 잘 모르는 죄많은 여자입니다. 제가 대원각을 절에 시주하고 바라는 소원 단 하나는 이곳에서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원각 전 재산을 시주한 것이 아깝지 않았느냐 라는 한 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1,000억원 재산이 ‘백석’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해요. 내가 죽으면 화장해 눈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했다. 

사랑한 사람 백석의 시에서 처럼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에게 돌아가고 싶어했기에 다비식을 마친 뒤 자야의 뼈가루는 길상사 경내에 쌓인 눈 위에 뿌려졌다.

자야가 평생을 못잊어하며 사랑한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은 일제시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지만, 아호인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백석은 문학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키, 빼어난 외모로 당시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그가 길을 지나가면 여인들이 그를 보고 자지러 졌을 정도라고 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기생 '자야'와의 Love story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듣는이의 가슴이 찡하게 아려온다.
 
백석은 함경도 함흥시의 영생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자리에서 기생 金英韓을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잘 생긴 로맨티스트 시인은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손을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백석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구에 나오는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지어줬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서로가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지만, 이들 사이에 장애물이 등장한다. 

유학파에다가 당대 최고의 직장인 함흥 '영생여고' 영어선생이었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겨 강제로 또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백석은 결혼한 첫 날밤에 그의 연인 기생 자야(子夜)에게로 돌아가 그녀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자야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이 혹시 백석의 장래를 막아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를 거절하나 백석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 만주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먼저 만주로 떠난다.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늘 자야를 그리워하며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짓는다. 

그러나 백석이 잠시 동안이라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함흥을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 후 다시 6.25가 터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며 백석은 평생 자야를 그리워하며 북한에서 혼자 살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흐르는 깊은 산골로 가서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면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넉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
함흥에는 지금도 영생여고가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996년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내내 자야를 그리면서 혼자살다 숨을 거둔 백석의 순애보도 대단하지만, 백석을 그리워하면서 어렵게 세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세상을 떠난 자야(김영한)의 순정도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대원각을 길상사에 봉헌하고도 10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法頂스님 또한 이 시대의 위인이셨다.
 
1997년 개원법회를 할 때,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축사를, 2005년엔 김 추기경과 수녀들이 모여 이른바 '길상음악회'를 열었는데 종교를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경인TV/자일대우버스/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7층 석탑을 사찰 경내에 세운 것 또한 종교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학가의 사랑을 기려 종교의 합의도량이 되기기도 했다.
 
‘백석과 자야’ 두 사람의 슬픈 애정스토리는 지금도 성북동 ‘吉祥寺’ 풍경소리를 타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