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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삶을 가르치다 ]

이종육[소 운(素 雲)] 2024. 9. 15. 15:48

[ 죽음, 삶을 가르치다 ]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자동차로 꼬박 나흘을 달려 찾아간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자동차 길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해발 5,360m의 타그랑고개. 
지대가 너무 높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갈색의 민둥산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산소가 적어 
보통 사람은 
숨쉬기조차 힘든 언덕 너머엔 
2,000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록파족이 살고 있다. 

구름마저도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지 못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다. 
영하 40도의 맵찬 날씨를 견디도록 
집은 돌로 쌓았는데, 
록파족은 
겨울철인 10월에서 3월까지만 이곳에서 생활한다. 
나머지 반년은 
보름에 한 번씩 자그마치 열두 번이나 
가축들을 몰고 풀을 찾아 여기저기 떠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 
의식주 모두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백여 마리의 양과 염소에 

한 가족의 생계가 매달린 
그들에게 
혼인으로 인한 
형제들의 재산 분할이 불가능하자 
일처형제혼 등  
일처다부제가 만들어졌다.
생존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특이한 결혼풍습보다는 
어느 노인의 죽음 의식과 
거기에 깃든 
그들의 생사관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3월 말, 봄이 되면 
그들은 
가축의 방목을 위해 
겨울을 
보낸 돌집을 나선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보름 남짓 머물면 
풀이 바닥나 
새로운 곳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남자들은 
이삿짐을 싸고 
여자는 
가는 도중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데 
시아버지인 일흔여덟 살의  노인은 
성치 못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시무룩하다. 
물이 있는 다음 정착지까지는 
대략 40에서 80km. 
움직임이 더딘 고산지대에서 
사흘을 꼬박 걸어야 한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은 
오늘 가족과 함께 떠나지 않는다. 
이젠 너무 늙어 
며칠씩 걷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의 순리. 
자식들은 
노인을 위해 혼자 지낼 텐트와 
두툼한 옷을 준비한다. 
버터차와 밀가루빵 등 
한 달 치 식량을 남겨두고 떠나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 노인이 살아 있으면 
또 한 달 치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한 달을 넘겨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이 고독한 죽음 의식은 
노인과 가족 간의 타협이 아니다. 
힘든 이동을 거듭해야 하는 
고산지대의 오랜 풍습으로 
노인 스스로의 결정과 
가족들의 수긍이 만든 
고립이고 헤어짐이다.

손자에게 마지막 차를 대접받는 노인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아들과 손자는 울음을 삼킨다. 

정든 사람과의 이별을 두고 
열여덟 살의 손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쉰두 살의 아들도 걸음이 휘청거린다. 
새로운 생을 받기 위해 
몸을 바꾸는 것이니 
슬퍼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극진한 신앙도 
이 순간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긴 인연에 비해 짧은 이별, 
노인은 모든 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심경을 묻는 기자에게
“나도 27년 전에 
아버지를 이렇게 했다. 
자식들을 탓하지 않는다.
행복하기만 빌 뿐이다”라고 
노인은 
담담히 마니차를 돌리며 허공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걸려 넘어지는 문턱이 아니라, 
이번 생과 맞닿은 
또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 위한 
매듭이고 통로다. 

늙고 병든 몸에서 벗어나 
스스로 
평온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고 
일상의 수행이 일러준 
혼자만의 여행이다.
눈 맑은 그들에겐 
저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신성한 발걸음인 것이다.

가축들을 앞세우고 멀어져 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은 자리에 눕는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몸을 티베트 말로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신에 대한 겸손을 배워왔을 
노인, 
원망이나 미련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 그의 영혼은 
몸뚱이를 남겨둔 채 
이제 어디로 떠날 것인가. 
이마 위로 
테 굵은 안경이 벗겨지고 
손톱 밑이 까만 그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음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단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처음 왔던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 
그 길을 
히말라야는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대자연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죽음은 
태어남을 뒤쫓고 
태어남은 
죽음을 뒤쫓아 
그것은 끝이 없다’고 
그들의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는 말하고 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이 
죽은 자는 
무엇으로든 
반드시 세상에 다시 온다는 믿음으로 
모든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사람들, 
죽음의 하늘길을 열기 위해 
그것과 홀로 마주하는 
비감한 모습이 
차라리 숭고하다.

이들은 
평생 떠남에 익숙하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남아있는 부모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이승의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지상의 거인 히말라야의 가혹한 자연과 
이천 년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 

어쩌면 그 덕에 
어느 문명보다 
자연에 가까운 전통을 배우고 이어왔는지 모른다.

‘죽음을 배우라. 
그래야만 
삶을 배울 것이다.’ 

설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돌풍 한 자락이 
하늘의 소리를 전하며 
칠흑 같은 벌판을 
짐승처럼 내닫는다.


꼭 읽어 보세요.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보세요.

⭕️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32층에 서울대 학장을 역임하신 오ㅇㅇ이란 교수님이 살고 있었다.

19년전 처음 신규 입주할 때부터 함께 입주했던 분이라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도 하고 간단했지만 대화도 나누곤 했었다.

당시 나는 60세를 갓 넘은 초로였고, 그분은 77세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항상 웃음 끼가 가시지 않고 늘 정정해 보였다. 마나님과 함께 단지내 산책을 자주하셨고, 두 분이 손잡고 외출하는 다정한 모습도 자주 보았다.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매주 휴일 날이면, 모 대학 교수라는 사위가 찾아 와서 픽업해서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약 7년 전 쯤에 마나님이 돌아 가신 이후, 비교적 넓은 집인데 혼자서 사시는 것 같았다.
여전히 쉬는 날이면 그 사위와 딸이 픽업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갔다.

수원에 산다는 아들은 어쩌다가 한번 찾아와 함께 외출하는 모습도 한 두번 본 것 같다.
그런데 언제 쯤인가 사위가 보이지 않기에 궁금했는데, 그 사위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혼자서 쓸쓸하게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거니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 행로는 누구나 다 저런
 아픈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지나 갔다.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우리 인생의 말년도 다 저렇겠지...! 그런데 한 두어달 전부터 오학장 할아버지가 눈에 띄지 않아서 가벼운 궁금증이 들기는 했지만 남의 일이라 그냥 잊고 있었는데...!

어제는 우리 아파트 라인 주차장에 책들로 가득 찬 왠 커다란 '탑차'가 보이기에 직감적으로 오교수님의 책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오전에 집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려 내려갔더니, 아주 고급스런 책장들을 비롯한 꽤나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한살림 가득하게 나와 있더라는 거다.

값깨나 나갈 만한 서양화와 액자들...
그리고 오교수의 박사학위, 학위모를 쓰고 찎은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이 주차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더라는 거다.

가구들은 중고 가구점에 연락하면 헐 값에라도 얼씨구나 하고 가져 갈만한 고급품이었지만...!
오교수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은 모두 태워버리지 않고, 왜 저렇게 버렸는지 자식들이 욕먹을 것 같더란다.

서울농대 학장까지 지낸 분이다 보니 95세까지 아쉬움 없이 세상을 빛내며 살다가 죽었다고는 하겠지만~
인생의 끝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저렇게 쓸쓸하고 허망하게 죽으면 아무리 값진 것도 모두 다 버리고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내가 여기서 주제로 하고 싶은 말은 어느 노교수의 죽음이 애석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 끝의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 가정이 자연스럽게 解體되어 가는 모습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젊은 시절 나도 그랬다!
우리들 모두가 그랬다!

한참 자식들이 태어나 쑥쑥 자랄 때는 식구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맛난 거 먹으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것처럼 좋아했다.
집안이 시끌벅쩍 들썩거리던 기쁨. 그때의 사랑!

좀 더 고급진 가구들을 꾸며 놓고서 만족해 하던 시절, 자식이 공부 잘해 가슴 뿌듯해 하거나, 공부 못해 가슴 조리던 시절~~ 

세월따라 그런 오붓했던 시절은 점차 멀어지고, 자식들은 제각기 자기 가정 제 일을 찾아 뿔뿔히 흩어져서 산다.

기둥같았던 엄마 아빠는 이제 병들고 쇠잔해져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 떠나면, 그 가정은 허물어지듯 해체돼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 그런 사정이 지금 내 앞에도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비단 내 이웃에 살던 오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현실로서 내 코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회피할 수가 없다.

하나 하나 정리해야 되는데도 아직 붙들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책이며 옷이며 가구들이며 모든 것이 한낱 쓰레기가 될 것인데...

젊은 시절에 읽던 책들 더러는 읽지도 않고 허영으로 모은 것도 있겠고, 내가 아껴 입던 옷들...!
드라이 크리닝해서 비닐 커버를 씌워 놓고 입지도 않은 채 걸려 있는 옷들, 숫하게 찎은 사진들, 나름엔 욕심 내서 구입한 가구들...

이 "브라운톤 오크 가구"들은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요즘 애들은 트랜드에 맞지 않으니 그냥 버리라고 한다.
너무 아깝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아까운 것이 무어 있겠나(?)
내가 세상 떠나고 나면 나의 물욕과 함께 다 버려질 텐데, 결국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말텐데...!!

한낱 거품 같은, 연기 같은, 물리적인 世物에 목숨 걸고 살아온 인생들이여! 아둥바둥 아껴서 모아 놓은 재산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노년이라 생각하는
인생들이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깔끔하고 반듯하게 미리미리 정리 정돈하고 사는 건 어떨까?
  - 공감이가서 옮긴  글-